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주석(김일성 국방위원장)의 행적, 리더십, 김일성 주석(김일성 국방위원장)의 마오쩌둥사상, 항일무장투쟁, 김일성 주석(김일성 국방위원장)의 정권수립, 김일성 주석(김일성 국방위원장) 화전양면전술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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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일성 주석(김일성 국방위원장)의 행적, 리더십, 김일성 주석(김일성 국방위원장)의 마오쩌둥사상, 항일무장투쟁, 김일성 주석(김일성 국방위원장)의 정권수립, 김일성 주석(김일성 국방위원장) 화전양면전술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김일성 주석(김일성 국방위원장)의 행적
1. 김일성의 가정환경
2. 국민부 좌파 청년들 속에서의 세계관 전환
3. 항일 유격운동의 시작
4. 항일민족통일전선과 조국광복회
5. 월경과 소련에서의 생활

Ⅲ. 김일성 주석(김일성 국방위원장)의 리더십(리더쉽)

Ⅳ. 김일성 주석(김일성 국방위원장)의 마오쩌둥사상(모택동사상)

Ⅴ. 김일성 주석(김일성 국방위원장)의 항일무장투쟁

Ⅵ. 김일성 주석(김일성 국방위원장)의 정권수립

Ⅶ. 김일성 주석(김일성 국방위원장)의 화전양면전술

Ⅷ.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수뇌는 정치, 군사 모두 무지했었다. 이런 사태에서 강간이 김일성의 무력통일을 지지했고 김일성은 결심을 굳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박일우가 모택동과 레닌을 들먹이며 무력통일을 지지하자 김일성 만족해하며 전쟁의 각오를 확고히 한다. 동족 상간의 피를 보는 것을 싫어하는 최용건, 김두봉 등 몇 명의 발언이 있었지만 무시당하고 만다. 결심을 한 김일성은 소련의 스탈린에게 전쟁지원을 요청하고, 미국방장관 애치슨의 남한을 태평양방위권 밖에 있는 것처럼 언명한데서 더욱 고무되었다.
이런 과정중에 김일성은 모택동의 방식을 적용한 개전전의 ‘평화통일 공세’를 펼친다. 여기서 모택동 방식이란 중국측이 당시 남경에 수도를 둔 장개석의 국민정부를 붕괴시키기 위해 총공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국민당 정부측에 내전종식, 민주연합정부수립 협상 등의 평화회의를 제의함으로써 시간을 벌었던 기만적인 정치작전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쟁준비동안 대한민국측의 방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6월 7일 ‘조국통일 민주주의 전선’은 화대 중앙위원회를 소집, 이미 당정치위원회에서 성안하여 시달한 ‘남반부 전체 민주주의 정당, 사회단체와 전체 조선인민에게 보내는 평화적 통일촉진 호소문’을 전격 채택했다.
·김일성과 모택동의 평화회담 방식
이후 김일성은 남북회담을 제의하고 여러 가지 사건을 만들어가며 남한의 정부를 어수선하게 만들어 놓게 하는데 아주 성공적인 역할을 잘 수행했다.
결국 이런 어수선한 중에 북에서는 38선의 인민군 대부대 이동을 감행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화전 양면 전술을 적용했던 북한의 6.25 남침전쟁 준비과정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김일성의 판단 미스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미국의 개입이었다. 애치슨 성명으로 김일성은 믹국은 개입하지 않는 전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미국은 장개석과 더불어 중국 본토에서 쫓겨난 지 1년도 못되었기 때문에 두 번 다시 아시아 대륙에 발을 들여 놓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작용되었다. 그래서 속전속결이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전쟁에 확신을 갖고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하겠다.
Ⅷ. 결론
이미 해방 직후 가짜 김일성 설이 나돌 때부터 좌익진영에서는 가짜 김일성 설이 나돈 것에 대해 \"그렇게 유명한 장군이니\" 나이도 많을 것이라는 \"대중들의 평범한 해석\"을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이 \"진보적 민족주의 진영에 일대 타격을 하려는 좋은 재료로 성(盛)히 선전을 하고 있는 야비한 의도\"를 갖고 퍼뜨린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었다.
이명영의 \'가짜 김일성 설\'을 보면 이 설이 김일성을 깎아 내림으로써 친일파들에게 어떻게 봉사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명영은 1942년 일본육사 교관으로 한인생도 담당 지도관이었던 기하라(木原義雄)를 인터뷰하였는데 기하라가 한인 생도들의 하숙집 주인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한인생도들이 \"김일성 장군도 육사에서 닦은 실력으로 항일무장투쟁을 했는데 우리에게도 뒤를 따를 때가 올 것이니 힘써 배워 두자고 서로 다짐하더라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이명영은 당시 박정희와 그와 함께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이주일 등이 육사에 다니고 있었다고 지적함으로써 마치 이들이 전설적 명장 김일성 장군을 존경하여 그를 따르기 위해 반일의 기회를 노리며 힘을 키우고 있었던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런데 이명영은 이북의 김일성을 가짜라고 비난하는데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 동북항일연군을 \"항일과 공산혁명을 부르짖고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직업적인 비적떼에 불과\"하며 \"약탈, 방화, 살인, 납치를 일삼는 공비부대\"라고 매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명영의 주장은 항일유격대를 \"약탈, 방화, 살인, 납치를 일삼는 공비부대라고 매도하던 일제침략자들의 제국주의 역사관과 동일\"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일제의 이러한 주장은 이미 당시의 민중들에 의해 거부되고 있었다. 김일성의 약탈행위를 강조하는 국내의 신문보도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대중들은 \"누차 선내를 습격하였어도 조선인 동포의 집은 결코 습격하지 않고, 일본인 가옥 및 시설만 골라서 습격한 것은 실로 훌륭한 행위\"라고 믿고 있었다.
이명영에 따르면 진짜 김일성 장군에 대한 이야기는 \"일제의 압박에서 벗어나 광복을 쟁취코저 했던 우리 겨레의 염원에 대해서 무한한 용기와 기대, 그리고 신념을 솟구쳐 주는 원천이며 그 상징이었다\"라고 인정함으로써, 만일 이북의 김일성이 진짜 김일성이라면 그가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역으로 말하고 있다. 이북의 김일성이 가짜라는 그의 주장이 여지없이 파탄된 지금, 진짜 김일성의 위대함을 주장하는 그의 \'가짜 김일성 설\'은 오히려 이북의 김일성이 당시 대중들에게 어떤 존재였는가를 알려주는 하나의 반증자료가 된다. 이북에 돌아 온 김일성이 조선의 독립을 가져다 줄 기대주로 취급받고 있지 않았다면, 그리고 김일성이 단순히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한 사람에 불과했다면 가짜 김일성설이 나올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김일성 가짜설은 식민지와 분단의 비극이 응축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가 사망하고 남북관계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든 지금이야말로 그와 그의 활동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통해 만주항일전쟁을 비롯한 민족독립운동사를 전체적으로 재구성하고 그를 통해 남북관계의 역사성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시도할 때이다. 과거의 위대함과 정통성이 곧 오늘의 체제적 정당성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한순간에 역사는 비약하지 않는다. 역사인식의 발전 없는 단순 경제발전은 오랜 생명력을 지닐 수 없다. 김일성가짜설이라는 부끄러운 논쟁으로부터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참고문헌
◈ 김정민(1998), 김일성과 김정일의 모습, 현대경제연구원
◈ 송인욱(1992), 김일성의 사상적 특성에 관한 연구, 서강대학교
◈ 이태섭(2001), 김일성 리더십 연구, 들녘
◈ 이호청(1994), 김일성 정권의 확립 과정에 관한 연구, 경남대학교
◈ 정광민(2012), 김일성과 박정희의 경제전쟁, 꼬레아
◈ 정광민(2010), 김일성의 유일체제와 경제시스템의 변동, 한국국방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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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29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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