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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무신정권, 반몽의식, 원나라침입, 거란족침입, 위기, 종결]무신정권의 성립, 무신정권의 지배능력, 무신정권의 반몽의식, 무신정권의 원나라침입, 무신정권의 거란족침입, 무신정권의 위기, 무신정권의 종결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무신정권의 성립
1. 무신란의 배경
1) 의종의 실정
2) 문무차대
2. 무신란의 발생

Ⅲ. 무신정권의 지배능력

Ⅳ. 무신정권의 반몽의식

Ⅴ. 무신정권의 원나라침입

Ⅵ. 무신정권의 거란족침입
1. 금 치하 거란족 내부의 분열
2. 3군을 편성하여 방어하였지만, 군제의 문란으로 고전
3. 민의 항쟁이 재연

Ⅶ. 무신정권의 위기

Ⅷ. 무신정권의 종결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죽이고 권력을 독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임연 역시 개경환도문제로 원종과 부딪치게 된다. 그러자 정권을 잡은지 5개월 만에 원종을 폐하고 안경공 창을 왕으로 擁立한다. 이 일로 원에서 임연, 원종, 안경공 창을 소환할려고 하자 임연은 원종을 復位시킨다. 그리고 70년에 임연이 사망하자 원종을 대신해 순안공 왕종은 임연의 아들 임유무를 교정별감에 임명한다. 당시 원나라에 갔던 원종은 귀국길에 오르면서 강화도로 가지 않고 바로 개경으로 환도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안 임유무는 야별초를 통해 막으려 하였고 원종이 고려에 당도하자 임유무는 군사를 이끌고 왕 일행을 막으려 하였으나 왕 일행이 개성에 임박해 있자,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 홍문계와 송송례에 의해 임유무가 살해되었다. 이로써 1백년간 지속된 무신정권시대는 완전히 종결되었다
Ⅸ. 결론
원의 침입에 있어 국가 체제를 유지한 나라는 베트남, 인도, 일본 그리고 고려뿐이었다. 나머지 중동 및 동 유럽 국가들은 철저히 파괴, 살육되었으며 그 파괴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다.
유럽 및 서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인 바그다드가 원의 한방 공격으로 무너지고 10만이 넘는 유럽 기사 연합군이 2천도 안되는 원의 기마병에게 몰살당하거나 중앙아시아의 거대한 제국이었던 호라즘이 원의 단 한번 침입에 그대로 몰락하기도 하는 등 원의 공격력은 세계 최강이었다.
그럼 베트남과 인도, 일본은 어떻게 원의 공격을 막아냈을까?
베트남 같은 경우에도 원의 침입으로 수도가 함락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살육당하는 등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그들의 전매특허인 게릴라전과 기병에게 약한 정글 환경, 그리고 정예 2만의 수도 탈환 작전이 맞물리면서 원은 철군, 다시는 침략 하지 않았다. 사실 베트남 침략은 별 의욕 없이 치러진 것인데 정복왕조인 원은 중국 한족왕조 중 제국이라 불린(한나라, 당나라)나라가 모두 베트남을 장악했었다는 것에 착안, 베트남을 공격했으나 베트남은 지리적 환경이나 특산물 등 원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인도는 원이 직접 인도를 치러 군대를 보낸 것이 아니라 칭기즈 칸의 개인적인 원수를 찾으러 군대를 보낸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작은 국경 분쟁이 발생했고 결국 그곳엔 칭기즈 칸의 원수가 없다고 판명 나자 철수했던 것이다.
일본은 정말 운 좋게 침입을 막아 낸 것인데 일본의 특성상 육로가 아닌 해로를 통해 침입을 해야 만 했고 이는 대륙에서 생활했던 원 군사들에게 약점이 되었다. 하지만 일본 원정을 강력하게 주장한 쿠빌라이의 명령에 의해 2차례 강행된 일본 정벌은 때마침 불어오던 2차례의 태풍에 의해 완전히 실패했다. 고려군도 이 정벌에 참여했지만 주 병력이 아닌 보조 병력이었기 때문에 지휘권이 없었고 바다를 모르는 원나라 장군이 지휘하는 정복군은 결국 태풍에 의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모조리 궤멸되었다.
이에 반해 고려는 원이 침입할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다. 중국 황제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당 태종의 고구려 정복 실패,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천하에 알린 고려를 굴복시킨다면 당 태종도 못한 일을 해낸 것이 아닌가?
실제로 쿠빌라이는 충렬왕의 입조하자 \'당 태종도 못해낸 일을 내가 해냈다!\'라며 기뻐했다. 또한 해상 실크로드의 최종 종착지인 고려를 장악하여 막대한 무역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경제적 이득, 남송 정벌과 중동 및 유럽 정복시 혹시나 모를 배후 차단, 후에 있을 일본정벌을 위한 전초기지적 위치 등 고려는 당시 원이 정복해야만 하는 이유만 골고루 갖추고 있었다. 결국 척고여 살해 사건은 일종의 빌미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고려는 7차례나 원의 침략을 막아냈다 이것만 하더라도 고려의 국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후에 조선은 임진왜란 및 2차례의 호란. 3차례의 침입으로 국가가 박살났었지만 고려는 무려 7번이나 그것도 거의 연속으로 벌어진 침략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버텨냈고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지만 그래도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한국 역사상 마지막 대륙적 기질을 보여준 훌륭한 국가가 바로 고려였다.
참고문헌
곽윤길, 고려 무신정권 시기 호위조직 연구, 한국치안행정학회, 2010
김아네스, 고려 무신정권에 관한 총체적 연구, 한국중세사학회, 2010
민현구, 고려 무신정권의 정치적 유산, 인하역사학회, 2002
민병하, 고려 무신정권 에 대한 고찰, 국방부, 1983
오영선, 무신정권과 사병, 한국역사연구회, 1995
이영, 무신 정권 성립의 국제적 계기, 한국방송통신대학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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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25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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