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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그람시][헤게모니론][보르디가 분파]안토니오 그람시의 약력, 안토니오 그람시의 이론사적 위치와 동기,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론, 안토니오 그람시의 시민사회론, 안토니오 그람시 보르디가 분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안토니오 그람시의 약력

Ⅲ. 안토니오 그람시의 이론사적 위치와 동기

Ⅳ.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론

Ⅴ. 안토니오 그람시의 시민사회론

Ⅵ. 안토니오 그람시의 보르디가 분파

Ⅶ.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동자 당이 지도할 수 있느냐, 즉 노동자 당이 혁명의 조직자로 나서느냐에 달려 있었다. 자본가계급 또한 이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대규모의 직장 폐쇄는 결국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에게 던진 “자본주의 체제에 항복할 것이냐 아니면 노동자 혁명 사회를 건설할 것이냐”는 양자택일의 도전장이었다. 전진하지 않고 현 상태로 질질 끄는 것은 굶주림과 전망 결여에 시달리는 노동대중을 적들에게 통째로 바치는 것이었다.
노동대중의 거대한 압력에 직면하고 있던 노동조합총동맹 지도부는 이 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노동대중이 “혁명을 조직하라!”고 그들을 압박하고 있는 현실에 벌벌 떨었으며, ‘어떻게 이 압력으로부터 도망칠 것인가’만을 궁리했다. 애초부터 자본주의를 뛰어넘을 의사가 없었던 그들은 책임을 전가했다. 사회당 지도부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혁명을 지도할 의사도, 능력도 없음을 꿰뚫어보고 있던 그들은 이것을 이용했다. 그들은 사회당 지도부에게 “사회당이 노동조합 지도권을 장악하여 폭동(즉 혁명)을 조직할 의사가 있다면 자신들은 지도권을 사회당 지도부로 이전시킬 것이다”라고 제안했다. 엄청나게 뜨거운 감자가 자신에게 건네지는 것에 죽음보다 강한 두려움을 느낀 사회당 맥시멀리스트들은 그것을 거절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마찬가지로 책임전가에 나섰다. 그들은 토리노 사회당 지부 지도자들에게 “토리노 사회당 지부가 폭동을 선도할 수 있는지”를 넌지시 물었고, 그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이를 핑계로 곧장 “혁명의 조직자” 역할을 포기했다. 이처럼 노동자 운동의 주도적 부위들 모두가 거대한 노동자 투쟁이 그들 앞으로 보낸 “혁명”이라는 뜨거운 감자 앞에 벌벌 떨었고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핑계거리를 찾기에 바빴다.
그러나 9월 투쟁의 패배는 공산주의 세력의 한계 또한 극명하게 드러냈다. 이들은 사회당과 노동조합 관료들의 책임 방기에 맞서 투쟁하면서, 투쟁으로 떨쳐 일어난 노동대중의 운동을 혁명으로 조직할 만한 힘을 갖추지 못했다. 최소한 만일 그들이 토리노에서라도 혁명적 봉기를 일으키고, 공장평의회 운동을 혁명의 물결로 끌어올렸다면 이것은 전국을 거대하게 자극했을 것이다. 이 첫 신호를 발판으로 혁명적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났을 것이고, 그리하여 비록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탄생하기도 전에 혁명이 매장되는 비극만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건 이런 상태에서 이탈리아에서 혁명의 가능성은 결코 현실화할 수 없었고, 혁명은 결국 태어나지도 못한 가운데 매장되었다. 그러나 매장된 것은 단지 혁명만이 아니었다. 사회당의 지배 분파인 중도주의자들 또한 혁명적 투사들의 가슴속에서 매장되었다. 그들은 결코 혁명가가 아니며, 혁명이 일정에 오르면 결국 개량주의 편에 안기고 만다는 점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독립적인 혁명적 노동자 당의 건설이 일정에 오르기 시작했다!
Ⅶ. 결론
<시민사회론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함의 비판>이란 논문에서 김세균은 시민 사회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와 한계성을 주로 집필하였다. 그람시가 시민 사회를 경제적인 의미보다는 일체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단체들이 활동하는 전 상부 구조 영역으로 파악한데 반하여 마르크스는 경제적 토대로부터 비국가적 상부 영역으로 시민 사회의 영역을 제시하였다. 필자는 주로 그람시의 의견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마르크스적 사상을 긍정하였다. 그가 제시한 그람시 이론의 한계는 다음과 같다. 먼저, 그람시 이론에서는 자본주의 특유의 역사 특수적 성격이 결여되어 있다. 봉건제와는 달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도 평등한 상품 화폐 소유자, 구매자로서 출현한다. 시민권이 있으며, 권리를 획득하는 동시에 부르주아의 구조적 권리를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라고 서술한다. 그가 서술한 인과 관계로 볼 때, 그람시가 주장한 헤게모니 투쟁의 전개는 필연적으로 시민사회가 지닌 계급적 성격을 놓치게 만든다. 그렇다면 필자는 어떠한 사회를 주장하는가? 그는, 부르주아 국가와 시민 사회에 포섭되지 않으면서 부르주아 지배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및 그와 동맹한 다른 근로 대중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단체들과 조직들이 성립 활동하며 또 그 속에서 투쟁과 일상생활, 노동과 정치, 문화 등이 새로운 민중적 교류 양식을 통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새로운 사회적 공간을 제시하는데 이것을 민중사회로 부른다. 평자는 이러한 민중 사회에 대해서 비판적인 견해를 갖는다. 일단 민중 사회를 실현하려는 주체가 마르크스주의자라고 가정을 할 때, 그들이 기대하는 민중 사회는 추상적 개념에 불과하다. 국가와 시민 사회에 포섭되지 않는다는 것, 완연한 분리는 실제적으로 일어 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논문의 저자는 민중 사회와 시민 사회는 상호 침투적인 관계라고 서술하였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그람시가 주장한 시민 사회와 필자가 주장한 민중 사회는 똑같은 내포를 갖게 된다. 또한 그람시의 이론을 ‘정치 사회의 시민사회로의 재흡수론’이라고 서술하였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당적 국가 형태, 특히 지식인을 대중과 분리시키는 역할을 재생산한다고 주지한다. 이는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람시가 주지하였듯, 지식인은 열정과 감정상에 연결 관계이며 대표자에 불과하다는 이론과 그에 따르는 교육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점이 가능하다고 본다. 논문의 저자는 기동전과 진지전의 주장에서도 그람시의 진지전이 기동전의 보완, 대체적인 것에 불과하다며 점진주의적 개량화 전략을 내포할 위험이 있다는 점 역시 주장한다. 이는 김성국이 주장한, 제도화와 맥이 닿아있는 말이며 본래의 투쟁적 쟁탈이 다소 사라질 수도 있다.
참고문헌
◇ 김국현, 그람시 국가론에서의 헤게모니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1993
◇ 김성국,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 한울, 1995
◇ 이해영, 안토니오 그람시 : 거절당한 혁명과 혁명의 미래, 한국사회과학연구소, 1998
◇ 이순웅, 그람시 이데올로기 개념의 형성,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08
◇ 허범구, 그람시의사회관에 관한 일 연구, 서울대학교, 1992
◇ Boggs, Carl 저, 강문구 역, 다시 그람시에게로, 한울,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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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8.14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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