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와 이단의 역사 _ 이용도의 신비주의(이용도의 신비주의에 관한 최근의 논의들, 이용도의 역사인식, 이용도의 생애 신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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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비주의와 이단의 역사 _ 이용도의 신비주의(이용도의 신비주의에 관한 최근의 논의들, 이용도의 역사인식, 이용도의 생애 신비주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이용도의 신비주의에 관한 최근의 논의들

2. 이용도의 역사인식

3. 이용도의 성애(聖愛) 신비주의

본문내용

였다.
주는 나의 신랑! 나는 신부, 주여 침방에서 사귀이는 사랑의 사귀임의 때를
허락하소서 지금은 나의 신방에 잡인의 출입이 잦아서 주님과 고요히
사귀였을 사랑과 진리를 얻지 못하였나니 나의 영은 무한히
피로하오이다.
그리스도 예수를 온전히 본받아 따르는 것은 곧 그와의 완전한 합일을 이루는 것이었다.
거룩하신 당신의 손이 나를 만지시오매 나의 조그마한 가슴은 기쁨에
도(度)를 잃어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소리를 발하옵니다. 나의 영원히 나의
몸을 깨끗이 하기를 힘쓰오리다. 당신의 손이 나의 온 몸을 만지실 것을
아오매.... 모든 노리개는 우리가 합하는데 방해가 됩니다. 그런 것들이
당신과 나와의 사이를 막을 것이오 그 쩔렁거리는 소리에 당신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안 들릴 것이외다.
이는 곧 민경배가 지적한 것처럼 그리스도에 대한 애모나 자신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성례적 신비로 이용도에게 체험되었다. “그대는 예수에게 미쳐... 그를 먹고 그를 마시며 마침내 現世의 사람은 아닐네라.” 이 ‘성례적 신비주의’가 그에게서 일관된 경건으로 극치를 이룬다고 민경배는 해석하고있다.
이용도에게 체험되는 성례적 합일은 다시 보다 완전한 신적 합일을 그로 하여금 주장하게 한다.
내 살과 내 피를 마신 후에야 내가 어디로부터 왔었는지 너희가 알리라.
나를 땅위에 보내신 자는 오직 내 아버지이심으로 그때에야 너희가
알지니라. 오- 나는 다 이루었다. 어서 이 날이 와지이다 이는 나의
피가 땅에 떨어지는 그 거룩한 골고다의 날일지로다.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적 실체는 여기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합일을 통해 이용도에게는 완전히 내면화, 심령화 되었다. 이는 마치 오리겐의 하나님의 형상론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례적 합일을 넘어 신성화(divinization)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이제 마지막 네 번째로 이용도는 그리스도 예수와의 신비한 합일을 통해 체험한 ‘무차별적 사랑’을 증거하고자 한다.
나의 신앙태도에 다소간 다른 점이 있다는 H는 고사하고 도적이나 음부나
살인강도라 하더라도 그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다가 죽기를 원하고 힘쓰는
자입니다. 만일 여러분 보시기에 양해 못할 점이 있든가 용인 못할 것이
있거든 버리든가 내쫓든가 하십시오. 나는- 나의 원하는 바는 세상이
버린 사람, 세상에서 쫓겨나거나 몰리워 가는 사람을 받아 그를 거두어
손을 잡고 울며 살려고 합니다. 내쫓는 것은 당신들의 자유요 임무일는지
모르거니와 나는 쫓기우는 자를 거두어 그들과 함께 우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피터스에 따르면 이용도가 추구하는 최고의 미덕은 겸손(humility)이라고 한다. "나는 창기에게도 배움이 있는 자요, 난봉에게서나 아이에게서나 무식한 자에게서나 불교인에게서나 무교회주의자에게서나- 누구에게서든지 다 배울 바를 찾는 자이외다.“ 그는 분명히 고백한다. ”오- 주여 나는 無요 空이로소이다.“ 이제 더 이상 이용도는 살아있지 않고 그의 안에 있는 예수가 그로 잃어버린 자들을 사랑하게 하시는 것이다. 마치 새와 나무와 돌과도 대화와 사랑을 나누었다는 프란시스(Francis of Assis)처럼 그의 사랑은 그 어떤 것으로도 제한되어질 수 없었다.
내 속에 계신 주님은 또 각인의 심중에 계신 주님이었나이다.... 구름 속에도
당나귀 속에도 내재하셨나이다. 나는 그 때 그 당나귀가 내 앞에 나타나
나를 책망하고 나를 권고한다면 물론 나는 그 앞에 엎드려 『오 주여! 나를
가르치시옵소서』하겠나이다.
그의 사랑은 거기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용도의 사랑은 생명의 원수되는 그자신의 죽음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 형님을 포함한 가까인 지인들을 불러모아 다음과 같은 고백을 남겼다.
내 눈을 보십시오. 죽는 눈이 이런 것을 보았습니까 사람이 영생한다는데
모두들 죽는 이야기들만 하니 이 무슨 어리석은 생각들입니까? 영생을
믿으시고 죽는다는 말은 그만둡시다.
“죽는다는 말은 그만둡시다.” 죽음까지 삼켜버린 사랑 그것이 이용도가 추구했던 사랑, 무차별적 사랑의 모습이었다. 사랑이야말로 이용도에게 있어 가장 신비로운 신비였다. 결코 세상이 알 수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사랑, 바로 그 사랑의 신비가 또한 이용도를 올무와 이단시비의 한 가운데로 끌어들였다는 아이러니에 그를 향한 연민의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것이 또한 오늘 한국교회가 직면한 사랑의 결핍과 오용사이에서의 고민의 현주소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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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9.22
  • 저작시기2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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