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서 바라보는 종교 다원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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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독교에서 바라보는 종교 다원주의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기독교에서 바라보는 종교 다원주의


::::: 목 차 :::::
들어가는 글
종교(다원주의)를 바라보는 개신교와 가톨릭의 두 입장
종교다원주의의 이론을 제공하는 진보적 시각들
종교다원주의의 다른 유형과 종교간 대화에 대한 보수 신학적 평가
종교다원주의를 수용할 수 있는 기독교 : 역사적 예수 연구를 중심으로

본문내용

야만 한다. 종교다원주의가 교회 밖으로부터, 즉 다문화 사회 속에서 생겨난 산물이라면, 성서 안에서 교회적 실천을 통하여 종교다원주의를 말할 수 있는 내적 근거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최근 역사적 예수 연구의 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5. 종교다원주의를 수용할 수 있는 기독교 : 역사적 예수 연구를 중심으로18)
교파를 막론하고 한국 내 기독교회의 대다수가 종교다원주의 신학을 수용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단지 교회성장의 둔화를 염려해서라면 그것은 부정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되지 못한다. 교회의 존재 이유 및 선교가 무엇인지, 구원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종교다원주의를 거부하는 것만이 교회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인지를 진실되게 묻고 토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기독교, 곧 예수 출현의 의미가 무엇이었는가를 충분하게 이해하고 검토할 때 걸림돌처럼 여겨진 종교다원주의는 오히려 기독교 신학 및 교회의 발전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수도 있다고 보여진다. 지금까지 교회 안에서 인습화된 고백 형태로 남아 있는 그리스도의 선재성, 유신론적 하느님, 구원의 방주로서 교회론 등은 현대 사회 속에서 자명하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이것들은 실제로 성서학자들의 역사적 예수 연구의 결과물과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인습적인 믿음 대신 성서학자들의 성실한 학문적 연구를 수용한다는 종교다원주의 논쟁은 지금처럼 그렇게 흑백논리식으로만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주지하듯 기독교는 우리들에게 예수 자신으로부터 초대 교회의 예수 체험, 교회화 과정 그리고 교회적 전통에로 이어진 신앙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도록 가르쳐 왔다. 그러나 최근 역사적 예수 연구 작업은 이런 일련의 틀과 과정 속에서 신앙을 이해하는 것에 만족치 않고 역사적 예수로부터 직접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심하고 있다. 즉 예수는 인습화된 당대 유대문화(율법)를 하느님 영의 시각에서 비판했으며, 하느님 영의 활동을 사회 내에서 재활성화시키려 했던 존재로서 예수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하느님 영을 받았고(마 1:10), 광야에서 시험받으며 하느님과 교제하고 연합하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 영의 현존 속으로 들어가셨으며, 그 힘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불의한 일에 대해 채찍을 드신 분이었고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죄인들, 여자들을 전적으로 사랑하신 분이었다.
즉 예수는 당대 문화에 대해 온몸으로 이의를 제기할 만큼 하느님 영의 실체와 하나가 되신 분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은 우리가 이런 영 체험, 예수가 체험했던 영을 다시 경험함으로써만 역사적 예수와 직접적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수 자신이 하느님을 대상화하던 간접 종교로부터 그분을 아버지로 체험하는 직접 종교를 선포하였듯이 오늘 우리 역시 하느님이나 예수를 대상적으로 믿는 사람이 아니라 그를 깨닫고 알며 그의 영을 체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현재적 직접성으로 신을 인식한 예수, 그의 영 체험은 분명 독특한 것이지만 그로써 그리스도 예수의 절대적 유일성이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이 이들 연구의 주요 결과물이다.
이 점에서 마커스 보그(M. Borg) 같은 학자는 저 바깥으로부터 이 세상 속으로 예수를 보낸 초자연적 존재로서의 유신론 하느님을 말해온 기독교 전통과는 달리 성서 속에서 발견되는 하느님은 초월적이며 동시에 내재적인, 지금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영(encompassing spirit)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19) 성서의 하느님은 우주와 분리된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지금 여기 계시며 사람 속에 계실 뿐만 아니라 하늘과 자연, 그리고 삼라 만상이 하느님의 현존을 증거하는 그런 존재라고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감싸며 포월하는 영, 더 이상 초월적 유신론의 형태로서가 아니라 범재신론적 하느님을 일컫는 이 영은 인간 속에서 탈자적, 초분별적 경험을 가능케 한다. 다시 말해 이 하느님은 존재 증명을 위한 논리적 사고의 대상도 아니고, 신조의 차원에서 믿음의 객관적 대상도 아니며 오로지 경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으로서, 이런 체험 속에서 우리는 예수가 체험했던 그 영과 직접적으로 관계 맺을 수 있는 길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느님 영의 현존에 자신을 개방하였고, 그 영의 현존 속에 사로잡힌 예수를 우리가 신의 현현 내지는 육화로서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예수의 인격과 삶 속에서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가 결정적으로 드러났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 영의 힘에 의해 수많은 사람을 치유하였고 대안적인 사회적 비전을 갖고 당시 지배체제에 도전했던 예언자였기 때문이다. 예수의 영 체험이 독특한 것이기는 하되 절대적 유일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듯이 그가 지녔던 대안적 사회 비전, 예언자적 저항 활동 역시 이웃하는 선한 벗들과 함께 행할 수 있는 사명이라고 생각한다.20)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타종교를 부정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종교다원주의 이론과 생사를 건 투쟁을 하는 데 있지 않고 예수가 체험했던 하느님 영을 어째서 오늘 우리가 체험하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묻는 데 있는 것이다.
오늘의 기독교가 범재신론의 표상을 입은 성서 하느님을 재발견하고 모든 것을 포괄하시는 하느님 영을 체험한 예수 체험의 현존, 하느님 영의 임재를 목말라 한다면 종교다원주의는 기독교를 목조이는 불순사조가 아니라 기독교 자체를 거룩하게 만들어 가는 하느님의 선한 벗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확신이다.
제2의 차축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오늘, 우리는 오히려 자기 종교의 틀 속에 안주하여 머물러 있기보다는 역사적 예수 연구를 근거로 남의 종교로 넘어가서 배우고 다시 자신의 종교로 되돌아올 수 있는 영적 모험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여전히 하나만 알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종교학적인 명제를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동종 교배의 체계 속에서 열등한 모습으로 삶을 이어가기보다는 이웃의 소리(이종 교배)를 들음으로써 뜻밖의 은총을 경험하는 기독교를 기대하는 것이 21세기를 맞는 우리의 소망이 아니던가
  • 가격3,0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0.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04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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