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 - 국기, 수호성인, 국화, 역사, 문화상품, 문학, 영화, 인구, 종교,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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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A+]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 - 국기, 수호성인, 국화, 역사, 문화상품, 문학, 영화, 인구, 종교, 언어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네 나라의 국기, 수호성인, 국화
 (1) England
 (2) Scotland
 (3) Northern Ireland
 (3-1) Ireland
 (4) Wales

Ⅱ. 스코틀랜드
 2-1. 국토
 2-2. 역사
 2-3. 스코틀랜드 문화상품
 2-4. 스코틀랜드 문학/영화

Ⅲ. 아일랜드
 3-1. 국토
 3-2. 인구, 종교, 언어
 3-3. 역사
 3-4. 아일랜드 문학

본문내용

00년까지 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가톨릭교도와 프로테스탄트는 모두 본국에 대하여 불만을 증대시켜 간다. 우선 가톨릭의 종교적 자유를 명목상 보장했던 리머릭 조약과 달리 (Penal Laws가 통과되어) 가톨릭교도들은 참정권이나 재산권 등에 있어 심한 구속을 받았다. 한편 얼스터의 신교도들은 아일랜드 의회에도 진출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부를 축적하였지만 역시 오직 섬유산업 활동만 허용되는 등 본국으로부터 근본적으로 경제제재를 받는 것에 대해 불만을 쌓아갔다. 따라서 이들은 아일랜드의 의회를 중심으로 소위 '애국자(Patriots)'로 알려진 조직을 결성하여 반영운동을 펼치게 된다. 아일랜드 의회는 영국이 미국 독립전쟁에 신경을 쓰는 동안 1782년부터 약 18년간 자치를 맛보게 된다. 1791년에 결성된 '아일랜드 연합단체(Society of United Irishmen)'는 아일랜드의 자치 달성을 목적으로 1798년에 민중봉기를 도모하였지만 이의 실패로 말리암아 아일랜드 의회는 1800년 영국의회와 통합된다.
19세기의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꾀하는 긴 투쟁의 시기로 요약된다. '젊은 아일랜드인(Young Irelanders)'이라는 단체가 결성되고 아일랜드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는 '국가(The Nation)라는 신문이 출간되었고, 북미지역에서는 아일랜드 공화국을 세우려는 비밀 결사조직 '페니아 동지회(Fenian Brotherhood)'가, 더블린에서는 아일랜드 공화당 동지회(Irish Republican Brotherhood(IRB)'가 결성되었다. 1870년에는 아이작 벗(Isaac Butt)이 주도한 자치 운동(Home Rule Movement[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아일랜드의 문제를 자치적으로 다루는 더블린 소재 아일랜드의 의회를 세우려는 운동]이 있었고, 다음해에는 마이클 다빗(Michael Davitt)을 중심으로 아일랜드의 소작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Land League가 결성되었다. 이 두 가지 움직임은 아일랜드 애국운동의 지도자 찰스 스튜어트 파넬(Charles Stewart Parnell)에 의해 통합되었다. 그러나 파넬의 개인적인 문제가 불거지면서 그의 추종자들은 양분되어 내부적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게 되고, 또한 절대다수가 신교도인 얼스터 지역을 중심으로 영국과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었던 아일랜드의 연합론자(Unionists)와 분리주의자의 대립 등 아일랜드 독립운동은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한편 1845년과 46년 두 차례 아일랜드의 감자농사를 덮친 병충해는 결국 대기근을 낳아 백만 명의 인구가 굶거나 병들어 죽고 백만 명의 인구가 북미지역으로 이주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은 1916년 부활절 아일랜드의 독립 선포와 함께 민중의 봉기로 본격적으로 재개되었다. 1918년 선거에서 의석의 다수를 차지한 신페인당(Sinn Fein) 다시 한번 아일랜드의 독립을 천명하고 급진적인 민족주의자의 단체인 민병대(The Volunteers)의 변신인 아일랜드 공화군(IRA)을 인가하고 전쟁을 선포한다. 1921년의 협약(Anglo-Irish Treaty)은 아일랜드를 북쪽의 6개의 주와 나머지 26개 주로 둘로 나누어 놓게 된다. 이 26개의 나머지 주는 아일랜드 자치국(the Irish Free State)을 형성하게 되지만 그들의 의회는 영국왕권에 대한 충성을 서약하여야 했다. 아일랜드는 이후 또 한 차례의 내란을 겪게 되는데 즉 1921년 협약을 지지하는 파(Free Staters)와 그를 반대하는 공화파(Republicans) 간의 내전이었다. 1932년 선거에서 승리한 피나게일당(The Finna Gael Party)은 충성의 서약을 철회하고 아일랜드 자치국과 영국의 관계를 끊고는 1937년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여 에이레(Eire)라는 이름으로 아일랜드의 독립을 선언한다. 1948년에 이르면 영국과 아일랜드를 연결시켜주던 마지막 끈, 즉 외교적인 목적에서만 영국의 왕권을 인정하던 것을 폐지하고 아일랜드 공화국(The Republic of Ireland)이 공식적으로 선포되어 국제적인 인정을 받게 된다. 아일랜드 공화국의 모든 정당들은 평화적 수단에 의한 국가의 통일(북아일랜드와 나머지 지역 간의 통일을 말함)을 지지하지만 유독 IRA는 북아일랜드에 대한 간헐적인 게릴라식 공격으로 분단을 종식시키려는 노력을 1930년 이래 해오고 있다.
아일랜드의 근대사는 영국과 아일랜드 양국관계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기도 하지만 영국과의 통합을 원하고 신교도가 우세한(Unionists, Loyalists) 북아일랜드와 가톨릭이 우세한 나머지 아일랜드(Nationalists, Republicans)의 통일의 문제라는 자국의 문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계 주민들이 보기에는 영국이 청산해야 할 마지막 부분이지만 경제권과 관료조직의 상부조직을 장악해왔던 신교도들에게는 영국 본토에서 이주해 온 이후 수백 년간 그들의 직계조상이 살아온 터전이기도 하다. 1967년 이후 북아일랜드에서 본격적으로 확산된 가톨릭계 시민운동, 1969년 벨파스트의 폭동, 1971년 IRA의 총격전으로 184명 사망한 사건, 1972년 신구 종교 갈등으로 497명이 사망한 사건 등의 사건은 결국 북아일랜드 자치권 박탈과 영국의 직접통치 재개를 낳았다. 이후 27년 만인 1998년, 소위 '굿 프라이데이 협정(The Good Friday Agreement)' 체결로 IRA의 무장해제를 전제로 한 북아일랜드의 자치권 회복에 영국과 아일랜드가 합의하고 1999년 12월 2일 북아일랜드의 자치권이 완전 이양되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아일랜드의 진정한 화해와 통일이 아닐까.
3-4. 아일랜드 문학
* 대표적인 앵글로-아이리쉬계 작가목록
Jonathan Swift
Edmund Burke
Oliver Goldsmith
Oscar WildeShaw
George Bernard
John Millington Synge
Sean O'Casey
William Butler Yeats
James Joyce
Samuel Beckett
  • 가격2,000
  • 페이지수17페이지
  • 등록일2013.03.08
  • 저작시기201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32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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