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진출한 섬유업체 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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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북한에 진출한 섬유업체 태창>!!!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한국의 중견 섬유 업체인 태창은 지난해 상당히 밝은 전망을 가진 사업 기회를 포착하는 듯했다. 무려 6년간의 길고 지루한 협상 끝에 이 회사는 북한과 금강산 부근에 합작 샘물공장을 건설하는데 전격적으로 합의했다. 북한의 근로자와 주민, 그리고 태창의 중역이 참석한 3월의 공장 완공식 분위기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금강산 샘물은 맑고 깨끗한 맛으로 남한 시장에서 반응이 좋았다. 때 마침 성사된 남북한 정상간의 역사적인 회담 역시 한국 내 북한 제품의 인기를 높이는데 기여했고 이 사업은 남북한 경협 사업의 모범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태창이 약 2천5백t의 샘물을 남한에서 판매한 직후 갑자기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북측 합작 파트너가 물 값을 무려 30배나 인상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이유는 샘물이 한국에서 그만큼 높은 가격에 팔리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태창은 마케팅이나 물류비 등 제반 비용 때문에 어렵다고 설득하려 했지만 결국 북측은 샘물 공급을 중단해버렸다. 태창의 공순현(孔舜炫) 과장은 “북한 사람들은 아직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모르고 자신들의 방식만 고집한다”고 말했다.

북한에서의 척박한 사업환경 때문에 고전하는 회사는 태창만이 아니다. 남북간 화해 무드에 편승해 큰 이익을 실현하고자 최근 북한에 진출했던 많은 한국 기업이 북한에서의 보이지 않는 사업 장애물이나 위험에 대해 새삼 절감하고 있다. 이 문제들은 사실 훨씬 오래 전 북한에 진출했던 일본의 조총련 기업들이 경험했고, 또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 기업이 겪는 어려움은 훨씬 그 규모가 크다.

결국 북한이 최근 변화와 개방을 시사하고 파산 지경에 이른 자국 경제를 회생하기 위해 외국 자본의 유치를 겉으로는 말하고 있지만 실지로 그 내면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대·대우 등 많은 대기업이나 여타 중소기업들의 최근 쓰라린 경험은 북한에서 사업에 성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물론 북한의 싼 노동력이나 한국과의 지리적 인접성은 여전히 장점이 되지만 관료들의 규제나 턱없이 부족한 사회간접자본시설, 그리고 무엇보다 수익성에 대한 개념의 부재는 이런 장점을 무력하게 만든다. 명지대 북한학과 이동복(李東馥) 교수는 “북한과 사업하는 것은 마치 블랙홀과 사업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무리 투자를 열심히 해도 이를 회수할 전망은 감감하다”고 말했다.

지난 몇년간 다수의 한국 기업들이 관광이나 제조업을 위해 북한에 진출했다. 이들은 주로 의복·신발·TV 등 경공업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설비를 투자하거나 임가공 형태의 방식을 취했다. 남한의 원·부자재와 북한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임가공은 완제품을 다시 한국으로 운송하는 형식이다. 이들 중 상당수 기업이 손실을 겪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규모를 최소한 수억달러로 추정한다. 역시 많은 투자를 한 기업이 많은 손실을 안았다.

현대의 금강산 관광사업 경우 1998년부터 항만이나 도로를 건설하고 북한 당국에 관광 입장료를 지불하기 위해 무려 6억달러가 투자됐다. 그러나 북한의 심한 규제를 받는 단조로운 관광 코스가 한국인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지 못하고 단지 2억달러 정도의 수입만 안겨 주었다. 그 결과 현대는 최소한 4억달러의 손해를 입었고 이는 한때 한국 최대 재벌이었던 현대가 무너지게 된 한 이유가 되었다. 1999년 붕괴한 대우그룹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남북간 최초의 합작 사업인 대우 남포 공장은 5백만달러의 투자로 1996년 완공된 뒤 의류나 신발을 생산해 왔다. 그러나 현재 이 공장은 30% 정도밖에 가동되지 않는다. 약 2년 전부터 사업확장 관계로 양측간 이견이 있은 후 북측 파트너가 대우 기술관리 요원의 입국을 거부해 온 것이 주요 이유다.

대우의 한 담당자는 이 사업에 대해 거의 희망을 잃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대북 사업에 대체적으로 조심스러웠던 삼성 같은 기업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자딘 플레밍의 김철중 연구원은 “위험한 대북 사업 때문에 현대는 시장의 신뢰를 잃었고 반면 신중함 때문에 삼성은 덕을 보았다”고 진단했다.

한국 기업은 처음에는 항상 부푼 꿈을 안고 북한에 진출한다. 북한의 노동력은 한달 평균 1백달러로 남한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을 뿐 아니라 잘 훈련돼 있고 노사갈등의 문제점도 별로 없다. 이들은 같은 한국말을 쓰고 한국의 문화 전통을 공유한다. 또 남북 주요 항구간의 거리가 짧아 큰 이점이 될 수 있다. 한국전쟁 후 끊긴 육로나 철로의 연결 계획도 마련돼 있다. 그리고 북한의 경제가 회복될 경우 2천5백만명의 북한 인구는 종국에 잠재력이 큰 시장이 될 수 있다.

본문내용

이거나 단순히 감상적인 이유로 북한에 많은 금액을 투자해 화를 부른 경우도 있다. 현대 대북사업의 경우 정주영 명예회장의 고향을 향한 감상적인 동기도 사업을 시작한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
남한이나 해외에서의 언론 홍보효과를 위해 대규모 대북사업을 이용했던 회사들도 있었다. 어떤 경우는 햇볕정책을 추진하는 한국 정부의 호의적인 반응을 얻어내기 위해 대북사업을 추진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상당수 회사들이 북한에 존재하는 사업의 위험성이나 보이지 않는 장애물에 대해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현재 평양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생산하는 IMRI의 유완영(兪玩寧) 회장은 “많은 한국의 기업인들이 자신들이 북한을 잘 안다고 느끼고 사업을 시작하지만 북한이 지구상에서 가장 베일에 싸인 나라라는 점을 간과한다”고 경고한다.
그 자신 북한을 무려 30번이나 방문했지만 유회장은 북한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단정한다. 그 때문에 그는 항상 단계적으로 조심스럽게 북한에서 사업을 전개했고 그 결과 건실한 사업운영을 할 수 있었다. IMRI가 아직 북한에서 큰 이익을 남기지는 못하지만 대북사업에서 손해보지 않는 것만 해도 일종의 성공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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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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