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요약-아편전쟁과문호개방에대한중국의역사교육과역사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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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역사교육과 역사인식의 기본 관점
3. 역사교육과 역사인식의 흐름
4. 맺음말 : 중국의 ‘문호개방’과 동아시아

본문내용

있었다. 중국 ‘근대’에 대한 마오쩌둥의 관점과 마르크스주의는 그 역사인식과 역사교육의 기본적 출발점이 되었다.
- 중국의 아편전쟁과 ‘문호개방’은 반식민지 반봉건사회의 개시, 근대의 시작, 반제 반봉건 투쟁을 알리는 대 사건으로 규정된다. 이 과정에서 아편전쟁은 패배한 굴욕의 역사가 아니라, 중국 애국 인민의 반침략 전쟁으로 변모되었다. 이는 반제 반봉건 투쟁이 사회주의 혁명으로 성공하였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자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이다.
- 문화대혁명(1966~1976)이 종결되고 개혁개방이 본격화되는 중국에서는 ‘자본주의와 근대화의 실현’이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된다. 이제 중국의 아편전쟁과 문호개방은, 반제 반봉건 투쟁 뿐 아니라, 자본주의와 근대화 실현 과정의 시작으로 해석된다.
- 중국의 ‘문호개방’에 대한 역사교육과 역사인식에는 강한 정치적 논리가 담겨져 있다. 반제 반봉건 투쟁이라는 측면에서 중국 근대와 ‘문호개방’을 설명할 경우, 아편전쟁이 갖는 침략성과 그에 대한 인민의 불굴의 대응 및 공산혁명이 갖는 반제 의의를 강조하게 된다. 자본주의의 실현이라는 측면으로 해석할 경우, 현재 중국의 개혁개방의 논리를 ‘역사적’으로 입증하게 된다.
- (문제점) ‘문호개방’으로 시작되는 중국의 근대를 반제 반봉건 투쟁의 과정으로 파악할 경우 중국의 근대는 서구(열강)와의 관계 속에서만 설정된다. 근대 중국에서 주변 국가 내지 민족과의 관계는 거의 고려되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이는 근대 중국에서 조선을 비롯하여, 류쿠베트남 등의 국가 및 몽골티베트이슬람 민족과 중국과의 관계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 (문제점) 아편전쟁의 결과 맺어진 난징조약(1842)은 중국과 그 주변 국가가 전통적 화이질서에서 벗어나 만국공법적 근대 관계로 전환하는 중요한 계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 역시 서양과의 관계에서만 적용된다. 중국과 그 주변 국가의 조공관계는 여전히 유지되었다.
- (문제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역사교과서에서 이러한 내용은 전혀 반영되고 있지 않다. 조선에 대한 청조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한 언급 없이, “일본은 조선을 정복하고 중국을 침략하며 세계를 재패하려는 몽상을 가지고, 조선의 수도 서울을 점령하고 침략 전쟁을 발동하였다” 등등으로 시작되는 청일전쟁의 서술은 ‘문호개방’으로 시작되는 중국의 ‘근대’에 대한 역사교육과 역사인식의 실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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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10.25
  • 저작시기2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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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7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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