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작가주의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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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의 작가주의 영화감독!!!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다시는 한국에서 영화를 개봉하지 않겠다는 김기덕 감독의 아쉬운 소리가 있은 뒤 한동안 네티즌들 사이에서 찬반 여론이 불같이 치솟았다. 물론 김기덕 감독이 입 밖으로 내뱉은 말임에는 분명하지만 앞 뒤 말을 모두 자르고 일부만 채택하여 자극적인 기사를 작성한 언론의 무책임함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벌써 열 세 번째 작품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으며 세계 3대 영화제 중 베를린과 베니스 두 영화제에서의 수상 등 해외에서는 거장의 대우를 받고 있는 김기덕 감독이 유독 모국에서만 프린트 비용도 건지지 못하는 수모를 겪고 있는 것에 대해 나름의 섭섭한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상업영화의 일반적 흐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국내에서는 홍상수와 함께 작가주의로 불리우는 몇 안 되는 감독이 김기덕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예술이라는 이름에 어느 정도 관대함을 가진 국가이다.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곳이라는 얘기도 있듯이 문화예술에 대한 일종의 허영심이 많은 국가이기도 하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상황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문화적 이해심이 뒤떨어지는 나라는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일단 <희생>이 국내 개봉 되었던 90년대 중반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잠시 살펴보자.

영화담론이 형성되던 시기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 국내 개봉했던 1995년은 ‘문화의 시대’라는 언표 아래 대중문화의 위상이 변화하고 있던 시기이다. 고급문화/ 대중문화/ 민중문화 등으로 나뉘어져 불리우던 문화의 종류들이 90년대에 와서 ‘대중문화’하나로 흡수되어 버렸으며 90년대 중후반을 넘어서면서 이러한 양상이 더욱 두드러져 대중문화와 관련된 담론들이 전체 문화 담론을 넘어서 사회 내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이미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가 허물어져버렸고,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등 갖가지 포스트 담론들이 사고의 변환을 가져오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80년대 혼란기에 어린시절을 보냈던 소위 신세대들이 민중문화로 점철되었던 당시의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 80년대의 민중문화와 문학열풍, 통기타의 매력을 따라가는 조숙한 아이들이 있었던 반면에 그 세대의 대다수는 빠르게 변해가는 트렌드에 민감했고 컴퓨터라는 신기술의 급박한 발전에 열광했다. 그들이 어떤 사실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는 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매체가 TV와 컴퓨터였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영상이라는 매체가 이들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이해가 갈 것이다. 이 영상세대들이 빠르게 변해가는 대중문화 그 중에서도 정점으로 올라서고 있던 영화로 몰리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영화의 소비층이 헐리우드 상업영화를 소비하는 일반 관객계층과 국내에 수입도 되지 못한 유럽과 3국의 예술영화들을 음습한 시네마테크에 모여 관람하는 매니아 계층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한국영화는 유럽의 영화의 정신적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헐리웃 영화의 기술에 뒤떨어진 질 낮은 영화로 분류되어 있었다. 이런 인식의 배경에는 70년대 이전 단순한 구경거리 또는 정책 홍보의 수단으로 영화를 이용했던 암울한 역사가 존재한다. 그나마 소모품 취급을 받던 시기에서 벗어나 80년대 이후에는 영화가 나름대로의 의의와 경향을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영화가 문화권 내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이 때부터 영화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함께 관련 기사, 평론 등이 활성화됨으로써 영화 담론이 문화담론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대중적 관심의 증폭과 함께 학문적으로도 한층 더 심도 깊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교양인의 필수목록으로서 영화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문화담론에서 문학이 차지하고 있던 비중을 생각해볼 때 그 바통을 이어받은 영화에 대한 관심도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제 문학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영화를 이야기하고 영화에 대한 지식을 갖추는 것이 문화지식의 척도가 되는 시대가 도래했던 것이다. 거기에다 문화적 허영이 어느 정도 더해진 상태에서 많은 관람객은 <희생>과 같은 작품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게 된 것이다.

영화가 시대의 문화담론으로 떠오르면서 영화 평은 비단 영화평론가 뿐만이 아니라 소설가, 철학자, 문화평론가, 심지어는 정신과 의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분야의 사람들에 의해 쓰여지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문분야를 영화에 대입시켜 시대의 담론 속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키워 나가려 노력했다.

본문내용

폭력성과 거친 편집, 그다지 공들여 찍지 않은 화면, 그 중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은 여성에 대한 묘사이다. 여성비하 논란까지 일으켰던 그의 작품은 그의 배경과 오버랩 되면서 마치 근본도 없는 부랑자가 영화계를 흐려놓는 것처럼 비유되기도 했다.
이것이 홍상수와 김기덕이 걸어왔던 다른 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봤을 때 홍상수는 프랑스에서 가장 수상이 유력시되던 유망주에서 지루한 영화라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으며 김기덕은 연이어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을 거듭하며 세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각인되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작품을 해나가는 데에 있어서는 어려움을 겪는다. 영화가 가진 상업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특히 국내 영화시장이 가진 체계로 인해 독립적으로 작품을 해나가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따른다. 결국 두 사람은 해외에서 투자를 받기에 이르렀는데 그러고도 국내 시장에서는 흥행에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래도 홍상수는 작품을 해나가는 동안 김기덕 만한 비난을 받은 적이 없다. 하지만 김기덕은 유독 국내에서는 비난 여론에 휩싸인 채 살아가야 했다. <나쁜 남자>를 내놓았을 때 갑자기 올라간 조재현의 인기에 힙입어 70만 관객이라는 초유의 감격을 맛보기도 했으며 초기에 보여주었던 파격성을 버리고 이젠 감독 특유의 관념을 작품에서 드러내 보이고 대사를 최소하하는 실험성을 보여주는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선보였지만 여전히 그에 대한 이야기는 작품에 관한 것보다는 그의 사생활에 관한 것들이 더 많다.
이번에 그의 발언을 기사화한 형태만 봐도 여전히 그가 이단아 취급을 받고 있다는 증거가 드러난다. 앞 뒤 정황을 이야기하지 않고 무작정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만들어놓은 대부분의 기사를 보며 언론의 무책임함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기자도 역시 사람이기에 김기덕 감독의 지금까지의 행보와 그에 관한 제반정보가 확립된 상태에서 겪은 상황에 대해서는 주관적 해석을 가하지 않을 수가 없음이다. 그리고 언론이 전한 내용이 거짓은 아니었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하지만 김기덕의 사생활이 어떻든 작가는 작품으로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 쯤에서 김기덕의 작품이 가진 비 흥행 요소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건 다른 지면을 통해 이야기하기로 하자. 배경을 먼저 바라보는 인식이 바뀌어졌으면 하는 바램과 작은 영화, 또는 작가주의적 영화에 대한 정책지원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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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9.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9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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