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업, 공업과 화학공업, 공업과 삼베수공업, 비날론공업, 세계공업지역, 북한공업, 인도공업]공업과 화학공업, 공업과 삼베수공업, 공업과 비날론공업, 공업과 세계공업지역, 공업과 북한공업, 공업과 인도공업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공업, 공업과 화학공업, 공업과 삼베수공업, 비날론공업, 세계공업지역, 북한공업, 인도공업]공업과 화학공업, 공업과 삼베수공업, 공업과 비날론공업, 공업과 세계공업지역, 공업과 북한공업, 공업과 인도공업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공업과 화학공업
1. 정유 공업
2. 석유 화학 공업
3. 비료 공업
4. 펄프․제지 공업
5. 피혁 공업
6. 합판 공업
7. 고무 공업
8. 합성 수지 공업
9. 정밀 화학 공업

Ⅲ. 공업과 삼베수공업

Ⅳ. 공업과 비날론공업

Ⅴ. 공업과 세계공업지역
1. 서부유럽 공업지역(근대 공업의 발상지)
1) 해당지역
2) 입지조건
3) 입지 변화
4) 문제점
5) 대책
2. 북아메리카 공업지역(세계 최대의 공업 지역)
1) 해당지역
2) 입지조건
3) 변화
3. 아시아 공업지역(급속한 성장, 다양한 공업 발달)
1) 해당지역
2) 입지조건
3) 특색
4. 독립국가연합 공업지역(콤비나트 중심으로 발달)

Ⅵ. 공업과 북한공업
1. 가정 용품
2. 건설 용품
3. 중공업 관련 기기
4. 북한 과학기술 연구자가 최근 일본의 동포 과학 기술자들에 요구해온 기술 자료

Ⅶ. 공업과 인도공업

참고문헌

본문내용

. 북한 과학기술 연구자가 최근 일본의 동포 과학 기술자들에 요구해온 기술 자료
요구해온 소재 관련 자료 목록을 별지에 표시하였다. 자료들을 보면 아주 낮은 수준의 기술자료부터 Nano-Technology와 같은 최첨단 자료까지 포함되어 다양성에 놀란다. 이것들은 자세히 보면 군사 산업에 관련 있는 자료가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에 비하여 민생용 기술자료는 적다. 또한 연구 Seminar에 초청 받아 갔다가 돌아온 연구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은 Seminar가 끝나고 연구설비나 생산현장을 견학하려하면 그것을 거절하고 연구와는 관계없는 관광지에 안내한다고 한다. 보여줄 설비가 없어서인지 비밀이 많아서 그런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Ⅶ. 공업과 인도공업
인도 공업의 특징으로서 다음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1938-39년을 기준으로 할 때, 공장제 공업에 있어서 부가 가치의 구성비는 섬유 공업이 37.%, 제철업이 4.4%, 제당업이 3.4%라는 순서였다. 둘째, 독립 직전인 1947년을 기준으로 할 때, 인도인 자본이 51.6%, 유럽인 자본이 26.3%, 인도인 유럽인 합동이 22.1%를 차지했다. 셋째, 19세기 중엽 이후 장기에 걸쳐서 완만하게 공업화가 진행되었다.
한국은 다음과 같다. 첫째, 1940년을 기준으로 할 때, 공업 생산액의 구성비는 화학 공업이 37.3%, 식료품 공업이 19.9%, 섬유 공업이 12.5%였다. 둘째, 1940년을 기준으로 할 때, 한국인 자본이 4.9%, 일본인 자본이 92.7%, 한국인 일본인 합동이 1.8%를 차지했다. 셋째, 1920년대 중반부터 1945년 사이에 급속하게 공업화가 진행되었다.
위와 같은 차이를 낳은 중요한 계기의 하나는 영국과 일본의 자본 수출이었다. 인도와 실론에 대한 영국의 누적 투자액은 1938년에 30.5억 달러였다. 시기를 나누어서 보면,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이 18.5억 달러로 61%를 차지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인도가 관세율을 높여 갔기 때문에, 관세 장벽을 피하기 위해서는 인도에 투자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게 되었겠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만큼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1920년대 이후 인도 총독부가 인도에 등록하고 있는 자본을 우대하는 정책을 폈던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누적 투자액은 8.7억 달러 정도였는데, 시기를 나누어서 보면, 70% 정도가 1920년 이후에 이루어졌다. 이 시기에 조선 총독부는 일본 자본의 유치에 분주했는데, 그것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1인당 투자액을 구해 보면, 인도에 대한 영국의 자본 수출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인도에 대한 영국의 1인당 누적 투자액은 1938년까지 8.4달러 정도로서 주요 제국주의 국가의 아시아 식민지에 대한 1인 당 누적 투자액과 비교해 볼 때 적은 편이었다. 특히 한국에 대한 일본의 누적 투자액은 37.8달러 정도였다. 추계에 있어서 정밀도의 차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한국에 대한 투자액이 약 4.5배 정도 많았으므로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 수출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인도는 인도 안에 본점을 두는 회사의 자본금 비중이 커져 갔다. 1914-15년 평균을 100으로 한 인도에 본점을 두는 회사와 인도 밖에 본점을 두는 회사의 자본금 추이를 보면, 인도 밖에 본점을 두는 회사의 자본금 지수는 1930-31년 무렵에 250으로 정체했지만 인도 에 본점을 두는 회사의 그것은 1930-31년 무렵에 350에 달했고, 이후에도 증가하여 1945-46년 무렵에는 600에 달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일본에 본점을 두는 회사 자본의 비중이 점점 커져 갔다. 한국 안의 회사 자본의 설비 자본 총액에서 차지하는 일본에 본점을 두는 회사 자본의 그것의 비율이 1942년에는 74%에 달했다.
인도와 영국은 멀리 떨어져 있으며, 인도는 亞大陸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대국이기 때문에 당연히 위와 같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1914년에는 인도인 자본이 20.9%, 유럽인 자본이 65.4%, 인도인 유럽인 합동이 13.9%를 차지했다.
인도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공업 부문에 27.7%, 농림 수산업 부문에 20.4%, 상업에 16.8% 등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공업 투자 비율이 22.4%였던 것에 비하면 영국의 쪽이 공업 투자의 비율이 높았다고 할 수 있다. 공업 투자 중에서는 黃麻 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경공업이 전체의 71% 정도를 차지했으며, 철강업 또는 화학 공업에 대한 투자 비중은 15% 정도였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투자는 공업 투자의 46.9%가 화학 공업, 11.0%가 금속 또는 기계 공업이었고, 방적업에 대한 투자는 10.8%에 지나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으로부터의 수입품에 대해서는 섬유와 주정에 대해서 종가 5%의 관세를 부과했을 뿐 그 외에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다. 반면에 인도는, 품목에 따라서 그 정도는 다르지만, 식민 본국인 영국에 대해서도 보호 관세를 설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나라가 자국의 무역을 보호하게 되면, 그 나라에 상품을 수출하고 있었던 타국들이 그 나라의 시장을 계속해서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본을 투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한국은 인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상품 수출에 유리한 지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량의 자본 수출이 행해졌던 것은 한국이 자본 수출을 유리하게 하는 조건을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김완희(1967), 전자공업 진흥을 위한 건의서, 대통령 보고문서
김기철(2002), 공업의 특성과 발전, 경상대학교 / 최고관리자과정 논문집
김상수(1992), 개화기 한국 공업입지의 연구, 동국대학교
남근우(2001), 북한 공업관리체계 변화에 함축된 정치적 의미에 관한 연구, 인하대학교
이철우(1997), 안동 삼베 수공업산지의 생산유통체제와 지역분화 KISTI, 한국지역지리학회 / 한국지역지리학회지
전창호(1996), 개혁·개방 이후 인도 공업의 발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부설지역정보센터
  • 가격6,500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13.07.22
  • 저작시기2021.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63743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