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놀이와 놀이문화] 전통놀이 - 놀이, 놀이의 개념, 호모 루덴스, 각 시대별 놀이, 놀이의 종류 및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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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민속놀이와 놀이문화] 전통놀이 - 놀이, 놀이의 개념, 호모 루덴스, 각 시대별 놀이, 놀이의 종류 및 의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놀이의 개념

2. 호모 루덴스

3. 각 시대별 놀이
 1) 제천의식놀이 시대
 2) 국중대회 놀이 시대
 3) 산대잡희 놀이시대
 4) 놀이의 계층화 시대
 5) 놀이 통제의 시대
 6) 놀이 탄압의 시대
 7) 놀이 상품화 시대

4. 놀이의 종류 및 의미
 1) 투호
 2) 고누
 3) 비석치기
 4) 다리 밟기
 5) 강강수월래
 6) 줄다리기
 7) 격구

참고문헌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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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강술래의 성(性)적 의미
강강술래의 기본구조는 원에 있는데 이것은 여자의 자궁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것의 근거로는 무엇보다도 이들이 연행되는 시간이 밤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 놀이에 여성만이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연행되는 시기가 모두 보름과 관련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 놀이의 기본 형태가 원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 이유는 이것이 보름달과 관련된 풍요 상징의 기원 행위로 볼 수 있으나 그런 추상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보기는 어렵고 원이라는 것은 여성기를 상징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놀이에서는 여성만이 참여하는데 이것은 신에 대한 공양 의례를 육체로 대신한다는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동시에 그것은 여성의 생산을 촉진시킬 수 있도록 달의 정기를 많이 받고자 하는 의도로 벌어지는 주술적 놀이라고도 할 수 있다.
6) 줄다리기
줄다리기는 지방에 따라서 주로 5월 단오, 8월 한가위 등의 명절날 혹은 그에 관계없이 수시로 놀았지만 대부분의 지방에서는 주로 정월 대보름날에 성행되어 왔다. 줄다리기는 줄의 형태에 따라 ‘외줄다리기’, ‘쌍줄다리기’로 나눌 수가 있다. 외줄다리기는 줄 하나를 가지고 그 중심부를 경계로 하여 양편으로 갈라 잡아당기는 줄다리기를 말하고, 쌍줄다리기는 ‘암줄’, ‘숫줄’이란 두줄이 있어서 이 두줄의 머리 즉 ‘숫줄’을 ‘암줄’의 머리에다 집어넣어 비녀목으로 연결하고 잡아당기는 줄다리기를 말한다.
일반적인 속신으로는 여자편이 이겨야 풍년 내지는 풍어가 된다하여 반드시 여자편이 이기게끔 되어 있다. 만약 여자편이 불리할 경우에는 여자들이 산에 올라가 솔잎을 따다가 묶어 가지고 남자들의 손등을 찌르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손등에 피가 나기도 하고 또 견디지 못한 사람은 줄을 놓아 버려 결국은 여자쪽이 이기게끔 되어 있다.
※ 줄다리기의 성(性적) 의미
줄다리기는 성행위 의식으로 양편이 각기 길고 거대한 줄을 만들어 암줄의 큰 고리 속에 작은 수줄의 고리를 넣은 뒤 비녀목을 꽂아 빠지지 않게 한다. 이때 양편으로 나누어 동부는 남자편, 서부는 여자편이 된다. 또한 줄다리기의 남녀 대결에서는 여자 쪽이 이겨야 농사의 풍년이 든다는 속신이 있다. 여성의 우위 상징으로 끝나야 풍년이 들 수 있다는 사실은 여성의 생산 기능이 남성에 비해 강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줄다리기도 농경지의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는 원시적인 성행위가 변형, 전승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이러한 행위가 줄다리기와 병행해서 전승되었음을 고려한다면 줄다리기는 집단적이지만, 직접적인 성행위는 개인적인 풍요 기원 의례라는 차별성을 갖고 전승되었다고 하겠다. 그러한 이유로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① 암수의 연결은 한 지역을 중심으로 모은 짚을 바탕으로 남녀관계에 그 마음 사람들 전체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남녀의 결합은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정해놓고 있는 대상물을 연결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 연결 대상을 알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혼인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② 행위가 이루어지는 시간대가 밤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동물적인 암수의 결합행위이기보다는 사람들의 밤 행위에 걸맞게 놀이를 전개시킨 마을 사람들의 인식 태도에 따른 결과로 생각된다.
③ 줄을 끌고 당기는 행위 표현이 사실은 인간의 성행위를 모방한 것이라는 점이다. 줄을 통한 성행위는 줄다리기에 참가한 모든 사람이 성행위에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암시한다.
결국 줄다리기의 행위는 남녀의 성행위를 근간으로 하는 것이며 그러한 행위를 통해 풍성한 결실을 얻고자 기원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줄다리기의 원형적인 기초는 그러한 점에서 실제적인 성행위에서 출발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7) 격구
타구(打球)·포구(抛毬)라고도 한다. 격구는 BC 500년에 페르시아에서 행한 기록이 있다. 이후 티베트·중국을 거쳐 한국과 일본에 전해졌다. 19세기 중반 영국인이 인도에서 이 경기를 보고, 규칙을 개정하여 만든 경기가 폴로(polo)이다. 채의 길이는 1m, 공은 나무를 둥글게 깎아 붉은 옻을 입힌 것으로 수놓은 비단으로 싸기도 한다. 경기방식에는 3가지가 있다. 첫째는 구문(球門)을 경기장 양쪽에 세우고 양편에서 서로 공을 마주 쳐 넘기는 방법이다. 둘째는 문을 하나만 세우는 방법이다. 2개의 기둥 사이의 윗부분 가운데 구멍을 뚫은 널판지를 가로지르고, 아래에는 그물을 쳐서 이 구멍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공은 그물에 걸려 되돌아 나온다. 공이 구멍을 빠져나갈 때마다 1점을 얻는다. 셋째는 경기장 한 끝에 문을 세우고 다른 한쪽 끝에서 출발하여 일정한 순서에 따라 공을 치면서 되돌아 나오는 방법이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때에 성행했으며, 왕족들도 즐긴 경기였다. 우리나라에는 937년(고려 태조 1) 격구장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주로 단오절에 궁중행사로 시합을 열었으며, 의종 때는 여성팀도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태조와 정종이 격구를 즐겼으며, 세종은 "격구를 잘하는 사람이라야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할 수 있다"고 하여 1425년(세종 7) 무예연습의 필수과목으로 삼았다. 〈경국대전〉에는 무과의 시취과목으로 수록되었다. 중요한 군사행사 때도 격구를 시행했다. 이때 경기방식은 경기자들이 출마표(出馬表)에서 격구봉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가, 기녀(妓女)가 노래하고 춤추면서 구장 한복판으로 공을 던지면 양쪽 경기자들이 달려들어 공을 구문 밖으로 쳐내는데, 공을 밖으로 쳐낸 횟수가 많은 편이 이긴다. 말을 타지 않고 하는 격구도 있었는데, 민간에서 유행한 장치기는 격구의 변형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중기 이후 격구는 쇠퇴했다. 정조는 격구를 이십사반 무예의 하나로 선정하여 〈무예도보통지 武藝圖譜通志〉를 만들면서 격구보를 수록했다. 그러나 당시 이를 위해 격구법을 잘 아는 자를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고 한다.
참고문헌
김광언 저, 민속놀이, 대원사 2006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저, 민속놀이 관련 자료집, 민속원 2011
김선풍 저, 민속놀이와 민중의식, 집문당 1996
심우성 저, 우리나라 민속놀이, 동문선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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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6.28
  • 저작시기2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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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26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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