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의 교육제도 & 정치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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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스파르타의 교육제도 & 정치제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스파르타의 교육훈련체계
1. 서론
- 스파르타가 강국이 될 수 있었던 요인
2. 본론
- 스파르타의 교육제도
- 소년들의 훈련 <유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 소녀들의 훈련
3. 결론

스파르타의 정치제도
1. 서론
2. 본론
- 왕(Arcagetes)
- 감독관(Ephoros)
- 원로원(Gerousia)
- 민회(Ecclesia)
3. 결론

본문내용

대소집과 장군의 임명, 전투 실패시 책임을 물어 소환하는 일도 감독관의 결정 사항이었다. 각종 민사에 관한 사법권도 가졌고, 비밀 경찰까지 지휘했다. 다시 말해 행정권, 사법권의 상당부분, 군권, 경찰권을 쥔 최고의 권력기구로 손색없다. 여기다 국가 재정을 다루며 세금을 부과하니 오늘날 권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국세청까지 장악한 셈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왕을 갈아치울 수 있는 최고의 권한까지 감독관이 가졌다. 수석 감독관은 원로원과 민회의 의장도 겸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막강한 권한을 가진 5명은 누구인가? 왕족? 귀족? 스파르타는 왕을 허수아비로 만든 뒤 몇몇 특권세력이 국정을 농단한 체제인가? 아니었다. 감독관은 바로 시민이다. 스파르타 시민권을 가진(비록 시민수가 제한돼 있었지만) 누구나 감독관이 될 수 있다. 감독관직 자체도 시민들이 선거로 뽑았다. 스파르타 남성은 성인이 되면 감독관직에 오를 피선거권과 투표할 선거권을 동시에 가졌다. 시민사회 남자로 제한시켜 놓으면 완벽한 민주정이다. 그러면 감독관직에 올라 뇌물 쓰면서 계속 당선되면 정치가 부패할 수도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감독관직은 임기가 불과 1년이고 연임이 안됐다. 일부에서 연임이 돼 귀족의 과두정이 이어졌다는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 감독관직을 1년 더해보겠다는 주장을 편 사람이 스파르타에서 추방됐다는 기록은 이를 뒷받침한다. 왕가 이외에는 어떤 귀족계급도 존재한 증거가 없다. 오로지 중심은 시민이다. 시민 가운데 선출돼 1년간 딱 한 번하고 그만이다. 전쟁을 하든 국가 위기든 관계없다. 철칙이다. 페르시아와 명운을 건 대전쟁, 아테네와 펠로폰네소스 전쟁도 민주정의 기초를 흔들지는 못했다. 예외는 없다. B.C 500년에서 B.C 184년 316년 동안 1년에 5명씩 정확히 천 580명의 감독관이 재직했다. 국가 위기라는 거짓말로 시민사회를 기만하며 계속 임기를 연장하던 각국의 독재자들은 스파르타 정치체제를 좀 더 들여다봤어야 하나? 신적인 전통을 갖는 왕과 시민적인 정통성을 갖는 감독관의 갈등은 늘 존재했지만 시민주권의 감독관이 우위에 있던 독특한 체제가 스파르타였다.
3. 원로원(Gerousia)
스파르타에는 2개의 의회가 있었다. 하나는 요즘으로 치면 상원이라고 볼수 있는 원로원(게로우시아, Gerousia, 일명 게로키아 Gerochia)이다. 원로원은 30명으로 구성된다. 28명을 시민 손으로 뽑고, 나머지 2자리는 왕이 차지한다. 스파르타 시민으로 군복무의 의무가 끝나는 60세가 돼야 자격이 생겼다. 환갑을 넘겨야 들어가는 것인데, 당시 60 넘겨 살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스파르타 극장 유적. 뒤에 경사진 면이 관중석. 일부의 계단만 발굴돼 있다. 원로원 회의는 극장보다 규모가 작지만, 극장처럼 계단식으로 만든 별도의 건물에서 열렸다.ⓒ김문환
원로원은 기본적으로 의회이므로 그 주된 기능은 민회에 회부해 확정할 법안을 심의하는 것이다. 또 형사사건도 재판하고, 국가 반역이나, 시민권 박탈, 사형등도 결정했다. 사법기능까지 가진 셈이다. 물론 원로원의 결정 보다 뒤에 감독관의 최종 상고심이 더 큰 위력을 발휘했지만... 재미있는 것은 원로원 의원을 선출하는 방식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참 기가 막혀 했던 이 대목. 원로원 의원 후보자가 제비뽑기로 순번을 정해 광장에 나오면 시민들이 환호한다. 이때 근처 밀폐된 집안에 들어가 있던 판정관이 환호성 소리의 크기를 듣고 원로원 의원 당선 여부를 결정했다.
시민들에게 얼마나 인기있는가를 결정하는 방식인데... 우리네 선거판의 박수부대가 떠오른다. 돈 받고 유세장 따라다니며 돈을 준 후보가 나오면 "와" 돈을 주지 않은 후보가 나오면 "우" 하다가 썰물처럼 빠지던... 지난 2004년 4월 총선부터 합동연설회가 없어져 이런 목불인견의 타락한 정치판을 보지않아도 되지만, 바로 얼마전까지 우리도 박수부대가 필요했던 시대에 있었다.
4. 민회(Ecclesia)
민회(Ecclesia)는 그리스 직접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제도다. 한사회의 시민 구성원 전체가 모여 중대사를 결정하던 그런 방식이다. 원로원은 60세이상 가운데 후보자를 골랐는데, 민회는? 30세 이상의 성인 남자면 됐다. 스파르타에서는 30세 이상일 경우 집단 병영생활을 접고 아내, 자식과 가정을 꾸려 살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나라 투표권 만 20세는 참 민주정치 체제에 참여할수 있는 문호가 많이 개방된 형태다. 사실 이대목은 생각만 해도 민족적, 국가적 자존심이 상한다. 현재 20세인 선거연령을 19세로 바꾼다고 했는데, 서양 각국은 현재 만 18세에 선거권을 갖는다. 아직 우리 젊은이들이 서양 젊은이들보다 정신적인 성숙도가 낮고 민주주의를 할 준비가 부족하단 말인가? 한나라당이 앞장서 반대하고 있으니, 누가 우리국민을 우매화 하는지 이 대목에서 답은 자명하다. 스파르타 민회에서 국가적 과제를 놓고 난상토론 하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아테네를 연상하면 곤란하다. 그냥 감독관과 원로원이 제기한 안건에 대해 찬반 투표를 하는 정도였다.
III. 결론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방해하는 요인 하나는 인류사가 시간이 흐르면서 발전해 왔을 것이라는 진화론적 시각이다. 또, 사회가 탄생해 구원이든 파멸이든 어느 날을 향해 달려간다는 종말론적 사고도 마찬가지다.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 보면 일방적으로 발전해 오거나 한 방향으로 진행된 흔적을 찾기 어렵다. 단적인 예가 바로 그리스 사회의 민주정치다. 그리스의 수많은 도시국가들은 고대에 당연히 '왕이 있고, 왕이 전권을 휘둘렀겠지' 라는 우리생각이 얼마나 큰 함정에 빠져 있는지 잘 보여준다. 오늘날도 상당수 국가에서 실현하지 못한 훌륭한 민주 공화체제를 유지했다. 그리스뿐 아니라 비슷한 시기 지중해 서쪽을 장악했던 카르타고 역시 의회제도를 유지하며 민주주의 틀을 갖췄다. 로마도 서로마 제국만 따질 경우 천년 역사에서 반을 민주 공화정으로 존재했다. 폼페이에는 공직 투표소 코미티움이 남아있다.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시민들이 모여 공직자를 선출하던 투표장소가 2천년 세월을 무상하게 만든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소중한 민주 공화정의 뿌리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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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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