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의 생명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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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히포크라테스의 생애
2. 사상 :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인문의학자, 히포크라테스
3.「히포크라테스 전집」
4. 히포크라테스의 선서
5. 자연, 환자, 의사에 대해
6. 인간관 -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대하여
7. 마치며

본문내용

소, 직업의 귀천에 상관없이 진료했으며 「유행병」Ⅴ권에서는 그리스인이 아닌 노예 환자를 치료한 기록까지 남아있다(자크주아나, 2004).
5. 인간관 -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대하여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을 단일자(單一者)로 보는 기존의 관점을 반대한다. 히포크라테스 이전의 의사들은 존재란 단일자이며 이것은 하나로써 전체인 것이라는 동일한 전제 아래 자신들의 주장을 펴 나가지만 그 명칭은 일치하지 않는다. 즉, 어떤 사람은 인간이 공기, 혹은 불, 물, 흙 이외의 것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각자가 자기 주장을 설명하기 위하여 무리한 증거를 든다. 그들은 동일한 상상력을 사용하면서도 동일한 내용을 주장하지 않는 것은 결국 그들의 지식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의 신체는 안에 혈액, 점액, 노랗거나 검은 담즙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인간 신체의 자연성으로, 이것들에 의해 인간은 병고로 고통을 받거나 건강을 유지한다. 건강을 지키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 상호간의 혼합과 성능과 양이 조화를 이루는 때이다. 인간이 병고에 시달리는 것은 이 것들 중 어느 것인가가 너무 적거나 너무 많거나, 아니면 몸 안에서 떨어져 나와 전체와 혼합되지 않았을 경우이다. 만일 이것들 중 어느 것이 유리되어 독립하면 유리된 신체 부위가 질병에 걸리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위치로 흘러 들어온 신체부위가 그 과도한 충만 때문에 고통과 아픔을 일으킨다. 또한 그것들 중 흘러들어온 양보다 많은 양이 체외로 빠져나가면 그 빈곳에도 고통이 온다(히포크라테스, 1999).
인체의 생리나 병리(病理)에 관한 그의 사고방식은 체액론(體液論)에 근거한 것으로, 인체는 불·물·공기·흙이라는 4원소로 되어 있고, 인간의 생활은 그에 상응하는 혈액·점액·황담즙(黃膽汁)·흑담즙(黑膽汁)의 네 가지 것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였다. 이들 네 가지 액(液)의 조화(調和)가 보전되어 있을 때를 그는 ‘에우크라지에(eukrasie)’라고 불렀고, 반대로 그 조화가 깨졌을 경우를 ‘디스크라지에(dyskrasie)’라 하여, 이 때에 병이 생긴다고 하였다.
7. 마치며
히포크라테스의 업적, 또는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업적은 관찰에 근거한 진단과 처방을 중시한 ‘합리주의’로 요약된다. 지금과 비교하자면 과학이 크게 발달하지 못했음을 감안하더라도, 히포크라테스 전집에 나온 여러 의학 이론에서는 의외로 합리적인 사고가 두드러진다. 물론 잘못된 전제 때문에 잘못된 결론이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적어도 그 추론 과정만큼은 충분히 논리적이었다. 가령 당대에는 ‘신이 내리는 질병’으로 여겨진 간질에 대해서도 그 원인이나 처방을 신비주의로 설명하지 않으려 경계했고, 또한 실력도 없으면서 극적인 치료법을 이용해 대중의 관심을 끌려는 일부 의사의 행태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물론 히포크라테스 학파도 그 시대의 굴레를 완전히 벗어버린 것까지는 아니었다. 가령 인체를 직접 해부해 보지 않고 동물 해부에 근거해서만 지식을 쌓았기 때문에 종종 오판이 불가피했다. 가령 신경을 단순한 인대로만 알았고, 동맥과 정맥의 차이를 몰랐으며, 특히 여성의 자궁에 관해서는 완전히 오판을 범해서 마치 이 기관이 체내 곳곳으로 움직여 다니며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식으로 서술했다. 이것은 남성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오류며, 신비주의를 완전히 타파하지 못하고 종교나 비학의 원리를 끌어들인 것은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분명한 한계다.
그런 오류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체액설’이다. 이는 인체의 건강과 질환을 네 가지 체액(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의 조화와 이상에서 비롯된 결과로 설명하는 의학 이론으로, 훗날 이를 계승한 갈레노스가 더욱 강조함으로써 고대의 대표적인 의학 이론으로 각인되었다. 물론 체내 기관의 실제 구조나 작용과는 무관한 상상과 억측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체외로 배출되는 여러 가지 체액을 직접 관찰한 데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당대에는 제법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히포크라테스 학파가 모든 질병을 체액설로 환원시켜 설명한 것은 아니며, 그보다는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치료법을 더욱 권장한 것이 사실이다.
생전에는 물론이고 사후에도 히포크라테스는 큰 명성을 얻었다. 플라톤은「프로타고라스」와 「파이드로스」에서 “코스 섬의 유명한 의사 히포크라테스”를 언급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그를 “한 인간이라기보다는 의사로서” 위대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대(大)플리니우스는 의학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다가 히포크라테스에 와서야 비로소 광명을 되찾았다.”고 예찬했다. 히포크라테스의 명성을 확립하는 데 누구보다 혁혁한 업적을 세운 인물은 로마시대의 의사 갈레노스였으니, 수많은 저술에서 종종 히포크라테스를 인용하고 예찬했기 때문이다. 물론 후대에 가서는 히포크라테스의 권위가 워낙 높아진 까닭에 오히려 다른 새로운 학설이 억압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여러 가지 한계와 문제에도 불구하고 히포크라테스의 가르침은 오늘날까지도 의학의 본질과 의사의 자세에 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히포크라테스 연구가인 자크주아나는 다음과 같이 평가를 내린다. “과학적 입장에서 본다면 이제는 비록 히포크라테스의 이름으로 전승 되던 저술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 해도, 그의 인간적 측면은 의사들의 귀감으로 남았다. 결과적으로 볼 때 히포크라테스 전집은 그리스와 서구 세계에 과학 정신을 일깨워 주던 가장 풍부하고 가장 감명 깊은 유산 가운데 하나로서 존재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다.”(반덕진, 2005)
< 참고문헌 >
반덕진(2005). 히포크라테스의 발견. 서울 : 휴머니스트.
______(2006). 히포크라테스 선서. 서울 : (주)사이언스북스.
아커크네히트(1987). 세계의학의 역사. 경기 : 지식산업사.
우리사상연구소(2002). 우리말 철학사전 2. 경기 : 지식산업사.
자크 주아나(2004). 히포크라테스. 서울 : 도서출판 아침이슬.
히포크라테스(1999). 의학이야기. 서울 : 도서출판 서해문집.
Hippocraates, Epidemics 6.5.1(Loeb Ⅶ, 25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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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1.06
  • 저작시기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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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24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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