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의궤란
2. 의궤 [儀軌]
3. 일본 궁내청 갇힌 조선왕실의궤에 ‘독립의 빛’
4. 조선왕조 기록문화의 꽃, 의궤(儀軌)
5. (세계유산) 조선왕조의 의궤儀軌
2. 의궤 [儀軌]
3. 일본 궁내청 갇힌 조선왕실의궤에 ‘독립의 빛’
4. 조선왕조 기록문화의 꽃, 의궤(儀軌)
5. (세계유산) 조선왕조의 의궤儀軌
본문내용
rotocols of the Joseon Dynasty 로서, UNESCO의 세계의 문화기록으로 지정되었다.
의궤는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546종 2940권, 한국학 중앙연구소에 287종 490권, 일본 황실 궁내청 서릉부(書陵部)에 72종 141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191종 297권이 각각 소장돼있다.
프랑스는 1993년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미테랑 대통령이 ‘휘경원원소도감의궤(徽慶園園所都監儀軌)를 갖고 오면서 모두 반환해 줄 것을 암시했었다. 2000년에는 시라크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상호대여‘라는 형식으로 의궤를 귀성시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는 「대여」라는 형식으로 인해 소유권은 아직 프랑스 측에 있다.
5. (세계유산) 조선왕조의 의궤儀軌
서울대 규장각 소장, 546종 2,940책의 의궤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 287종 490책의 의궤
의궤는 조선왕조에서 유교적 원리에 입각한 국가 의례를 중심으로 국가의 중요 행사를 행사 진행 시점에서 당시 사용된 문서를 정해진 격식에 의해 정리하여 작성한 기록물이다. 같은 유교문화군에 속하는 중국, 일본, 베트남 등에서는 의궤의 체계적인 편찬이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의궤는 조선시대 600여년에 걸쳐 (1392-1910) 왕실의 주요 행사, 즉 결혼식, 장례식, 연회, 사신영접 등 뿐 아니라, 건축물·왕릉의 조성과 왕실문화활동 등에 대한 기록이 그림으로 남아 있어 600여년의 생활상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의궤는 조선 건국 당시 태조 때부터 만들어지고 있었으며, 조선왕조실록에 많은 관련 기록이 전하나 현재 조선 초기 의궤는 전해지지 않는다.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의궤는 1601년(선조 31년) 의인왕후의 장례 기록을 남기기 위해 편찬된 '의인왕후산릉도감의궤'(懿仁王后山陵都監儀軌)와 '의인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懿仁王后殯殿魂殿都監儀軌)이다. 보통 필사하여 제작하였으므로 소량을 제작하여 특별 제작한 1부는 어람용(御覽用)으로 왕에게 올리고 나머지는 관련 기관과 사고에 나누어 보관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에 침입한 프랑스군이 외규장각(外奎章閣)에서 300여 책의 문서를 약탈하였다. 이들은 현재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총 3,895 여권의 방대한 분량에 이르는 의궤는 왕실의 주요한 의식이 시기별,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어서, 조선왕조 의식의 변화 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를 비교연구, 이해하는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반차도, 도설 등 행사모습을 묘사한 시각 콘텐츠는 오늘날의 영상자료처럼 당시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예컨대 정조의 능행도(陵幸圖)는 전 여정을 15.4m에 걸쳐 표현하고 있다. 이런 형태(시각중심 visual-oriented)의 기록유산은 뛰어난 미술장인과 사관의 공동작업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 마디로 의궤는 장기간에 걸쳐 조선왕조의 주요 의식을 방대한 양의 그림과 글로 체계적으로 담고 있으며 이러한 유형은 동서양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매우 뛰어난 기록유산의 가치(outstanding value of documentary heritage)를 지니고 있다. 세계사 맥락에서 유교의 중요성이 저평가 되고 있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유교는 세계의 조그만 변방에서 존재했던 문화가 아니다. 유교가 지배했던 영토는 그 면적으로 볼 때 서유럽보다도 몇 배나 컸으며 인구 수에 있어서도 유럽, 서남아시아 및 중동을 초과하는 큰 규모였다. 유교권은 최소 14세기까지 전세계를 2~3개 권역으로 분할하던 주요 문화권 중 하나였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수차례에 걸친 야만족의 침입과 이들에 의한 점령으로 인해 시간이 경과하며 전통 의식은 원형을 점차 잃어갔다. 특히 몽골 침입 기간 동안 유교 의식을 수록한 문헌 상당수가 소멸됐다. 이에 반해 한국은 외침을 슬기롭게 극복했기에 전통 유산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며 천 년 동안 진정성을 훼손하지 않고 유교 의식을 봉행하는 전통을 이어왔다. 의궤는 대부분의 유교사회에서 잊혀진 과거 유산을 보존하고 있는 기록이다. 또한, 의궤는 조그마한 군주국가의 기록이 아니라, 한때 세계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유교 전통의 핵심을 대표하는 기록이다. 조선왕조 의궤는 2007년 6월 13일부터 3일간 남아공 프레토리아에서 열린 제8차 유네스코 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결정됐다.
의궤는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546종 2940권, 한국학 중앙연구소에 287종 490권, 일본 황실 궁내청 서릉부(書陵部)에 72종 141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191종 297권이 각각 소장돼있다.
프랑스는 1993년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미테랑 대통령이 ‘휘경원원소도감의궤(徽慶園園所都監儀軌)를 갖고 오면서 모두 반환해 줄 것을 암시했었다. 2000년에는 시라크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상호대여‘라는 형식으로 의궤를 귀성시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는 「대여」라는 형식으로 인해 소유권은 아직 프랑스 측에 있다.
5. (세계유산) 조선왕조의 의궤儀軌
서울대 규장각 소장, 546종 2,940책의 의궤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 287종 490책의 의궤
의궤는 조선왕조에서 유교적 원리에 입각한 국가 의례를 중심으로 국가의 중요 행사를 행사 진행 시점에서 당시 사용된 문서를 정해진 격식에 의해 정리하여 작성한 기록물이다. 같은 유교문화군에 속하는 중국, 일본, 베트남 등에서는 의궤의 체계적인 편찬이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의궤는 조선시대 600여년에 걸쳐 (1392-1910) 왕실의 주요 행사, 즉 결혼식, 장례식, 연회, 사신영접 등 뿐 아니라, 건축물·왕릉의 조성과 왕실문화활동 등에 대한 기록이 그림으로 남아 있어 600여년의 생활상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의궤는 조선 건국 당시 태조 때부터 만들어지고 있었으며, 조선왕조실록에 많은 관련 기록이 전하나 현재 조선 초기 의궤는 전해지지 않는다.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의궤는 1601년(선조 31년) 의인왕후의 장례 기록을 남기기 위해 편찬된 '의인왕후산릉도감의궤'(懿仁王后山陵都監儀軌)와 '의인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懿仁王后殯殿魂殿都監儀軌)이다. 보통 필사하여 제작하였으므로 소량을 제작하여 특별 제작한 1부는 어람용(御覽用)으로 왕에게 올리고 나머지는 관련 기관과 사고에 나누어 보관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에 침입한 프랑스군이 외규장각(外奎章閣)에서 300여 책의 문서를 약탈하였다. 이들은 현재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총 3,895 여권의 방대한 분량에 이르는 의궤는 왕실의 주요한 의식이 시기별,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어서, 조선왕조 의식의 변화 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를 비교연구, 이해하는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반차도, 도설 등 행사모습을 묘사한 시각 콘텐츠는 오늘날의 영상자료처럼 당시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예컨대 정조의 능행도(陵幸圖)는 전 여정을 15.4m에 걸쳐 표현하고 있다. 이런 형태(시각중심 visual-oriented)의 기록유산은 뛰어난 미술장인과 사관의 공동작업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 마디로 의궤는 장기간에 걸쳐 조선왕조의 주요 의식을 방대한 양의 그림과 글로 체계적으로 담고 있으며 이러한 유형은 동서양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매우 뛰어난 기록유산의 가치(outstanding value of documentary heritage)를 지니고 있다. 세계사 맥락에서 유교의 중요성이 저평가 되고 있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유교는 세계의 조그만 변방에서 존재했던 문화가 아니다. 유교가 지배했던 영토는 그 면적으로 볼 때 서유럽보다도 몇 배나 컸으며 인구 수에 있어서도 유럽, 서남아시아 및 중동을 초과하는 큰 규모였다. 유교권은 최소 14세기까지 전세계를 2~3개 권역으로 분할하던 주요 문화권 중 하나였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수차례에 걸친 야만족의 침입과 이들에 의한 점령으로 인해 시간이 경과하며 전통 의식은 원형을 점차 잃어갔다. 특히 몽골 침입 기간 동안 유교 의식을 수록한 문헌 상당수가 소멸됐다. 이에 반해 한국은 외침을 슬기롭게 극복했기에 전통 유산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며 천 년 동안 진정성을 훼손하지 않고 유교 의식을 봉행하는 전통을 이어왔다. 의궤는 대부분의 유교사회에서 잊혀진 과거 유산을 보존하고 있는 기록이다. 또한, 의궤는 조그마한 군주국가의 기록이 아니라, 한때 세계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유교 전통의 핵심을 대표하는 기록이다. 조선왕조 의궤는 2007년 6월 13일부터 3일간 남아공 프레토리아에서 열린 제8차 유네스코 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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