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문화교류사] 비단길 기행문
본 자료는 5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해당 자료는 5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5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동서문화교류사] 비단길 기행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비단의 고장 장안 ]
[황하를 건너서]
[누란왕국을 찾아서]
[4천년의 깊은 잠]
[비취와 비단의 나라 호탄]
[서역의 모나리자 ]
[제국의 개척자들]
[페르세폴리스]
[바그다드]
[비단과 십자가]
[터키]
[로마]

본문내용

것이다. 마을공동화로에서는 10여농가가 함께 화로를 공동으로 사용한다. 이것은 비단생산으로 인해 바쁜 일손을 줄이기 위해 공동화로에서 빵을 비롯한 음식을 공동으로 만들기 위해 시작되었고, 지금까지도 행해지고 있다. 비단은 오직 중국에서만 만들 수 있었고, 중국은 이 비단제조법을 철저하게 비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타클라마칸사막의 호탄왕국을 통해 중국의 비단제조법이 중동과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그것은 그림으로도 남아있다. 만약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비단이 다른지역으로 전파 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세계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터키의 도시 부르사는 녹색의 도시라고 불린다. 이곳은 아시아대륙의 가장 끝에 있는 도시로서 아시아와 유럽을 구분짓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오스만터키제국의 수도로 14세기때 가장 번역했으며, 술탄오스만칸 황제의 칸이 이곳에 남아있다. 그 관은 엄청 화려하다. 비단으로 덮여져 있으며, 그 무늬 역시 화려하다. 황제의 관이기에 그렇게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해놓은 듯 하다. 또한 이곳은 기온이 온후하여서 휴양지로도 유명하다. 이곳에는 15세기에 건축된 코자한이라고 하는 해상들의 여관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코자한은 비단도매업자들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코자한은 누에고치를 파는 곳 이라는 뜻의 터키어 이다. 이곳에서는 현재도 누에꼬치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부르사에는 양잠을 하는 농가가 2만여호나 될정도로 양잠업이 크게 성황을 이루고 있다. 터키인들은 누에코치를 흰 황금이라고 부른다. 이곳에서는 6월 한달동안 800여톤의 누에꼬치가 거래되고 있다. 그때의 흥정은 매우 흥미진진하며, 우리의 재래시장을 보는 듯 하다. 이곳은 회교도들이 많다. 코란에는 열렬한 신앙을 갖는다면 장사를 잘할수 있다고 나와있다. 그 때문에 많은 상인들이 열렬한 회교신자이다. 한가닥의 명주실을 위해서는 누에꼬치가 30개가 필요하다. 그렇게 얻어낸 명주실은 눈처럼 희다.
페르시아의 키루스왕이 놓은 길은 기원전 6세기에 왕의길을 놓았다. 이곳은 왕의 군대의 고속도로로 쓰이다가, 상인들의 교역로로 사용되었다. 즉 최초의 고속도로인 셈이다. 왕의길에 인접한 얄바츠마을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곳의 여자들은 시집을 가기전 어머니에게 카페트를 짜는 방법을 배워, 결혼할 때 자신이 짠 카페트를 가지고 가는 풍습이 있다. 전통결혼식의 모습은 이러하다. 아내의 집에는 남자들이 들어올수 없어, 여자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녀의 친구들이 춤을 추면 아내도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 음악은 터키 고유의 음악인 듯 하다. 경쾌한 음악이 독특하다. 그 춤은 여러시간동안 계속된다. 춤이 다 끝나면 친구들이 신부를 위해 이별의 노래를 불러준다. 그후 거울을 보고 처녀로서 마지막 모습인 자신을 보고 이별을 고한다. 그 다음날 신부측 사람들은 신랑의 집으로 향한다. 신랑이 지붕위에서 돈과 사탕같은 것을 행운의 의미로 주변에 던진다. 신부가 도착하면 신랑은 희생양의 피위를 걸으며 신랑의 집으로 데려온다. 이것은 이 부부가 피로 맺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다 이루어지면 그들의 친구들은 신랑의 집에서 또 여러시간동안 춤을 춘다
[로마]
보스포러스해협은 아시아대륙과 유럽대륙을 양분하는 기준이 되는 곳이다. 이 해협은 작은 편에 속하지만, 그 지리적 위치로 인해 동양과 서양을 구분짓는 중요한 해협이다. 금각만은 무역항과 군항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황금같은 만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금각만을 기점으로 북쪽으로는 실크로드 남쪽으로는 지중해가 나온다. 금각만의 중심부에 위치한 이스탄불은 로마제국과 오스만 투크르의 수도로서 크게 번영하였던 도시이다. 이 도시의 번영은 바그다드나 장안의 그것에 비할바없을 정도로 매우 크게 번영하였다. 이곳의 주민들은 특정 종족이라고 할수 없다. 터키인 아르메니아인 러시아인 등 많은 민족이 섞여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동양인들은 이곳에 오면 서양이라고 느끼고, 서양인들은 동양의 정취를 느낀다고 한다. 즉 이곳은 동서문화의 융합이 가장 잘 이루어진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이스탄불은 비잔티움이라고 불렸는데, 지리상의 위치를 활용하여 대상업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동로마제곡이 기원전 330년 이곳으로 천도하여 콘스탄티노플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성소피아 성당을 지었다. 성소피아 성당은 신성한 신의 지혜라는 의미로, 엄청난 시간과 노동력이 동원되었다. 이 대성당의 웅장함은 매우 대단하다. 영상을 통해서만 보더라도 그 크기와 위엄 등은 내가 여지껏 보아온 그 어떤 사원보다 웅장하였다. 이 대성당의 벽에는 그리스도상과 성모자상이 그려져있다. 또한 모자이크벽화가 있는데 그곳에서 아기예수는 금박으로 표현하여 신성함을 더했다. 콘스탄티노플의 번영과 영화는 성벽으로 지켜졌다. 그 성벽은 엄청나게 높고 거대하다. 동양의 성벽보다 그 높이가 월등히 높아 보인다. 그러나 1000여년을 지켜오던 이도시는 오스만투크크의 침략에 무너져, 이스탄불로 바뀌게 된다. 터키유목민족들은 오랜시간 유목생활을 하다가 결국 이곳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이스탄불의 그랜드시장에는 세계곳곳의 물품들이 팔리고 있다. 또한 이스탄불에는 1000여개의 사원이 있다. 그렇기에 이곳의 사원의 도시라고 불린다. 세계어느곳도 이곳보다 많은 사원을 가진 도시는 없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이라 불리는 푸른사원에는 금요일마다 회교예배가 있다. 푸른사원은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이스탄불은 사람의 얼굴로 비유하다면 인생을 보람차게 잘 마친 인자한 미소와 같다.
그리스의 포세이돈 신전은 바다의신을 모신 신전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포세이돈의 수호로 상업을 잘 할수있었다고 믿었다.
이탈리아의 항구도시 브린디시는 고대의 항구도시이다. 일찍이 이 항구도시는 고대수도 로마로 가는 아스피아도로가 있었다. 아스피아 도로의 마지막 종착점을 나타내는 기둥이 있다. 이것은 아스피아 도로의 마지막이면서, 해상도로의 시작을 알리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중국에서 온 비단은 이곳을 통하여서 수도 로마로 갔을 것이다. 실크로드를 통해서 문물의 교류와 사람의 교류가 이루어졌다. 실크로드의 종착지는 바로 로마이다.
  • 가격8,400
  • 페이지수17페이지
  • 등록일2012.12.17
  • 저작시기2011.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26666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