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상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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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인상주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신인상주의
 1. 신인상주의 배경
 2. 신인상주의 정의

2. 신인상주의 회화표현의 특징
 1. 신인상주의의 분할점묘법
  (1) 형 태(Fonn)
  (2)구성 ( Composition)
  (3) 색 채 (Color)

3. 신인상주의의 대표적 화가
 1) 조르주 피에르 쇠라
 2) 앙리 애드몽 크로스
 3) 폴 시냐크
 4) 카미유 피사로

본문내용

가들의 실험적인 작업에도 관심을 가졌다. ‘앙뎅팡당’ 벨기에 작가 그룹이 1887년과 1889년에 브뤼셀에서 연 전시에 피사로와 쇠라 등 몇 명의 작가를 초대했는데, <서리 내린 밭에 불을 지피는 젊은 농부(밭 태우기)>은 1889년 전시에 출품되었다.
그러나 피사로는 재빨리 신인상주의들과 그들의 새로운 표현 형식으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그는 과도한 파편적 붓터치를 피하면서도 가능한 한 최대한 색상 원리를 적용시킬 수 있는 타협점을 모색했다. 그러나 이 타협은 애매모호함이라는 한계로 다가왔다. 폴 시냐크도 그의 일기장에 이러한 점을 지적했다. “피사로는 우리의 기법으로부터 그가 원하는 바를 찾을 수 없었다. … 그는 다양성 속에서 일관성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일관성 속에서 다양성을 모색했다.” 그리고 시냐크가 일기에 적은 이러한 개인적 생각이 가져온 결과는 밀도있는 붓터치가 만든 세밀한 조직 형태의 점묘주의, 신인상주의의 탄생이었다.
<빨간 지붕, 겨울의 마을 풍경>
카미유 피사로는 1867년경에 퐁투아즈의 생 드니 언덕 풍경 이라는 작품에서 이미 퐁투아즈의 비에이 드 레르미타주 거리에 있는 집들을 소재로 삼았는데, 이 작품 속에는 코트데뵈프라 불리는 생 드니 언덕을 배경으로 집들이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화면구성 방식이나 채색 방식 면에서 고전적인 화풍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데, 특히 다양한 톤으로 변화를 준 녹색조의 배경에 공들여 채색한 화풍은 이 사실을 뚜렷하게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이후 1877년 겨울이 끝날 무렵에 완성된 그의 풍경화는 훨씬 더 밝은 색채와 새로운 구성을 통하여 이전의 풍경화와는 다른 화풍을 시도하였음을 보여주는 일례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퐁투아즈의 생 드니 언덕 풍경에서는 축의 역할을 하는 흙길이 관객의 시선을 수평선으로 이끌었다면, 이 작품은 원근법을 통하여 모티프들의 크기를 점점 작게 그려나감으로써 입체감을 살리는 동시에 풍경이 캔버스 표면 위에서 평행하게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구성하였다. 또한 그는 단순히 집에서 가까운 장소에 나가 무작정 풍경을 따라 그리기 보다는 작품에 빨간 지붕, 마을 구석, 겨울 효과와 같은 보다 세부적인 제목을 붙임으로써 일반적인 풍경화의 개념에서 벗어나 자신이 묘사하고자 하는 한 부분을 강조하는데 주력하였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경사진 지붕들은 진한 주황색에서 갈색의 색조를 띄며 화폭 전체를 메우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는 전경의 들판이나 나무들과 후경의 생 드니 언덕을 동일한 색조로 채색했기 때문이다. 그림 군데군데에는 물감을 두텁게 칠하여 빛을 받아 조금씩 반짝이며 필촉이 떨리는 듯한 느낌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표현은 채색된 표면에 강한 힘과 변화무쌍함을 부여하는데 효과적이다.
피사로와 세잔은 1865년부터 동일한 모티프를 가지고 함께 작업하였는데, 이 작품은 이 시기에 완성된 것이다. 특히 세잔은 피사로의 작품에서 그 크기나 공간배치 등을 종종 따라 그리기도 하였는데, 현재 플로리다의 세인트 피터스버그 미술관에 대여중인 세잔의 작품 퐁투아즈 생 드니 언덕의 과수원은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소장된 피사로의 퐁투아즈의 코트데뵈프와 그 크기나 구성 면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세잔 작품에 나오는 집과 지붕은 호리호리한 나무기둥에 가려져 있고 색채효과는 배경의 나무에 의해 제한적으로 표현되었다.
피사로는 1877년 제3회 인상파전에 이 작품을 포함한 22점의 작품을 출품하면서 큰 찬사를 받았다. 특히 유명한 비평가인 데퀴브는 피사로가 사용한 이 모티프에 대하여 문학과학예술지인 라가제트의 1877년 4월 20일자 기사를 통해 다음과 같이 극찬하였다. “숲 속에 숨어있는 작은 집은 멋진 그림이며, 거침없고 단순한 터치로 우리를 사로잡았다.”
<겨울의 아침, 햇살에 비춘 오페라 거리>
1897년은 피사로에게 가장 바쁜 해이기도 했으며,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비극적인 해이기도 했다. 맏아들인 루시앙(Lucien)은 뇌졸중을 일으켜 생과 사의 기로에 있었고, 피사로는 그를 돌보기 위해 런던에 잠시 머물렀다. 이러한 상황은 피사로에게 정서적으로도 또한 경제적으로도 부담을 가중시켰다. 루시앙이 회복할 무렵, 피사로와 그의 아내, 줄리(Julie)에게는 더 큰 슬픔이 다가왔다. 바로 피사로의 3번째 아들인 펠릭스(Felix)가 폐결핵에 걸려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1898년 피사로는 에라니(Eragny-sur-Epte)에서의 작업을 그만두고, 새로운 모티프를 찾아 파리로 나섰다. 그가 새로운 파리 연작을 시작하게 된 데에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이겨보려는 심리적인 요인만 작용한 것이 아니다. 피사로는 만성적인 안구질환 때문에 파리에 있는 의사에게 정기적으로 가서 검진을 받아야 했다. 안구질환으로 인해 옥외작업이 힘들어진 그는 호텔이나 아파트 창에서 내려다본 파리의 도회 풍경을 그리기로 한 것이다. 피사로는 루시앙에게 동생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새로운 <오페라 거리> 연작을 시작하게 되었음을 서신을 통해 전했다. 그는 서신에서 루브르 호텔(Grand Hotel du Louvre)에 기거하며 활기가 넘치고 은빛으로 빛나는 오페라 거리를 그릴 것이라고 밝혔다.
피사로는 오페라 거리 연작을 총 15점 제작했다. 1898년에 제작한 <겨울의 아침, 햇살에 비춘 오페라 거리>는 팔레 가르니에(Palais Garnier)를 배경으로 추운 겨울 아침, 분주한 오페라 거리를 그린 그림이다. 그는 같은 장소에서 반복해서 그림을 그림으로써 빛과 대기의 변화를 화면에 담고자 했다. 화면에서는 수직선과 건물의 원근법적인 사선이 서로 대비를 이루며, 보행자용 안전지대는 새로운 원형의 리듬을 부여한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마차와 보행자들은 유기적인 움직임과 역동감을 만들어 내고 있다. 피사로는 루시앙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파리의 거리는 미적이지도 않으며 다소 추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 곳은 눈부시고 매우 활기가 넘치며 가장 근대적인 곳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따라서 피사로는 이 그림을 통해 점점 근대화되어 가고 있는 파리의 인상을 화면에 담아내려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 가격3,000
  • 페이지수27페이지
  • 등록일2013.08.26
  • 저작시기2012.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7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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