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 속으로 [지금 현재가 제 4공화국 시절이라고 가정하고 현재의 나의 대학생활이 어떠할 것인가를 상상력을 발휘하려 기술해보시오]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민중 속으로 [지금 현재가 제 4공화국 시절이라고 가정하고 현재의 나의 대학생활이 어떠할 것인가를 상상력을 발휘하려 기술해보시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시대 배경…………………………………………………3
-제 3공화국
-제 4공화국
-제 5공화국

2. 과거와 현재의 대학문화 비교 ……………………………………4
1)대학문화의 어제, 당시의 경험담 …………………………………………4
-유신독재에 대한 저항 (동아투위 성유보 위원)
-내가 겪은 민청학련사건 (유인태)
2)대학문화의 오늘, Comparison. ………………………………5
-대학문화의 어제와 오늘 ………………………………………5
-대학생 시위 문화의 새로운 동향과 사례 ………………………………5

3. 나의 대학생활 상상해본다면? ……………………………………6
1)대학생활 상상하여 일기 써보기 …………………………………6

2)내가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나던 광주의 대학생이었다면? ……………8

4. 독재시대 학생운동의 의의 …………………………………10

5.참고도서 및 자료 출처 …………………………………………11

본문내용

부상자가 속출했다. 이에 맞서 시민들과 노동자, 도시 빈민층이 합세, 무기고를 털어 총기 등으로 무장하였다. 시민군의 예상치 못한 강경대응에 당황한 계엄군은 주춤하여 잠시 외곽으로 후퇴하기로 한다. 이때 고립되었던 광주는 나주, 목포, 영암, 장성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광주 민주화 항쟁 3단계>
이미 18일에도 계엄군의 무력진압의 잔인성에 대한 기사와 사진 자료를 최대한 많이 찍어뒀었는데, 이 시기에 맞추어 이 자료들을 전단지 등을 여러 수단을 통해 외부 각 지역으로 전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계엄군에 대한 기사와 광주의 상황을 눈에 띄게 대대적으로 전한다면 광주를 포함한 다른 지역까지 통제 혹은 고립될 가능성과 더 많은 피해자가 속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지역의 반독재시위를 이끄는 지식인이나 학생들에게 조용히 사실을 전했다. 광주 시민인 우리는 언제 다시 계엄군에게 진압 당할지 모르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이 자유롭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광주 시민이 아닌 이동이 우리보다 자유로운 타 지역 지식인층에게 비밀리에 부탁, 암암리에 전달, 전국으로 다 퍼져 동시에 모든 국민들이 반독재를 외칠 수 있도록 했다. 그 시간은 전단지와 사진기사가 동시에 은밀히 전국적으로 배포된 후 그러니까 지금부터 24시간 후, 21일로 약속한다.
광주 민주화 항쟁 4단계>
계엄군이 다시 광주를 점령하는 비극적인 22일이 오기 이전에,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대대적 항쟁과 함께 대한민국과 해외에서 빗발치는 반민주적 행위에 대한 항의로 정부가 섣불리 탄압할 수 없도록 사전에 예방하도록 한다. 전두환 정부도 더 이상 폭력적 진압만으로는 시위 물결을 잠재울 수 없다고 생각하도록 그 당시 광주 항쟁에 침묵했던 미국의 여론도 이끌어내 광주 한 지역이 아닌 국가 전 지역, 그리고 세계국가들의 힘을 모아 전두환 정부의 폭력적, 비민주적 행위에 대해 규탄하도록 한다.
4. 독재시대 학생운동의 의의
한국 현대사에서 1980년대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고 역동적이었던 원동력은 바로 학생운동으로부터였다.
도쿄에서의 2.18 독립운동 혹은 광주학생운동이 일제 강점기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한 학생운동이었다면, 5,18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은 국가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운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전기(일제강점기)에서 후기(광복 이후)로 들어서면서 학생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이념성’. ‘변혁지향성’으로 조직화된 학생운동은 그 규모 역시 이전시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을 아울러 직접적 간접적으로 수십만명이 참여한 역사상 유례가 없는 운동이었다. 이러한 운동은 점차 대중적이게 되어 현실정치에 크기 기인했다. 대통령 직선제 등의 민주적 조치와 지방자치제의 실시 등을 불러 일으켰고 이는 정치적 민주화에 기여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시민사회의 활성화를 불러일으켰으며, 사회적 민주화,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확대하였다. 오늘날의 학생운동은 어느 정도의 형식적 제도적 민주화와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인해 그 역동성과 변혁 지향성 학생운동은 하강기에 접어들고 있다. 대신에 소비 문화의 진전과 개방화 자유화의 물결과 함께 개인주의적 감성주의적 반권위적인 경향이 지배적이다. 더 나아가 정치전선 뿐만 아니라 복지, 성, 인권, 문화와 같은 다양한 부문들로 운동 영역이 확장되었다. 이렇듯 학생운동의 새로워지는 동향 속에서 우리의 대처하는 자세를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만약 대한민국 독립 이후 독재시대 학생 운동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역사는 바뀌었을까. 너무도 당연하겠지만 아마도 더 무생명하고 더 경직되어있는 사회를 상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학생들의 운동으로 인한 변혁의 에너지가 우리 사회를 좀 더 자유롭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프랑스가 과거 자유를 위해 엄청난 희생과 피를 내었던 것처럼 독재시대 학생 운동으로 인해 무고한 생명을 수없이도 잃었지만 이들이 없었다면 현 시대에서 더 많은 무고한 이들이 희생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역사는 바뀌지 않았을 수도, 더딘 민주의 길을 걸었을 지도, 언론과 정부의 탄압 속에서 민주주의가 후퇴된 시대를 살아야 할 수도 있었다. 혹자들은 대한민국이 피의 역사가 없기에 공허한 자유를 얻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자유와 대한민국의 모든 이들을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학생들. 끝까지 군부정권에 맞서 계엄령 철폐와 민주정치지도자 석방 등을 외치며 앞장섰던 학생들이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민주주의가 존속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실에 얽매여 무엇 하나 가치 있게 포기하지 못 하는 우리는 그 용기가 너무나도 부럽다. 우리는 21세기의 급변하는 사회를 이끌어 갈 학생이다. 2011년 민주주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요즘 민주주의 역사의 중심에는 대학생들이 있다. 점차 조직적인 모습에서 개인적인 모습으로 분산되는 모습을 띄고는 있지만 아직 학생들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이 깨어있는 의식은 예전과 다름없음을 믿는다. 이러한 과거를 새겨둔 학생으로서의 그리고 이 땅의 지식인으로서의 책무가 무엇인지 깨닫고 또 그 책무를 다 할 사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대에 새로운 통합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이 땅의 지식인의 책무이다.
「21세기 한국사회의 국가적 비전을 제시하고 주도할 사회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학생운동이 기존 운동 행테와 부정적 요소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통합적 비전을 정립하고 제시할 수 있는 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는 한편으로는 기존 학생운동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부정적 유산들을 얼마만큼 극복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抗日學生史(梁東柱, 靑坡出版社, 1960)
항일학생사(양동주)
5.참고도서 및 자료 출처
교재 (한국의 정치-제도 과정 발전 2008)
강남구청 인터넷 수능방송 근현대사(법문사)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월간중앙 1988년 5월 호
5.18 기념재단(http://www.518.org/welcome.html)
'대학생의 자격' - 대구경북지역대학생 5.18역사기행|작성자 Thanksgiver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가격2,0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13.04.10
  • 저작시기2014.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38671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