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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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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조선총독부의 고문서

Ⅲ. 조선총독부의 학력주의

Ⅳ. 조선총독부의 관리임용

Ⅴ. 조선총독부의 기록물관리

Ⅵ. 조선총독부의 보통문관시험

참고문헌

본문내용

은 소수의 조선인은 각자의 노력에 의해 차별을 극복하고 ‘충성’에 대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보통문관시험 합격자들은 능력과 조건이 비슷하였고, 수험과정과 시험을 통해 조선총독부가 요구하는 관리로서의 의식과 자세를 갖추고 있었다. 따라서 조선인 합격자들은 ‘공정한 경쟁’을 기대할 수 있었으며, 특히 ‘문화정치’를 표방한 사이토 총독은 관리 임용과 승진에서의 차별을 시정하겠다고 공언했다. 실제로 몇 가지의 상징적인 조치가 이루어졌고, 1920년대에 조선인 보통문관시험 합격자들은 일본인보다 더 높은 임용률을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차별이 존재하지 않음을 조선 내외에 선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비교적 관리 수급상황이 원활했던 1920년대와 달리 대공황 이후 만성적인 실업난에 시달리던 1930년대에는 일본인 합격자를 우선적으로 임용했다. 또 초임 발령할 때 관리로서의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요직에는 일본인들을 우선적으로 발령했다. 60% 이상의 조선인 합격자들이 판임관으로서의 첫 출발을 일선 군청에서 시작하였음에 반하여 일본인은 전체의 30%만 군청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일본인 합격자의 30% 이상이 조선총독부 등 핵심 관청에 배치되었고 조선인으로서 조선총독부에 배치된 사람은 불과 5명뿐이었다.
초임 발령에서 예측할 수 있었던 것처럼 고등관 승진에서의 차별은 더욱 뚜렷했다. 일본인 합격자의 고등관 승진율은 조선인보다 2배나 높았다. 또 고등관으로 승진하더라도 조선인은 군수나 도이사관, 면장 등 극히 제한된 영역에 한정되었으나 일본인은 경시, 이사관, 사무관, 사세관, 부참사 등 그 직역이 다양할 뿐 아니라 조선총독부를 비롯한 각 요직에 배치되었다. 곧 조선인의 고등관 승진은 하나의 장식으로서 존재할 뿐 정책을 실질적으로 운용할 지위에는 배치되지 않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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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이승일, 조선총독부 공문서, 역사비평사, 2007
이형식, 1910년대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의 인사정책 -조선총독부시보(試補)를 중심으로, 한일군사문화학회/한일군사문화연구, 2012
얼레인 아일런드 저, 김윤정 역, 일본의 한국 통치에 관한 세밀한 보고서, 살림, 2008
장신, 1919~43년 조선총독부의 관리임용과 보통문관시험, 한국역사연구회/역사문제연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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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15
  • 저작시기2021.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61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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