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별로 본 삼위일체교리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각 시대별로 본 삼위일체교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삼위일체 논쟁 배경
2. 삼위일체의 논쟁 및 이론들
1) 동,서방 교회의 논쟁
2) 아리우스 논쟁

3. 니케아 회의
1) 니케아 회의의 성립 배경
2) 니케아(Nicaea) 회의 : 1차 세계 교회회의
3) 소집 동기
4) 회의
5) 결의
6)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의 사상 비교
7) 니케아 신조

4. 니케아 공의회 이후의 논쟁
1) 동서방 교회의 논쟁
2) 아타나시우스와 아리우스파의 분열
3) 니케아 신조의 확정

5. 니케아 회의 이후 콘스탄티노플 회의 결과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수 없다고 했다.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도는 낳아진 것이지 창조된 것이 아니며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이라고 주장하였다.
5. 니케아 회의 이후 콘스탄티노플 회의 결과
이 같은 상황에서 한 때 기독교인이었던 율리아누스 황제는 이교로 전향한 후, 많은 이방인들이 아타나시우스로 인해 기독교로 개종하자 362년 말 그를 다시 귀양 보냈다. 율리아누스 황제의 사망 후 아타나시우스는 잠시 알렉산드리아로 귀환했으나 아리우스파에 동조하는 발렌스 황제가 제국의 동부지역을 통치하면서 다섯 번째 귀양을 가게 되었다. 한편 서부 지역에서는 발렌시아누스1세가 니케아 정통교리를 지지하였다. 그러나 373년 아타나시우스의 사망으로 정통교리는 갑바도기아의 세 신학자, 가이사랴의 바질,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 닛사의 그레고리에게 계승되었다. 378년 발렌스 황제의 사망 이후 전 로마제국은 서부 지역의 그라티아누스가 통치하였다. 그는 영토를 분할하여 로마 제국의 동부 지역(이탈리아)을 테오도시우스1세에게 넘겨주었다. 테오도시우스 1세는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을 지지하였으며 그라티아누스와 함께, 한 신앙 안에서 제국을 통합한다는 칙령을 선포하였다. 이후로 니케아 공의회의 정의는 정통 교리로 선언되었다. 아울러 그는 아리우스 논쟁을 종결키 위해 381년 콘스탄티노플에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그러나 이 공의회는 150여명의 동방의 주교들만이 참석하여 아리우스 사상을 단죄하였다. 그리고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을 재확인하여 새로운 신경, 즉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을 채택하였다. 이 신경에는 니케아 신경에는 “주님이시오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니,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좇아 나시며,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같은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며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를 덧붙였다. 그리고 7월 9일 공의회는 법령을 반포하여 아리우스 사상을 단죄하였다. 이로써 아리우스 주의는 제국에서 종식되고 단지 게르만족들 사이에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게 되었다.
또한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신의 위격과 본성의 의미를 정의하고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를 다음과 같이 “하나님은 세 위격을 갖춘 유일한 존재”라고 결정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에게 있어서 세 위격, 즉 성부, 성자, 성령 안에 하나의 본성이 계신다는 것이다. 이 삼위일체의 최종적 정의를 얻는 데 있어서 갑바도기아의 세 신학자들이 크게 공헌하였다.
382년 동방 주교들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의 결정을 로마의 서방 주교들에게 보고하였다. 그리고 로마의 그라시아누스 황제에 의해 소집된 교회 회의에서 서방 주교들은 동방 주교들의 결정사항을 재확인하고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 법령을 선포하였다. 이로써 니케아 공의회는 에큐메니컬 공의회라는 칭호와 함께 정통파의 완승으로 막을 내렸다.
제2회 에큐메니컬 회의는 불리는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는 삼위일체론에 관한 두가지 중요한 내용이 결정되었다. 아카키우스(Acacius)에 의해서 주장된 타협형으로서의 ‘호모이우시오스’를 물리치고 니케아 회의에서 결정된 대로 ‘호모우시아’를 재확인한 것과 성령도 그의 본체가 하나님의 본체와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따라서 이 회의는 니케아 회의로부터 시작된 그리스도론 논쟁에 종지부를 찍음과 동시에 삼위일체론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스도에 관하여 이 신조는 니케아 신조와 같이 ‘참 하나님의 하나님’, ‘빛의 빛’이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성령론에 있어서는 그것이 하나의 고유한 위격과 기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또한 성령을 믿는다. 그는 주가 되시며 생명의 수여자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출원했으며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예배와 영광을 받는다. 예언자들에 의하여 예고되었다.” 다만 동방교회가 사용하는 텍스트와 서방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텍스트 사이에 성령의 출원에 관하여 차이가 있다. 동방교회는 “아버지에게서 출원했다”라고 되어 있으나, 서방교회는 “아버지와 아들에게서”로 되어있다. 여기에 첨가된 Filioque(휠리오크)라는 한 단어가 계속 문제되었으며, 결국 1054년에 동서 두 교회가 분열되는 큰 원인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아버지와 아들과 동등한 위격으로 성령조항을 보완하므로, 니케아 신조나 사도 신조보다 더 균형 잡힌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고백서가 되었다.
Ⅲ. 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사도시대 이후부터 콘스탄티노플회의까지의 삼위일체 논쟁에 대하여 살펴 보았다.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논쟁과 동 서방 교회, 변증가들, 아리우스 아다나시우스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대해 관심이 있었고, 그것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하며 논쟁을 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정통파의 승리로 고대교회의 삼위일체논쟁은 마무리 된다.
삼위일체는 기독교 교리의 가장 특징적이고 핵심적인 부분이지만 인간으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많은 이단들이 나오게 되고, 대부분의 이단들은 삼위일체를 부정한다. 이러한 이단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그분의 섭리로 삼위일체에 대해 우리에게 계시하셨다.
지금도 수많은 이단과 삼위일체에 대한 많은 논쟁들이 있지만 고대교회의 많은 논쟁과 연구와 토론의 결과로 우리는 완성된 삼위일체에 대해 배우고 진리와 비 진리가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게 되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한 삼위일체에 대해 계시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바르게 분별하고 바르게 가르칠 수 있는 목회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박용규, 『초대교회사』, 총신대학출판부, 2002.
서요한, 「초대교회사」, 도서출판 그리심, 1993.
심창섭외, 『핵심요해 교회사 가이드』서울: 아가페 문화사, 2002.
유해무, 『개혁교의학 : 송영으로서의 신학』서울: 크리스찬다이제스트, 2002.
이종성, 「삼위일체론」, 대한기독교출판사, 1991.
이형기외 5인, 『기독교 사상사Ⅰ』, 대한기독교서회, 2004.
곤잘레스. L. 유스토, 『초대교회사』 서영일 역. 서울: 은성, 1995.
로저올슨. 크리스토퍼, 『삼위일체』, 이세형역, 대한기독교서회, 2004.
베른하르트 로제, 『기독교 교리사』, 구영철역, 컨콜디아사, 1988.
  • 가격3,0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9.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91399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