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꽃꽂이 역사와 꽃을 관리하는 관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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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시대의 꽃꽂이 역사와 꽃을 관리하는 관직에 대하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고려시대 꽃꽂이
2. 한국 꽃꽂이 역사
3. 화훼장식의 역사 및 특징
1)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2) 고려시대
3) 조선시대
4. 고려시대 꽃꽂이 관직
1) 의식과 담당관직
2) 장식을 위한 담당 관직
참고자료

본문내용

작약과 자줏빛 작약 10여 품을 가득히 꽂았다.”라는 기록도 이를 입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또 이 시대의 시가를 보면, 꽃을 꽃병이나 수반뿐만 아니라 머리·모자·옷 등에 이르기까지 장식으로 꽂았음을 알 수 있다. 이와같이 꽃을 꽂는 풍습이 일반화되었기에 그 양식도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청자상감모란당초문 항아리에 새겨진 그림에서는 대층으로 화반에 꽃줄기를 한 그릇 안에서 나누어 꽂는 현대의 나누어 꽂기 형식을 찾아볼 수 있고, 청자철재화분문병에는 비대칭의 꽃음새도 볼 수 있다. 또 12세기 청자상감수경문경판을 살펴보면 그릇 언저리에서는 줄기를 나누어 꽂으면서 윗 부분을 교차(交叉)시킨 기법도 현대와 동일하다 하겠다.
수덕사 대웅전 안벽의 그림에서는 수생화·야생화를 선과 여백처리가 아닌 수법으로 풍성하게 처리한 좌우대칭의 수반형태를 볼 수 있다.
〈관경변상도 觀經變相圖〉나 〈수월관음도 水月觀音圖〉의 공화(供花)에서는 장식성이 강한 옆으로 누인 구성표현을 한 양감적인 좌우대칭의 경향을 볼 수 있다. 또한〈 수월관음도〉에서 보이는 정병(淨甁)의 버드나무는 중생을 구제하는 대자대비한 관음보살의 표상이며, 재앙을 쫓는다는 종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꽃문화예술에 있어서는 시대적인 흐름에서 볼 때 넓은 뜻의 기원(起源)적인 의미와 자연묘사적인 표현의 발전과정을 찾아볼 수 있다.
이밖에 해인사 대적광전 벽화(모사도)에는 늙은 가지의 선을 살려 꽂은 꽃작품에서 이 시대의 높은 미감을 읽을 수 있고, 또 같은 곳에 있는 벽화의 꽃바구니 그림은 괴석과 꽃을 조화시킨 문인취향의 차원 높은 꽃바구니 꽃으로 꽃의 색깔과 질(質)의 대비적 처리와 공간처리 등에서 서구적인 감각과의 차이점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불교문화의 융성과 화기로서의 고려청자의 출현은 화예의 표현영역을 확대함에 결정적 구실을 하였기에, 예술로서의 꽃문화의 본격적 발생은 이때부터라 할 수 있다. 또 궁중에서의 꽃문화는 고려시대의 귀족문화적인 생활환경을 배경으로 해서 고려청자의 출현과 더불어 화려하게 꽃피웠던 것이다.
1) 의식과 담당관직
궁중에서는 다음과 같은 의식과 담당관직이 있었다. 고려시대의 궁중의식과 화예를 보면, 먼저 꽃을 사용한 의식으로 ① 왕이나 왕비 왕태자 책봉의례, ② 연군신의례(宴群臣儀禮), ③ 연등회 및 팔관회, ④ 기로연(耆老宴), ⑤ 하사품(下賜品) 등이 있었다.
2) 장식을 위한 담당 관직
그리고 화예 장식을 위한 담당 관직으로는 ① 선화주사(宣花酒使) : 왕이 하사하는 꽃과 술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은데 꽃을 권화사에게 전달한다. ② 권화사(勸花使) : 꽃을 꽂는 것을 담당하는 직책인데 선화주사로부터 꽃을 받아서 꽃을 꽂는 대상자들에게 차례로 꽂아 준다.
③ 압화사(押花使)·화주궁관 : 꽃과 술의 운반을 감독하는 사람. 꽃을 간직하는 사람. ④ 인화담원(引花擔員) : 꽃을 가진 사람을 영솔하는 사람. 꽃을 거두는 사람. 등이 있었다.
참고자료
작품 이정수(사. 대한꽃문화협회 이사장),
김진숙(성운꽃꽂이중앙회 회장)
진행 원소란 / 사진 이재범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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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0.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03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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