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조경사총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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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의 문화가 여러 곳에 남아 있었다. 폐허가 된 수로 같은 구조물은 거대한 건축물이나 토목구조물에 조예가 없는 정복자들에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시리아를 정복한 뒤 아랍인들은 640년에 이집트에 진격하였고 60년뒤에 그들은 지중해 연안을 침략하고 대서양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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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광신보다는 계속된 약탈의 유혹으로 남쪽의 쾌적한 환경보다는 북족의 스페인으로 눈을 돌렸다. 711년 첫 번째 무슬림들은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반대쪽의 서코트의 반대를 극복하고 남쪽에 합병을 취했다. 다마스커스에서 움마야드의 카리프 왕조가 끝남에 따라 도망온 한 사람이 750년에 독립된 카리프 안달루시아 왕관을 쓰게 되었다. 그 후 무슬림 스페인은 자리를 잡았다. 무어는 토착민과 동화되어 관개시설을 통한 재배법을 도입하고 상업을 통하여 새로운 부를 얻게 되었다. 1238년에 코르도바는 기독교에 넘어갔고 십년 두이ㅔ 그라나다의 알함브라성은 무어족의 마지막 요새가 되었다. 1492년 그라나다는 페르디난다의 기독교에 넘겨주었고 카스틸레의 이사벨라와 무어는 드디어 스페인으로부터 추방되었다.
조경양식
안달루시아에서의 이슬람 최초의 정원은 아부다 알 라흐만 1세가 755년 코르보다에 도읍을 정한 후 다마스커스의 조부의 집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정원과 흡사한 정원을 만든 데서 시작된다. 원예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던 왕은 당시 시리아, 터키, 인도 등지에서 대추야자나무, 석류, 자스민, 장미 등의 진귀한 정원 식물을 수입하기도 하였는데, 이 왕조의 후계자들 역시 선왕과 마찬가지로 정원에 조예를 가지고 고대 로마 유적을 조사연구하기도 하였으며, 특히 아부드 알 라흐만 3세때 정원의 발달은 절정에 이르러 코르도바시와 그 근교는 꽃에 묻힌 대정원이 되었다고 한다.
스페인에서 이슬람 정원의 발달을 지역적으로 볼 때 세빌랴, 코르도바 그리고 그라나다시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코르도바의 대 모스크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및 헤네랄리페, 세빌랴의 알카자르는 대표적인 정원 유적들이다.
아부드 알 라흐만 1세가 786년에 착공한 코르도바의 대 모스크는 이슬람 모스크 중에 가장 큰 것에 속하며, 1238년 기독교인에게 정복당한 뒤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이슬람의 특징을 일부 간직하고 있다. 대 모스크의 2/3는 원주로 되어 있고 1/3은 오렌지 중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주의 숲과 같은 내부에 들어가기 전에 오랑젤이라 불리는 사분원 구조의 100여 주의 오렌지숲으로 이루어진 중정에는 성소에 코르도바의 대 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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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전에 몸을 씻도록 되어 있으며, 오렌지가 우거진 한쪽에는 못이 있는데 이 못의 네 귀퉁이에 각각 분수가 솟아오르며, 이 중정에는 4개의 작은 못이 더 있고 오렌지나무 사이로 커다란 야자나무가 우뚝 솟아 있으며, 모든 나무들은 벽돌로 축조된 관개용 수로로 연결되어 관수되고 있다.
이 모스크는 환상적인 내부에서 외부로 나가는 수학적 비례라든가 원주의 숲인 내부에서 오렌지숲으로 된 외부의 신비롭고 연속적인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고도로 발달된 수학에 힘입어 아라비아적 요소를 가미한 이모스크는 이슬람 문화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사자의 중정은 헤네랄리페 수로의 중정과 함께 그라나다에 현존하는 귀중한 아랍식 중정이다. 그 조영은 1377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주위 건물의 기초를 보강하기 위하여 중정이 굴착될 때 원래의 정원은 현재보다 80 cm 낮게 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와 같이 낮게 한데는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는데, 첫째는 이 구획의 기하학적 윤곽을 부상시키려 했던 것이고, 둘째는 식물이 건축에 방해가 될 정도로 높이 자라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으며, 마지막으로 정원을 꽃의 융단으로 만들어 원로를 거닐면서 꽃으로 만들어진 바닥 위를 거니는 환상을 맛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 같았다.
중정 자체는 아주 작고 둘러싸고 있는 주랑과 2개의 돌출된 원정으로 이뤄진 회랑은 아주 복잡한 리듬으로 사방을 나누면서 원주의 숲을 만들고 있다. 정원의 구성은 직교하는 수로를 주축으로 하는 페르시안적 성격을 가지고 12마리 사자가 수반을 떠받치고 있어 주위의 방을 시원하게 하고 있다. 물은 실내 바닥에서 솟아나고 가느다란 수로를 흘러내려서 많은 계단을 내려와 중정을 통해 중앙의 우물로 돌아오면 다시 사자의 입에서 전방으로 물을 내 뿜도록 되어 있다. 12마리의 사자는 비잔틴에서 가져온 것으로, 이슬람권에서 보이는 사자 조각상에서는 세 가지 의미를 찾아볼 수 있는데, 하나는 실제적인 장식물이고, 다음은 군주의 권세와 전승의 상징이며, 마지막으로는 보다 고상한 차원에서 11세기 유태 신 이븐 가비롤이 솔로몬을 칭송해서 노래한 화려한 장식의 재현으로 볼 수 있다.
다라쿠사 정원은 왕실 거주와 함게 16세기 전면 개축이 있었고, 그 의장이 옛날의 무어 건축경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어 진전한 고건축은 아니다. 본래 그곳은 궁전 내의 거주구역이었거나 후궁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되기도 한다. 인접한 격차장의 정원은 1654년에 착공되었는데 그 감각은 무어풍이다. 바닥은 작은 돌의 모자이크로 깔려 있고 중앙에는 네 귀퉁이가 삼나무로 둘러쳐진 조금 높은 분천이 놓여 있다. 이 소 중정에서는 주랑을 통해 다라쿠사 정원으로 나오는데 이 주랑은 클로이스터 회랑과 같은 정원을 둘러싸고 있다. 이곳에 특이한 것은 카를로스 5세에 의해 메스알에서 운반되어온 수반을 이용한 아름다운 우물이다.
알함브라 궁정 안의 공간구성은 이슬람과 관련되어 다양한 구성을 하고 있다. 정돈된 로마와는 다르게 대칭적으로 장엄한 분위기는 무슬림에게는 알라신을 불쾌하게 하고 건방지게 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간형태는 시각적인 것보다는 마음 속으로 느껴지며 천인화의 중정과 사자의 중정 홀의 두 대비되는 형태를 보면서 전체가 분명히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공간 자체는 수학적으로 비례가 맞으며 인간 척도가 고려되었으며 원칙에 있어서는 상상적으로 제한되지 않았다.
헤네랄리페의 정원은 노단으로 된 정원과 그 정원을 내려다 볼 수 있게 처리된 기법이나 캐스케이드 등이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별장정원에 영향을 주었으나 이탈리아 정원에서와 같은 강한 축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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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10.21
  • 저작시기2013.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86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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