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_마이클 샌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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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_마이클 샌델 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정의란 무엇인가?
2.. 공리주의의 정의
3. 자유가 말하는 정의
4. 미덕의 정의
5. 행복, 자유, 미덕

본문내용

세 가지 방식을 살펴봤다. 누군가는 행복의 극대화가 정의라 말할 것이고, 다른 사람은 정의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어쩌면 미덕을 장려하고 공동선을 함께하는 것이 정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공리주의와 자유지상주의는 납득할 만한 이유보다는 보다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고 생각된다. 공리주의는 다수의 행복에 주목한 나머지 그 나머지 개인들의 권리는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 효용은 높을 지라도 불평등을 감수해야 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존재하게 된다. 또 정의와 권리를 원칙이 아닌 계산의 문제로 만들고 있다. 인간 행위를 하나의 도량형으로 환산해 획일화하는 것 역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자유지상주의는 공리주의 보다는 현재 상황에는 부합해 보인다. 그렇지만 개인의 권리는 존중하지만 불평등을 당연시한다는 점에서는 공리주의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물론 자유주의적 평등주의는 자유지상주의에서 보다 불평등을 완화시키기는 하지만, 여전히 이를 인정하고 있다. 또 선택의 자유만을 확보했다고 해서 정의롭다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가 선택한 정의는 바로 ‘미덕’이다. 저자는 좋은 삶을 사는 것에 대한 고찰이 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자유주의적 평등주의와 목적론적 사고방식은 분명히 둘 다 공동선을 고려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존 롤스는 불공정은 제도가 이를 다루는 방식에서 생겨난다며 우리가 제도를 다룰 때 “서로의 운명을 공유하고, 우연히 주어진 선천적이거나 사회적인 환경을 이용하려면 그 행위가 반드시 공동의 이익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자”고 제안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사람들이 고유의 능력과 미덕을 권장하는 것, 즉 공동선을 고민하고, 판단력을 기르며, 시민 자치에 참여하고,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걱정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평등이나 중립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적 평등주의와는 다른 점도 가진다.
이러한 의견은 어찌보면 상당히 위험하다. 개인의 가치를 논하다가도, 곧이어 공동체라는 이익에 개인이 빠져들 수가 있다. 칸트가 목적론에 반대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렇지만 저자는 여전히 목적론적 사고를 옹호한다. 그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가 보다 좋은 삶에 귀결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빈부 격차가 커지면 민주 시민에게 요구되는 연대의식은 약화된다. 이러한 불평등 속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삶은 점점 더 괴리되고 서로 다른 서비스를 이용하고 수단을 사용하며 의식의 토대가 되는 연대와 공동체 의식이 약화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는 일정수준의 소득 재분배를 통해 분배의 정의와 공동선의 연관성을 강조한다.
도덕적, 종교적 신념을 회피하지 않고 도덕적 이견에 개입하는 것 역시 그는 옹호한다. 스스로 이러한 부분을 지나치게 주관적이라 여기고 외면하다보면, 여기서 나온 태도는 거짓이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차라리 공개적으로 고민하고 합의를 이끌어 나간다면 보다 정의로운 사회의 기반이 될 수도 있다. 마치 오바마가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을 공개 석상에서 숨기지 않겠다고 한 것 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에 국민들이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이러한 부분이 가능할 수 있다는 걸 예견한다.
사실 그의 약력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 존 롤스의 논리를 비판한 부분이다. 그렇지만 참 아이러니 하게도 내게는 그의 정의가 존 롤스와 상당부분 함께 하는 것 처럼 보인다. 존 롤스가 제시한 사회보장의 부분이 그가 제시한 공동선의 정치와 그닥 다를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부분 부분들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점에서, 그가 좋은 삶을 정의와 연결시켰다고 해서, 다른 자유나 행복에 의해 설명된 정의를 완전히 거부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정의라는 보이지 않는 개념은 절대적은 답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정의 역시, 100년후에는 일반적이지 않은 점으로 인식될 지도 모른다. 상황에 따라, 시간에 따라 그 틀은 유지할지 모르지만 정의는 조금씩 바뀌어 간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정치의 목적을 ‘좋은 삶’과 연결시킨 관점은 근대적 자유주의에 익숙한 우리에게 정치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롤스는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며 동시에 사회적 약자에게 보다 아량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자유만을 고려한 사회는 절대 평등하지 않음을 우리에게 시사한다. 그리고 칸트는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이야기를 하며, 우리에게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요구한다. 즉, 무엇이 정의이든 간에 이 책에서 풀어온 이야기는 우리에게 교훈과 함께 반성할 기회를 제공했음은 분명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쉽지만 어렵다고 느꼈다라고 하면 이상할까. 내용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던져져 오는 도발적인 딜레마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결국 몇 번 씩이나 책을 읽다가 잠시 내려놓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기를 반복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느낀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아, 이 책은 참 미국적이구나. 그리고 굳이 正義를 定義해야만 하는가. 어쩌면 정의라는 것을 명확히 하려는 것은, 이로 인해 이득을 얻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행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나쁘게 느낀 것은 아니다. 다만 굳이 정의를 일관되게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아도 도덕적으로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만큼 저자가 제시한 많은 사례에서 나는 어떠한 하나의 입장으로 답을 내리지 못했다. 특히 나에 대한 책임감이 클 때, 모두 남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나를 보고 참으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정의라는 것은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논해지고 있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해답은 던져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어쩌면 끝없이 논쟁의 중심에 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를 논하는 것은 절대 시간을 헛되게 쓰는 것이 아님을 알았으면 한다. 분명히 이를 논하는 사이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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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4.25
  • 저작시기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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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8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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