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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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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신의 존재와 인식
1. 고대 교회
2. 중세 교회
3. 종교 개혁 교회

Ⅲ. 신의 명칭
1. 하나님의 명칭개관
2. 구약의 명칭들
1) 초월하신 하나님
2) 신약의 명칭들

Ⅳ. 신의 속성
1. 하나님의 독립성, 혹은 자존성
2. 하나님의 불변성
3. 하나님의 무한성
1) 절대적 완전성
2) 영원성
3) 무변성
4. 하나님의 단순성

Ⅴ. 신의 섭리
1. 섭리의 정의
2. 섭리의 대상
3. 섭리의 성질
1) 보편성(普遍性)
2) 주밀성(周密性)
3) 주권성(主權性)
4) 허용성(許容性)
4. 섭리의 요소
1) 보존(Preservation)
2) 협력(Concurrence)
3) 통치(Government)
5. 비상섭리(非常攝理)

Ⅵ. 신의 삼위일체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8:21.22; 9:10,12,16; 벧전 3:20).
2) 협력(Concurrence)
보전이 피조물의 존재를 유지시키는 신적 사역이라고 한다면, 협력은 피조물의 활동 배후에서 이를 가능케 하는 신적 사역이다. 즉, 협력은 하나님의 절대적 의지와 능력이 자연 세력이나 인간의 의지와 같은 종속적 능력과 합력(合力)하여 일을 이루시는 신적 사역이다. 따라서 인간이나 자연의 모든 활동은, 제 2원인과 동시적으로 섭리하시는 제 1원인, 즉 하나님의 직접적인 신적 협력에 따라서만 가능하다(행 17:28).
3) 통치(Government)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존재 목적에 맞게 다스리시는 신적 활동이다. 그런데 이러한 통치는 외면적 세계(마 4:45; 행 14:17), 이성적이거나 비이성적 피조물(시 104:21; 잠 21:1), 큰 일과 작은 일(시 126:2,3; 마 10:29), 일반적 일과 특별한 일(시 127:2; 잠 16:33), 선행과 악행(행 14:16; 빌 2:15), 이스라엘과 열국(시 47:9; 사 33:22) 등의 모든 영역이 그 대상이다. 따라서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는 인간으로서는 그 통치의 양식을 알 수 없고, 또한 그 누구도 이 역사를 막을 수 없다. 비록 하나님에 대한 대적이 있다고 할지라도 도리어 그것은 그분의 위대한 목적을 이루는 데 이용될 뿐이다.
5. 비상섭리(非常攝理)
이것은, 자연 법칙에 따라 역사되어지는 통상 섭리(通常 攝理)와는 반대로 일반 법칙을 초월하는 임시적 역사로서, 제 2원인의 매개없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에 따라 일어나는 이적을 말한다. 이러한 이적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드러내시기 위한 특별한 수단이므로, 가시적(可視的)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Ⅵ. 신의 삼위일체론
하나님의 현실성은 그리스도교 신학에 있어서 <삼위일체론>안에서 확보된다. 삼위일체론은 유신론고 무신론이 투쟁을 근본적르로 모호화 시키고,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육신 하신 하나님, 생명의 영을 통해 인간을 만나시는 그 하나님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성서적, 그리스도교 전통적 신이해이다. 레슬리 드와트는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삼위일체론의 궁극적인 기초는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통일성(unity)으로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자기 전달의 발현(self-communicating)으로서 생각되어야만 할 것이다. (The Future of Belief, 143.)
그리스도교는 신이해에 있어서 유대교와 차별성을 분명히 갖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은 유일하고 불변한 실체로서의 존재자라기보다는 예수를 통하여 역사에 참여하고 종말론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능력이다. 그 하나님은 자기 스스로 존재이유를 갖는 이가 아니라 인간구원, 나아가서 우주론적 구원을 지향함으로써 자기를 드러내는 분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내재성이 불필요하다는 말은 아니며, 그 내재성은 경륜성과의 관계속에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륜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는 변증법적으로, 참된 하나님 그리고 역사와 인간과 세계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가장 독특하게 기독교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신학적 개념이다.
하나님의 절대성이란 무엇인가? 전통적으로 교회는 하나님이 절대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의 온명과 우주의 신비를 주관하신다고 가르쳤다. 여기서 우리는 악의 존재 때문에 다시 한번 자기모순 가운데 빠질 수 있음을 상기해야한다. 만약 절대자로서의 하나님을 말할 수밖에 없다면 어떻게 악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가? 몇 가지 변중학이 시도되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오늘의 기독교 비판을 모두 입다물게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절대성과 하나님의 사랑을 동시에 강조하려면 악의 근원으로 인해 이원론에 휘말려 들 수도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성에 대해서 구원론과의 관계성 속에서 새롭게 인식해야한다. 하나님의 절대성은 모든 것을 혼자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절대성은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필요없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자신의 절대성을 이 역사에 의존하시는 분이다. 인간구원을 위하여 스스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교회의 가장 오래된 신앙고백인 것처럼 하나님은 역사 안으로 들어오셨다. 역사 안에 자신을 의존시키는 하나님은 그런 방법으로 절대성을 유지한다.
마지막으로 판넨베르그가 말하는 미래적 존재론 이라는 관전에서 하나님의 현실성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실체론적 형이상학은 하나님을 그저 저 높은 곳에 앉으사 인간을 다스리는 절대적인 분으로 설명하였다. 그분은 이미 자기 존재성을 완전하게 갖추신 분으로서 아무런 도움 없이, 그리고 호로 완전하게 존재하는 분이라는 말이다. 판넨베르그는 하나님은 과거나 현재에 완전한 존재가 아니며 미래에 그 존재가 드러나는 종말론적 존재라고 말한다. 아직은 모든 사물이나 인간, 그리고 그 세계와 역사는 잠정적이며, 하나님도 완전하게 드러나지 않은 때이다. 하나님이 어떠한 존재인가를 안다는 것은 미래, 족 종말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판넨베르그의 역사신학과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과의 차이는 종말로부터 오시는 하나님 과 과거에서 미래로 되어가는 하나님에서 알 수 있다. 판넨베르그의 미래적 존재론은 하나님이 부족하다거나 와전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의 드러남이 미래에 가능하므로 그 때 까지 하나님 이해는 개방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인 반면에 회이트 헤드는 하나님의 섭리와 절대성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단순히 모든 존재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발전되어 가는 그 신을 일컫는다.
참고문헌
김성원 : 신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 대한 기독교서회, 2001
성종현 : 신약총론, 장로회신학대학 출판부, 1992
오영석 : 조직신학의 이해, 대한기독교서회, 1992
윌리암 캐논, 남기철 역 : 웨슬리 신학, 기독교 대한감리회 교육국, 1986
윤철호 : 관계성 안에 계신 하나님, 장로회 신학대학교 교수세미나자료, 1995
웨인 그루뎀, 노진준 역 : 조직신학(상), 은성, 2005
John Calvin, 원광연 역 : 기독교 강요,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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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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