대승불교 보살상의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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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대승불교란 무엇인가?
 1) 대승의 의미
 2) 대승과 소승의 차이
 3) 대승불교의 진리
 4) 공이란 무엇인가 ― 구애되지 말라

2. 보살상의 실천
 1) 보살도와 회향의 관계
 2) 대승의 실천도 ― 6바라밀

본문내용

는 참된 보시가 아니다.
셋째는 시물(施物)이다.
금 덩어리를 보시한다 해서 그것이 참된 보시가 아니다. 동시에 자신에게 불필요한 물건을 주는 것 또한 보시가 아니다. 자신에 게 중요한 것을 주는 것이 참된 보시이다.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춘 것이 진실한 보시이다. 요컨대 보시는 '공'한 마 음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집착이나 불평하는 마음을 가지고서는 진실한 보시가 되지 않는다.
2) 지계 : 지계라는 것은 '계를 지킨다'는 것이다. 소승의 계율관은 '계율 지상주의 (유대교의 율법주의와 유사)'이다. 계율의 항목에 집착하여 그것을 하나하 나 굳게 지키는 것이 소승불교의 입장이다.
석존이 "계율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계율을 위해 사람이 존재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파했듯이 대승불교는 기본적으로 견해를 같이한 다. 석존은 재가신자에게 계를 주었지만 율(律, 벌칙규정)을 제정하지 않 았다. 계를 깨트렸을 때 벌을 받는 것은 출가자였다. 재가신자는 벌을 받 지 않았다. 그것은 계는 자발적으로 지키는 마음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 다. 그래서 불교의 오계는 명령형이 아니다. 십계는 꼭 지켜야 할 것이나, 불교의 계는 금지가 아니다. sila라는 의미는 「습관 길들이기」라는 의미 에서 선계와 악계 중에서 오계 는 선계이다.
1. 생명을 죽이지 않는다.
2.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3.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
4. 사음하지 않는다.
5. 술 마시지 않는다.
그러한 좋은 습관을 체질화해 하는 것이 불교의 오계인 것이다. 이것은 계 자체가 본래 참회하는 정신에 바탕을 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우리가 계를 파했을 때 그와 같이 의지가 약한 자신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참회하 는 것이다. 그것이 계의 의미이다. 즉 자기 발전을 위해서 자신의 약함 내지 어리석음을 자각하는데 필요한 것이 계인 것이다. 결국 석존이 소소 계는 버려도 된다고 하셨듯이 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불교의 기본 정신 이다. 곧 공 사상에 입각한 지계이다.
3) 인욕 : 인욕은 타인으로부터 받은 박해나 멸시를 묵묵히 참는 것을 말한다. 사 바세계는 고통받는 사람이 사는 세계(人士)이다. 생활하면서 상대를 용서 하는 것이 인욕이다. (예-아파트 위층의 소음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그 러나 참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인간에 대한 권력자의 박해나 멸시와 같은 불합리한 것에 대해서는 투쟁 해야 한다. 이것을 적절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지혜 없는 인욕은 올바르지 않다.
4) 정진 : 정진은 노력을 말한다. 무턱대고 하는 노력만 하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노력을 쉬는 것이 정진이기도 한다. 이것은 석존이 수행해 온 과 정에서도 알 수 있다. 석존은 심한 고행을 그만 두고 중도의 길을 걸었 다. 맹목적인 노력은 바른 지혜가 결여된 노력이므로 정진이라고 할 수 없다.
6바라밀의 정진은 중도를 바탕으로 한 노력이다. 정진·노력이라고 하는 것은 자리적이다. 자신을 위한 노력은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따라 서 이러한 노력은 소승적인 노력이다. 그러나 불교의 기본 정신이 '자리 이타'이듯이 정진바라밀의 바탕에는 타인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만 한다.
오늘날과 같은 경쟁 사회 속에서는 자신의 노력이 자칫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래서 노력은 지혜 즉 중도의 정신을 망각해서는 않된다.
즉 결과에 구애됨 없이 노력이 필요하다. 즉 대승의 방편 제일주의의 지 혜가 필요하다.
5) 선정 : 선정은 곧 좌선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선정이나 좌선이라고 하면 곧바 로 '정신의 통일'만 연상한다. 그러나 여기에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선정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산만한 마음을 집중하는 기술(정신 집중)
둘째, 한 곳에 집착된 마음을 느긋하게 푸는 기술(정신 해방) - 우리들 의 마음이 어딘가에 집착하여 괴로워하는 데에서 벗어나 마음을 쉬게하는 것이 선(禪)이다.
초기 대승불교들은 불탑을 참배하고서는 조용히 석가모니를 명상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은 재가신자였으므로 선정의 전문가는 아니다. 그러므로 수준 높은 관불행을 할 수 없었지만 불탑아래서 조용히 명상을 즐길 수 있 었을 것이다. 불탑에 새겨진 부조나 다양한 불상이 그들로 하여금 부처님 을 친견할 수 있도록 했을 것이다. 석존의 모습을 생생하게 배알할 수 없 었다고 해도 석존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선정바라밀이 다. 재가신자들은 불탑을 참배하러 와서 석존을 만났던 것이다. 그리하여 일상생활에서도 석존과 함께 살았다. 이런 일상생활 속의 불교가 6바라밀 이다. 따라서 6바라밀의 선정은 출가자의 좌선과 다르다.
6) 지혜 : 혜는 어떤 때는 정신을 집중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정신을 해방시킬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다름 아닌 지혜바라밀이다.
지혜는 선정에 의해서 배양되는 것이다.
이 지혜와 관련해서 불교가 '지혜의 종교'하고 한다면, 소승불교는 '출세 간적인 지혜'를 추구한다. 그래서 불교인은 출가를 해야만 했다. 출가신 자들은 선민의식을 가지고서 그들 자신만을 위한 지혜를 추구했다. 즉 소승불교는 엘리트 불교였던 것이다.
반면 대승불교는 '생활속의 지혜' '사회속의 지혜'를 추구했다. 대승불 교는 기본적으로 재가불교이다. 즉 주역이 재가신자들이다. 따라서 '출세 간적인 지혜'를 기피하는 것이 대승불교이다. 사회라고 하는 것은 어떤 사회든 상호 부조적이다. 그러므로 대승불교가 추구하는 지혜는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한 '이타정신'이다. 즉 '이타의 지혜'를 추구한다.
6바라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이타의 지혜'이다. 이것을 대승불교도 들은 '반야'라고 불렀다. 반야는 보다 한차원 높은 지혜이며 자비의 지혜 이다. 그리고 집착을 떠난 지혜이다. 따라서 불교는 '지혜의 종교' '반야 의 종교'이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진실한 불교는 바로 대승불교에서 성 립 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6바라밀의 실천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반야이다. 결국 6바라밀의 실천에 의해서 스스로 대승불교의 기본 철학-반야와 공-이 체질화되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가 지혜의 철학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 문헌
동함 불교대학 불교학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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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8.07
  • 저작시기20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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