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武道)의 역사(歷史)와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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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초코파이 논쟁, 검도 논쟁
- 무도의 정의

무도의 역사
- 검도의 역사
- 가라테의 역사
- 유도의 역사

무도의 특성
- 한판, 잔심, 형, 박자
- 야구에서 보이는 무도적 특성

스포츠와 무도
- 스포츠와 무도의 경계에 선 유도
- 검도의 미래에 대한 논의

검도의 역사 논쟁

다시 검도논쟁으로 돌아와서

본문내용

일본의 경우 대부분의 선수들이 공부를 병행하고 졸업 후 경찰관으로 재직하면서 운동을 계속하는 데 반해 한국의 1부 선수들은 매 대회 성적이 진학에 직결되기 때문에 장기적이고 진지한 연습보다 우선 이길 수 있는 기술연습을 하는 경우가 많다. 좁은 실업팀의 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선수출신들은 도장을 열 여력이 없으면 생계를 알아서 꾸려가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도장의 공급도 이에 따라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서 과잉경쟁에 놓여있기 때문에 아마추어 동호인들에게 만족할만한 환경을 제공하기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게 된다. 이러한 건강하지 못한 시스템이 ‘우선 이기기 위한’ 운동을 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하나로 검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등록을 추진하고 있는데 근본적인 해결이 될지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인 것이 사실이다.
엘리트체육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생활체육에 우선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가적 체면보다 국민의 복지와 건강이 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즐겁고 유쾌함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엄격함과 고됨이 공존하는 무도장에 스스로 찾아가는 사람들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역사 논쟁
지금까지 武道가 일본의 문화라는 결론 위에서 논의를 진행했다. 특히 검도에서 역사논쟁이 발생하고 있다. 검도의 기원이 한국이라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주장이 있는 것이다. 대한검도회의 공식입장은 이러하다. 문화는 대륙에서 섬으로 전파되는 것이 당연하고 칼 역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볼 수 있다. 검술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 무예보통지에 기록된 본국검법이다. 그림과 함께 설명이 적혀져있는 세계 最古의 문서이다. 칼의 전파와 함께 검술도 전해졌음을 추측할 수 있으니 검도의 원형도 한반도에서 찾아야 함이 마땅하다. 일본이 검도를 경기화, 체계화 한 공로는 인정하나 검도에 스민 왜색을 지워내고 우리의 검도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검도가 한국으로 오면서 그 형태가 일본의 그것과 비교해 매우 많이 바뀌었다. 홍, 백으로 구분되는 등 띠도 청, 백색으로 바뀌었고 준거라고 하는 자세도 생략되었다. 검도복 하의 허리 쪽에 달린 요판도 없애고 벨트형 도복을 입게 강제하고 있다. 대회나 심사 때 요판도복을 입은 것이 보이면 그 자리에서 지적하고 퇴장명령을 하기도 한다. 권고사항이 아니라 강제사항이다.
물론 대한검도회도 다른 세계 각국의 협회와 마찬가지로 전일본검도연맹의 산하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국제대회에 나가서는 한국에서 하지 않는 준거도 행하고 등 띠도 붉은 색을 사용한다. 국내의 심사나 대회에서 외국인의 요판은 금지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이중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스승에 대한 문제제기를 극도로 죄악시하는 분위기만은 철저하게 지켜서 불만 여론을 무마하기도 했다. 요판 금지에 대한 시행을 처음 할 때 대한검도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의 반대여론에 못 이겨 자유게시판 자체를 폐쇄하기도 했다. 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대한검도회 홈페이지에는 자유게시판이 없다.
비단 대한검도회 뿐만이 아니다. 조의선인, 사무랑, 싸울아비 등 그 출처가 불분명한 많은 용어들이 마치 사실처럼 굳어져 ‘사무라이의 어원은 사무랑이다, 싸울아비다’라는 것이 상식으로 통하는 것을 보면 일부만의 주장이라고 볼 수도 없을 것 같다. 참고로 사무라이의 어원은 사부라우(侯)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설명이 가장 설득력 있는 것으로 정설이라 할 수 있다. 국가적 자부심도 중요하고 일본에게 문화를 전래하여 주었다는 뿌듯함은 그러나 ‘일본에서 발생한 모든 문물은 한국에서 비롯된 것’ 이라는 어린아이 투정 부리듯 우기는 모습과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것이라도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우리에게 맞지 않는 부분은 과감히 수정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무도장에 신단을 만들어 모시고 예를 갖추는 것을 국기에 대한 예의로 바꾸어 들어온 사실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사실 국기에 대한 형식적인 예의가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있지만, 신단을 대신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평가할만한 일이다)
다시 초코파이와 검도 논쟁으로 돌아와서
하나하나 되짚어나가면, 武道라는 개념은 동아시아 전체가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인식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일본만의 특수한 문화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상대를 제압하고 목숨을 빼앗는 道라니! 일제 강점기를 거쳐 오면서 반일정서를 잠재우고 검도나 유도를 전파시키기 위해 전통무술이라는 다소 무리한 설명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오면서 무도인구를 늘이고 무도의 장점을 국내에 소개한 공로는 구세대의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사회인이 대부분인 검도인의 자성의 목소리를 틀어막는 행정은 분명히 대한민국 무도가 방향을 잘못 잡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武道를 무리하게 한국 문화로 혹은 보편적인 문화로 편입시키려는 노력이 ‘검도 용어 논쟁’과 같은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武道가 보편적인 문화라는 선대 무도인의 무리한 주장이 ‘검도’는 칼로 하는 운동의 일반명사라고 판단한 법원의 판결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만든 범인이었던 것이다.
일본의 정치적, 역사적 과오는 물론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일본적인 장점을 배격하는 배타성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남의 것을 겸허히 남의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 때 배울 것은 배우고 버릴 것은 버릴 수 있지 않을까.
칼에 대한 사소한 오해 바로잡기
날이 한 쪽으로 선 칼을 刀, 양 쪽으로 날이 선 칼을 劍이라고 부른다는 것이 상식처럼 굳어져 있다. 그래서 왼쪽과 같은 나무로 깎아 만든 외날 칼을 ‘목검’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목도’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구분은 다양한 칼을 쓰는 중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일본에서는 칼이 大刀(かたな)의 형태로 확립되어 모두 외날 칼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劍이나 刀의 구분이 없다. 앞으로는 혼동하지 않고 편하게 ‘목검’이라고 부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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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11.08.26
  • 저작시기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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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697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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