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IMF가 한국경제에 미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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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IMF 체제의 배경
(1) 돈의 세계화
(2) 산업의 세계화
(3) 전세계적인 실업의 확산
2. IMF 체제의 원인
(1) 국외적인 요인
(2) 국내적인 요인
3. 국제통화기금 IMF란?
4. IMF가 한국경제에 미친 영향
(1) 자본의 자유화
(2) 바겐 세일되는 한국의 주식회사
(3) 긴축과 고금리
(4) 이자 자본의 축제
(5) 기업의 부도
(6) 실업의 확산
(7) 중산층의 허망함과 몰락
(8) 가정의 파괴
5. IMF의 극복방법
(1) 국민(가정) 차원의 노력
(2) 기업 차원의 노력
(3) 정부 차원의 노력
(4) 시민단테의 노력
6. IMF 금융위기가 남긴 교훈
Ⅲ. 결론

본문내용

부 차원의 노력
-실업을 줄이기 위해 일자리를 제공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제도 정비
-우수한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
(4) 시민단체의 노력
-아나바다 운동 주도 : 아껴 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
-금모으기운동 주도
-교복 물려주기 운동, 헌 옷 수출(외화 획득)
6. IMF 금융위기가 남긴 교훈
IMF(국제통화기금) 금융위기-. 벌써 10년 세월이 흘렀다. 한때 온 나라를 극도의 공포와 불안으로 몰아넣었지만 이제는 과거지사로 까마득히 잊혀진 느낌이다. 대혼란의 '쓰나미'가 밀어닥치기 한 달 전인 그해 10월도 지금처럼 평온했다. 있었다면 뭔가 불길한 전조랄까. 동남아 통화위기가 그것이었다. 1997년 7월에 불어닥친 태국발 통화가치 폭락사태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을 강타했다. 하지만 10월까지만 해도 그건 강 건너 불일 뿐이었다. 이 통화위기 '태풍'은 가을이 깊어가면서 동북아로 방향을 틀었고, 그중 한국이 큰 타격 속에 IMF 관리체제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설마했던 사태의 봇물은 정부가 11월 21일 "외환위기 타개를 위해 IMF에 2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지원을 공식 요청했다"고 발표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터져버렸다. 그리고 이튿날 김영삼 대통령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참으로 송구스러울 뿐"이라며 난국 타개에 힘을 합쳐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했다. 사실 당시만 해도 일반인들은 IMF의 정체를 잘 몰랐다. 그저 교과서에서 배운 국제기구 중 하나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달까. 그 IMF는 협상과정에서 혹독한 조건을 제시했고, 코너에 몰린 한국정부는 이를 고분고분 수용했다.
12월 3일, 미셸 캉드쉬 IMF 총재가 방한해 김 대통령을 만난 데 이어 협상파트너인 임창렬 경제부총리와 담판을 벌였다. 그 며칠 전, 미국 재무부 고위관리가 내한해 여러 요구조건을 내민 것도 IMF의 실체와 배후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컸다. 이후 혼란상은 우리가 아는 바대로다. 1998년 초 몇 달 동안 하루에 100여 개의 회사가 줄도산했다. 부동산 가격 또한 폭락을 거듭했고, 금리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실업률도 급등해 몇 달 사이에 거의 세 배가 올라 IMF는 'I'M Fired(나는 해고됐다)'라는 자조섞인 별명으로 통했다.
정체를 드러낸 IMF는 할리우드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 나오는 무소불위의 정보기관 IMF(Impossible Mission Force)처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구원의 손길' 뒤엔 약육강식의 냉엄한 역학관계가 도사리고 있었고, 그 손에는 현실에 어설프게 대응한 대가를 치르라는 '지불명령서'가 들려 있었다. 궁지에 몰린 자에게 일방적 협약서를 내밀어 백기투항을 요구한 셈이다.
뼈아픈 IMF 관리체제의 위험성은 1993년에 정부가 단행한 금융시장 개방 때부터 내포돼 있었다. 미국 등 강대국은 자본시장을 열라고 압박했고, 정부는 치밀한 계획도 없이 덜렁 시장을 대폭 개방했다. 이어 '부자나라클럽'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해 개방속도를 더욱 높였다. 외적 압력과 내적 자만의 결과는 참담했다. IMF금융위기가 말 그대로 일시적 유동성 부족에 따른 통화위기였으나 IMF는 정부의 재정 및 정책 통제권 등까지 크게 약화시킴으로써 원하는 여건을 총체적으로, 신속하게, 그리고 공세적으로 조성해나갔다. 이른바 '자유 시장' '자유 무역'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권력을 무력화시켜 게임 자체를 강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일순간에 틀어버린 것이다.
무지와 오만이 치러야 하는 대가는 이처럼 가혹하다. 금융시장을 단기간에 대폭 열어제친 한국이 IMF 손아귀에 들어간 반면, 그러지 않은 중국과 대만은 '태풍권'에서 비켜날 수 있었다. IMF위기는 국내적으로 자본이 노동을 제치고 확고한 우위를 차지하는 계기도 제공했다.
장하준 교수(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저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지난 10년 역사와 현실에 대한 치열한 분석과 반성을 담고 있다. 장 교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주도해온 시장 만능주의가 숨기고 있는 '계산속'을 가차없이 들춰내 통쾌함마저 안겨준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동하는 IMF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자고 그는 주장한다. '부자나라들'은 개발도상국의 거시경제 안정과 성장을 보장하려면 IMF의 단호한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나 불행히도 IMF가 권장하는 거시정책들은 거의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도 나이에 따라 성장단계가 있듯이 국가 역시 저마다 발전단계가 있다. 초등학교 축구팀이 성인프로팀과 맞대결할 순 없다는 얘기다. 이를 간과한 채 강자가 요구하는 게임룰을 그대로 수용하는 건 파멸로 가는 초대장을 받아들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스스로를 과신한 나머지 섣불리 강자 또는 부자 행세를 했다가 회복하기 힘든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도 있다. 정작 자신들은 온갖 보조금정책과 보호관세, 규제강화에 기대어 개발도상국 단계를 졸업했고 지금도 일부 분야에서 그렇게 하면서도, 뒤따라 오는 개발도상국들에겐 그러지 말라며 '사다리 걷어차기'를 시도하는 부자나라들의 이중잣대 또한 주목해야 한다. 개구리가 올챙이에게 같은 조건에서 뜀뛰기해 승자를 가리자고 강요하는 격이랄까.
그리고 국가권력이 가져야 할 규제력과 조절능력의 중요성과 유효성도 다시 상기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시장에 대항하라'는 장 교수의 도발적 주장은 되새길 필요가 있다. 민간권력 주도의 자유시장원칙에 대한 지나친 신봉을 재고하자는 거다.
IMF금융위기 10년은 무슨 교훈을 남겼는가. 그 교훈을 얻기까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했는가. 양극화, 고용불안 등 IMF위기가 낳은 후유증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세계화의 첨병'으로 불리는 IMF가 "세계화가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며 사실상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인 보고서를 냈다는 최근 보도는 무얼 시사하는가.
한 번의 실수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같거나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는 건 용서할 수 없다. 맞닥뜨리는 현실을 차갑게 보고 내실있는 해결방안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더불어 다자적 기구인 IMF, 세계은행, WTO(세계무역기구)의 기본성격과 그 통제세력에 대한 면밀한 관찰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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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6.07
  • 저작시기20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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