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릉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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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광개토대왕릉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란거리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런 모든 논란의 근원은 바로 이른바 ‘신묘년’ 기사에 모아진다. 그 이유에는 그 만장에는 고구려와 왜, 신라 가 맺고 있는 국제 관계가 아주 짧은 문장에 담겨 있는데, 이 문장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고대 한일 관계가 아주 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즉 일본측에서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묘년 조 기사의 해석
일본 관학자들이 주장하는 기사의 해석은 이렇다.
倭以辛卯年, 來渡海, 破百殘∥∥∥羅以以爲臣
해석하면,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서 백잔(제)과 신라를 쳐부숴 신민으로 삼았다’. 가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인보 등 한국 학자들이 주장하는 해석은 또 이렇게 된다.
倭以辛卯年來, 渡海破, 百殘∥∥∥羅以以爲臣
‘왜가 신묘년에 침입해 왔기 때문에 (고구려가)바다를 건너가서 (왜를) 격파했다. 백잔이(왜와 연결하여) 신라를(침략하였다. 신라는 고구려의)신민이었기에 (영락 6년 병신에 왕이 군대를 이끌고 백잔을 토벌한다.)
그런가 하면 북한의 박시형과 김석형은 또 다르게 해석하였다.
倭以辛卯年, 來渡海, 破百殘∥∥∥羅以以爲臣
‘왜가 신묘년에 오니 (고구려가) 바다를 건너가 (왜를) 격파하였다. 백잔이 (왜와 연결하여) 신라를 (침략하여) 신민으로 삼았다. [박시형]
‘왜가 신묘년에 건너왔다. (고구려가)바다(패수)를 건너 백잔, □□, 신라를 격파하여 신민으로 삼았다. [김석형]
이런만큼 해석도 여러 가지로 많이 다르게 나온다. 비문변조설을 주장했던 이진희는 래도해파(來渡海破)의 넉 자가 일본에 의해 조작된 글자이므로 기존해석은 모두 타당치 않고, 글자의 판독이 원상으로 복구되기 전에는 이를 해석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신묘년 글자 중에서도 海자로 판독되던 글자는 변조된 것임이 틀림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 후에도 천관우김영만이형구서영수 등은 이진희의 비문 변조설을 토대로 전후 문맥과 서체의 결구를 중심으로 변조된 문장을 복원하여 합리적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1997년 고구려 연구회에서 주최한 ‘광개토호대왕 연구 100년’이란 국제 학술대회에서 서영수 교수는 변조설을 분명히 했다. 서영수는 신묘년 기사는 고구려가 주어가 되어 남쪽의 나라들을 정복하는 기사인데, 정복의 명분을 말해주는 전제문(前提文)이 있고 그 다음에 정복을 해가는 주문(主文)이 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변조된 海자가 임금 왕(王)자라고 주장했다. 그 외에도 海자를 탕()-김영만, 인(因)-이형구, 패(浿)-손영종, 매(每)-경철화, 사(泗)-임기중 등 다양한 견해가 나왔다. 아직도 그 실체가 정확하게 밝혀지진 않지만 계속된 연구로 빨리 좋은 연구 성과가 나오길 바랄 뿐이다.
○그 외 다른 기사들 관련
광개토대왕릉비에는 「삼국사기」등 문헌에는 전혀 없는 연호사용이나 태왕성왕이라는 왕중왕의 천하관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고, 거란, 숙신, 부여 등 북방 민족들을 누르고 통일해 가는 과정이 잘 기록되어 있다. 태왕비에 나오는 수많은 지명과 성 이름은 고구려뿐 아니라 주변 국가의 위치 비정이나 상호 관계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고, 수묘제를 통해서 당시 사회의 계층이나 성격을 연구할 수 있다.
그리고 광개토대왕의 대외적인 치적에 대한 평가에 비해 내치에 비해서는 소홀히 취급하는데 태왕비에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이 편안하였으며 오곡이 풍성하게 익었다’라고 한 것을 보면 그의 내치가 대외적인 치적에 가려서 빛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으로 광개토대왕비에 관해 알아보았다. 아직도 많은 부분이 연구되고 있고 연구되어야 할 부분도 많다. 하지만 단지 비문 글자의 조작의 진위나 글자의 탈락에만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광개토대왕의 전체적인 역사성과 광개토대왕의 진면목을 밝히는 데 끈질긴 연구가 거듭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로 인해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도 잃게 하고, 최근 불거지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서 “고구려사는 대한민국의 역사”라는 점을 각인 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자라나는 후손들에게도 자랑스런 역사가 있음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 문헌
1. 서길수, 고구려 역사유적 답사, 사계절, 2004.
2. 박시형, [광개토왕릉비], 사회과학원출판사, 평양, 1966
3. 王健群, [好太王碑硏究], 1984, 역민사, 1985
4. 高句麗硏究會, [廣開土好太王碑硏究 100년], 1996
5. 한국역사 연구회, 고대로부터의 통신, 푸른역사, 2003
등 다수문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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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3.01.19
  • 저작시기2005.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29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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