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역사인식 개관과 홍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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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 중기 역사인식 개관과 홍여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조선 중기 역사인식
 1) 왜란 이전의 역사인식
 2) 왜란 이후의 역사인식
 3) 호란 이후의 역사인식
2. 홍여하
 1) 생애와 학문경향
 2) 『휘찬여사』의 편찬과 내용
 3) 『동국통감제강』의 편찬과 내용
 4) 역사인식
 5) 사학사적 의의

본문내용

그가 『휘찬여사』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을 보충하여 우리나라 전체 역사의 체제를 세우려고 했음을 의미한다. 내용은 크게 범례, 조선기, 삼국기, 신라기 4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조선기는 상하로 구분되어 상은 은태사, 하는 기준왕에 대해 서술하는 등 삼국 이전 시기를 다루었다. 삼국기에서는 혁거세 등 신라왕을 항목으로 하여 신라의 건국에서 삼국통일 이전까지의 시기를 다루었으며, 고구려와 백제는 각 항목 속에 부기하였다.
4) 역사인식
17세기 중반 조선의 사상계는 병자호란의 사상적 충격 등으로 인해 반청과 대명의리론이 대세를 이루어 갔다. 역사학에서는 『춘추』와 주자의『자치통감강목』의 사법을 따라 정통론과 강목법을 도입하여 도덕적 요소와 기자신라를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여하는 경과 사를 도의 체용 관계로 이해하고, 역사서를 포폄하고 권징하는 책으로 보았다. 이는 대부분의 성리학적 역사서술처럼 역사를 객관적인 학문이 아닌 도덕적 효용을 위한 학문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춘추』는 경세의 전으로서 백왕이 바꾸지 못하는 대법으로 『강목』은 만세사필의 규구와 준승을 강조함으로써, 전통과 참위를 명확히 구별하고 신화설화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5) 사학사적 의의
17세기 전반까지 조선의 사상계는 이황과 이이의 성리학, 양명학, 북송유학, 노장학 등 다양한 학문경향이 존재하였으며 학자들 역시 서로 교류하고 배척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자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더욱 심화되면서 자기 학파의 학문적 정통성을 강화하고 동시에 상대방의 학문을 비판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자신들의 학문적 입장을 명백히 하려는 경향은 역사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홍여하는 바로 영남 남인들의 학문적 입장을 역사서에 본격적으로 반영한 인물이었다. 그는 『동국통감제강』과 『휘찬여사』를 저술하여 고려까지의 우리나라 전체 역사를 새로운 기준에 의해 체계화 하였다. 이는 당시 조선사회를 강력히 규정하고 있었던 화이론의 역사적 반영이기도 하였다.
또한 역사발전의 기준이 물적객관적인 요소가 아닌 도덕적주관적 요소에 있다고 보아, 당시 군사력 등 물리력을 장악하고 정국을 주도하였던 서인들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며 영남 남인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려고 하였다. 이러한 의도는 왕권의 입장에서 씌여진 『고려사』를 대본으로 『휘찬여사』를 저술하고, 고려를 군왕이 약하고 신하고 강하여 군주의 도가 없는 시대로 비판하며 왕권강화를 주장한 데서도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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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3.08.25
  • 저작시기2013.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74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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