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국가의 형성 [디아스포라][시오니즘][서구 열강의 도움:밸푸어 선언][유엔의 방조와 지원][점령 과정][추방과 이주][아랍인들의 저항과 영국의 탄압][영국제국과의 갈등][UN의 분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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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스라엘 국가의 형성 [디아스포라][시오니즘][서구 열강의 도움:밸푸어 선언][유엔의 방조와 지원][점령 과정][추방과 이주][아랍인들의 저항과 영국의 탄압][영국제국과의 갈등][UN의 분할안]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 론

본 론
Ⅰ. 배 경
1. 디아스포라
2. 시오니즘
2. 서구 열강의 도움:밸푸어 선언
3. 유엔의 방조와 지원

Ⅱ. 점령 과정
1. 추방과 이주
2. 아랍인들의 저항과 영국의 탄압
3. 영국제국과의 갈등
4. UN의 분할안
5. 전쟁과 학살


결 론

본문내용

이스라엘의 저항과 팔레스타인의 문제로 인해 영국은 결국 1947년 2월 14일 팔레스타인 문제를 UN으로 이관하였다. 1947년 유엔은 특별위원회를 팔레스타인에 파견한 후에 “영국의 위임통피를 끝내고 팔레스타인 지역은 아랍 국가와 유대 국가로 나눠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전 1946년 10월에는 미국의 해리 투르먼 대통령이 팔레스타인 분할과 유대국가 건설을 위한 유대인 이민을 지원한다고 발표하였다.
결국 1947년 11월에 UN은 팔레스타인을 아랍인과 유대인의 두 개의 국가로 분할하고, 예루살렘은 UN의 관리 하에 두되, 유대인에게 더 넓은 토지가 할당된 팔레스타인 분할안이 발표되었다.
<유엔 결의한 181호>
유대인 국가
텔아비브 남부지역과 북부의 하이파까지 해변지역, 네게브 사막,
갈릴리 호수 주변 지역
아랍인 국가
예루살렘 주변의 요르단 강 서안지구, 가자지구, 갈릴리 북부지역
국제관할 지역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을 포함한 주변 지역
이는 당시 인구가 더 적었던 이스라엘이 더 넓은 토지가 할당된 불공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오니스트들은 아랍인들과의 공존을 거부하며 UN의 분할안 발표 이후 아랍인들을 추방하기 위한 공격을 자행하였다. 1948년 3월, 아랍인과의 공존을 주장하는 일부 유대인들의 항의를 무시하며 ‘여호수아 계획’으로 조직적이고 강력하게 아랍인을 추방하고 학살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을 관할하고 있던 영국은 아랍인들의 보호 요청을 거절하고 충동지역에서 철수함으로써 학살을 묵인하고 결과적으로 지원하는 행태를 보였다. 1948년 5월 14일 시오니스트들은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 국가의 건국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 미국은 이스라엘을 승인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팔레스타인은 1948년 10월 1일에 제1차 팔레스타인 민족회의에서 국가 창설을 선포하지만 국제사회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였다.
5. 전쟁과 학살
UN의 불공정한 분할안으로 더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더 넓은 땅을 할당받은 이스라엘은 이러한 UN의 분할안을 무시하고 팔레스타인 땅에서 아랍인을 축출하기 위한 전쟁과 추방, 학살을 자행하며 팔레스타인인들의 영토를 잠식해 들어갔다.
1)1948년 1차 중동전쟁
1948년 5월 이스라엘 국가가 선포되자 이집트, 요르단,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의 아랍연합국들이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군사력에 있어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1948년 5월 당시 아랍군은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수준의 2만5천명 이하의 병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스라엘군은 체계적인 훈련과 참전경험을 지닌 정예요원에 3만5천 명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48년 7월에는 6만 5천명, 12월에는 약 10만 명에 육박했다. 또한 영국,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참전 군인들이 이스라엘을 지원하기 위해 모여들었으며 이스라엘은 체코슬로바키아 등으로부터 대량의 무기를 사들였다.
전쟁 결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의 88%를 차지했고 서안지구는 요르단이, 가자지구는 이집트가 관리하는 휴전협정이 맺어졌다. 그 이전까지 도시의 54%는 무슬림 팔레스타인인들과 크리스천인 팔레스타인인들이 소유하고 있었고, 26% 지역은 유대인들이 소유하고 있었으며 나머지 지역은 예루살렘시의 소유였다. 전쟁의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아랍 인구의 80%인 75만 명 이상이 추방되어 난민이 되었고 아랍인들이 떠난 땅은 ‘소유자 부재지’로 분류되어 유대인의 소유가 되었다.
2)1967년 2차 중동전쟁
2차 중동전쟁은 이집트와 이스라엘·프랑스·영국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이집트 나세FM 대통령이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하자 영국과 프랑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공격하였다. 수에즈 운하는 영국과 프랑스에는 인도양 지역으로 통하는 관문이었으며, 영국과 프랑스가 운하 주식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으로 가자지구와 시나이 반도를 점령하였으나 미국과 소련의 압력으로 철수하였다.
결 론
본문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살고 있던 지역에 자신들의 유일신의 약속을 빌미로 소유권을 주장하며 침입해 들어왔다. 이로 인해 분쟁이 유발되고, 이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인 모두에게 불행을 낳고 있다.
종교나 인종은 지구상에 인간이 존재하기 시작한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만들어진 개념이다. 이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심화시킴으로서 자신들과 타인을 구분하게 만들고 이는 차별을 생산해내고 있다. 차이와 차별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차별은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종교와 인종을 이용하여 차별을 만들고 또 다시 이를 이용하여 이익을 얻는 집단이 생기게 된다. 결국 이러한 집단에 의해 갈등이 유발되고 심화된다. 제국주의적 점령과 집단 학살은 지금도 중동의 한 지역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의 문제는 현재 우리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오랜 세월 서로 다른 인종과 종교가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한 지역에서 인종과 종교에 의한 국가의 구분이 한 민족의 주도로 이뤄지고, 그것을 인정하고 있는 국제기구인 유엔이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하는가는 의문스럽다. 유엔에서 서구의 힘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1947년 UN 결의안은 그 불공정함에도 불구하고 채택되었으며 이는 미국의 이스라엘 챙기기의 한 일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모두와 제 3세계를 비롯한 모든 나라들이 유엔의 국제사회에서의 결정권을 인정해야만 하는 현실이 정당성을 갖지 못하는 것은 위의 예로써 자명하다. 강대국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반영되는 국제기구는 약소국의 이익을 대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인간다움을 발휘하고 인류에 대한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역사를 배우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 발생하고 있는 분쟁은 인류의 재앙이며, 이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인간성의 상실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 기회를 통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살펴볼 수 있었고 그 동안 학점이며 스펙이라고 하며 자신의 문제에만 몰두한 내 자신의 모습을 반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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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12.11
  • 저작시기2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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