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안에 나타난 이단과 정통(헤럴드 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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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회사 안에 나타난 이단과 정통(헤럴드 브라운)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제 1장 조명된 이단
제 2장 이단은 왜 일어나는가?
제 3장 공통된 근거
제 4장 구조와 변화
제 5장 신약 성경의 정경화
제 6장 변증가들
대변증가들 : 이레니우스와 터툴리안
제 7장 단일신론
제 8장 대변화 : 아리우스 주의
제 9장 삼위일체론
제 10장 기독론
제 11장 작은 문제들 : 선택, 자유의지 그리고 배교
제 12장 성상과 이단
제 13장 새로운 이단 새로운 문제
제 14장 새로운 교회와 옛이단 : 스콜라 철학, 십자가 운동 그리고 이원론
제 15장 경건한 이단자들
제 16장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제 17장 정통의 시대
제 18장 경건주의와 이단
제 19장 계몽주의 이단
제 20장 부흥된 전통이냐, 정통의 부흥이냐?
제 21장 정통의 소생과 퇴보
그의 재림의 조짐들

본문내용

존할 수 일을까?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약속이 있었던 이래 거의 2000년이 흐르는 동안 교회는 “음부의 권세”로 인하여 당황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독교의 의장을 입고 등장했던 영지주의와 아리우스주의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 중 어느 하나가 승리했다면 우리가 알기로 기독교는 더 이상 존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기독교 대부분의 역사에서 교리, 경건 그리고 윤리학은 나란히 함께 길을 걸어왔다. 대 신학자들은 대 설교가들이었다. 루터와 칼빈과 같은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건축가들은 다른 활동보다도 설교하는 사역에 중점을 두었다.
학문계에 전적으로 몰입되어 있는 자유주의와는 달리 또 개인주의와 종교적 체험을 강조하는 경건주의와는 달리, 바르트와 브룬너의 신정통주의는 교회 중심적이었다. 그래서 신정통주의는 전통적 교리들을 재확언하려고 했지만 그것들을 포기하지 않은채 경건주의 내에 남아 있었던 사람들과 연합하는 일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들은 인간의 죄와 그 죄의 결과에 대하여 보다 새로운 관점으로 이해하려는 성경적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죄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킨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의 위격을 보다 급진적이고 보다 신학적으로 이해하려고 했다.
마틴 루터는 이신칭의의 우수성을 인정했던 교회들을 표현하기 위해 “복음 주의적”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복음주의적 프로테스탄트들은 독일 경건주의뿐만 아니라 영국 비국교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들의 수는 희석되지 않은 프로테스탄트 정통의 대표들을 내포하고 있다.
대중적 복음주의 내에서는 1951년 희년에 실재적인 신앙부흥이 시작되었다. 전 도시를 대상으로 하는 복음주의적 빌리그래함이 이끄는 “십자군들”은 1940년대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몇 년 내에 비공산권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래서 보수적 프로테스탄티즘은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여 신학적인 면보다는 수적인 면에서 보다 강력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학 교육, 즉 새로 신설된 신학교들에서 정통 프로테스탄트들의 활동은 빈번해 졌다.
과거 명성있는 신학교들과 신학대학원들이 점점 쇠퇴해 가고 약해지고 있고 관련 있는 유사 종교나 학문 분야에 상대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보수적 경향을 띤 새로운 학교들이 세워져 과거의 자매 학교들보다 많은 학생들에게 매력을 주고 있다.
불트만은 “신화”와 “신화적” 용어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예를 들면 하나님에 관한 용어들에 대한 신화적 언어는 이 세상과 비교해 볼때 초월적인 것이다. 불트만에 의하면 그러한 용어들은 현대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아닐 수 있다고 한다. 자기 충족적인 세계관을 지향하는 현대과학으로 세뇌가 되어 버린 현대인들은 그 어떤 초자연적 능력도 고려하지 않는다.
또한 불트만은 그리스도의 위격과 관련된 신약 성경의 표현은 실제로 그의 사역의 중요성을 표현하려 했던 시도들이라 할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수님과 관련된 여러 신약 성경의 진리와 신조적 설명을 부인하는 불트만은 초창기의 회의주의자들에 비해 전혀 새로운 것을 소개하지 않는다.
불트만이 비록 “프로테스탄트”이지만 1980년대의 카톨릭 교회 안에서 자신의 안식처를 찾았을 뿐 아니라 제수잇(예수회)이지만 쉬낙켄부르그보다 대학교 수준에서 자신의 보금자리를 찾았다는 것이다.
비기독교계의 연합을 목적으로 세계 종교회의를 궁극적으로 이룩하기 위해 프로테스탄티즘과 동방정교의 연합 노력이 이루어졌지만 로마 카톨릭주의는 모든 기독교를 위해 이룩하려는 유일한 권위성과 권리성에 대한 변함없는 확신을 최종적으로 주장했다.
범교회 종교회의들은 서방에서 빈번하게 일어났지만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의 발발 이후 매우 드물게 일어났다. 반 종교개혁의 활동은 매우 오랫동안 연장된 트렌트 종교회의로부터 시작되었다. 트렌트가 종교개혁에 대한 강력한 반대적 입장을 표명하면서 1차 바티칸 종교회의는 교황의 지상권을 재확언 했을 뿐만 아니라 교황의 무오류성을 천명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트렌트 종교회의는 기독교계 내에 성경적 무오류성을 주장하는 물의를 빚지는 않았다. 프로테스탄트계에서 회의주의적 자유주의는 활짝 피어났고 정통은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프로테스탄트와 같이 로마 카톨릭 신학은 이단적이거나 정통적이라고 보기가 어려운 범교회적 신조들을 형성시킨 질문들과 관심들을 가지고 멀리 나아가고 있다. 프로테스탄티즘과 같이 로마 카톨릭 신학 역시 정통도 아니고 이단도 아닌 다른 종교라고 말할 정도로 멀리 나아가고 말았다.
그의 재림의 조짐들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과 속성에 관한 정통 교리는 1500년이상 동안 기독교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수용되었던 것들 중 하나이다. 이에 비하여, 종말론이라고 불리거나 마지막 날에 대한 교리라고도 불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교리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정통 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산자와 죽은 자들을 심판하시러 오실 것이다” 라는 것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으며 신조들이 확언하고 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그의 재림의 시각과 그것을 알리는 조짐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석되어 왔다. 수세기 동안 그의 재림에 대해서는 많은 경고들이 있었다.
예수님은 자신의 재림에 대해 자주 언급하셨다.
기독교의 수세기 동안 신자들은 “불법의 사람”을 밝혀서 재림의 때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요4:22) 하지만 신학과 기독론은 헬라인으로부터 나왔다. 칼케돈의 기독론은 “헬라 적인 것”이 합법적이라는 주장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주장으로 인하여 쇠퇴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이신 “이 사람”께서 자신을 의지하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믿는 것이 역사적 기독교의 확신이었다. 하지만 존재론적 관심, 즉 그리스도는 누구인가와 같은 “헬라적” 관심을 거절하게 됨으로 칼케돈의 종말을 고할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의 때”를 고하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의 탄생 이후 천년을 맞이할 때마다 수백만의 기독교인들은 종말의 조심을 예상하고 기대하고 있었지만 아직 그 종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루살렘은 달력에 나타난 연대보다도 더 중요한 역사적 시간대에 자리를 잡고 있다. 칼케돈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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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7.11
  • 저작시기2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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