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회사 연구페이퍼』 - 이용도의 생애와 신학 사상, 시대적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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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감리교회사 연구페이퍼』 - 이용도의 생애와 신학 사상, 시대적 상황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시대적 상황

2. 이용도 생애

3. 이용도 사상

4. 결론 및 느낀 점

5. 참고문헌

본문내용

회에 위협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에 이상할 것이 없었다. 당시 기성교회는 건물이 교회요, 직분은 곧 교회 내의 계급으로 여겨졌기에 세속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용도는 그 자신이 무교회주의자로 불리게 될 한 설교를 토해내었다. “벽돌로 담을 쌓고 울긋불긋 장식을 해놓은 것이 이것이 교회가 아니에요. 이 예배당을 다 불 질러 버리고 잿더미 위에서라도 몸과 마음을 아주 바쳐 참된 예배를 드려야 그것이 교회올시다.” 傳記 p.78
이 설교는 분명 요한복음 4:24의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즉 성령께 참된 예배를 드리는 그곳이 바로 교회라고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만큼 성령을 모든 것의 동기요 주체라 본 것이다. 바로 이러한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와 닮아가게 해 준다.
반대로 그는 이러한 성령이 없어 예수를 닮아 살아가지 않는 직업적 목사들과 부흥사들 그리고 선교사들에게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다. “어찌하여 교회에서 네가 왕노릇하려고 하며, 가정에서 네가 왕노릇하려고 하며 너를 네가 주관하려고 하느냐, 다만 예수가 있을 따름이니라” 日記 1927.12.13
“위험이나 고생을 두려워하면 목사될 자격이 없다. 교회가 잘 안 되는 것은 목사가 평안을 취하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목사가 군병같이 고생을 참고 나가면 그 교회는 승리한다.” 日記 1929.9.7
또한 그는 고(苦),빈(貧),비(卑)를 본받을 덕목으로 여겼다. 고는 나의 선생, 비는 나의 애처, 비는 나의 궁전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는 예수처럼 고난 받으며 함께 가난에 처하며 함께 비천한 자리에 있기를 결심하였다. 이러한 덕목이 곧 예수를 닮아가는 삶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용도는 회개, 기도, 사랑을 선포했다. 복음서에서 볼 수 있듯 이 땅에 오신 예수의 모습은 항상 기도로 하나님과 함께 했고, 회개를 선포하였고 사랑을 선포했다.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마 14:23),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 4:17),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 12:30~31). 이처럼 이용도는 예수를 자신의 전인간적 모델로 삼고 그분이 하셨던 것처럼 회개, 기도, 사랑을 강조했다.
이용도의 설교의 가장 먼저는 역시 회개였다. “신조에, 조직에, 언론에, 그 무엇의 선구자보다 회개 운동의 선구자가 조선에는 필요하다. 갱생을 초래하는 회개, 신생적 회개운동이 없이 다른 모든 운동은 의미가 없다.” 日記 1929.11.10
그 다음이 기도인데 그는 한국교회에 기도가 없음을 한탄하였다. “아, 조선의 교회는 장감을 막론하고 그 정지가 가련하였구나. 저희가 기도를 몰랐으니 어디 가서 신비한 은혜에 접할 기회가 있었으랴! 오 주여, 저희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日記 1931.11.13
또한 기도는 설교의 필수전제임을 언급하였다. “기도하고서 하는 설교는 익은 설교요, 기도 안 하고서 하는 강도(講道)는 날강도(强盜)니라” 日記 1930.1.23
마지막으로 사랑이다. 그는 사랑을 외쳤고 또 그렇게 살려고 항상 노력했고 그렇게 살다가 죽었다. 그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그대로 살려고 노력했다. 그의 이러한 사랑은 한준명 사건의 장본인 한준명을 끝까지 품고 묵묵하게 함께 이단 정죄를 받은 것에서 잘 드러난다. “나는 신앙 태도에 다소간 다른 점이 있다는 H는 고사하고 도적이나 음부나 살인강도라고 하더라도 그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다가 죽기를 원하고 힘쓰는 자입니다. 만일 여러분 보시기에 양해 못할 점이 있든가 용인 못할 것이 있거든 버리든가 내쫓든가 하십시오…내쫓는 것은 당신들의 자유요 임무일는지 모르거니와 나는 쫓기는 자를 거두어 그들과 함께 우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傳記 p.198
4. 결론 및 느낀 점
결론적으로 이용도는 기독교 신비주의자라기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악착같이 닮아가려고 했던 한 목회자였다. 그의 설교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와 같이 회개를 선포하였으며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또한 사랑의 사도 요한과 같이 사랑의 메시지를 전파하였다. 그러나 그의 메시지와 함께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하심은 그 당시 기성교회가 받아들이기에 너무 시대를 앞서 나간 것 같이 느껴졌으며 위협적이게 느껴졌다. 결국 그는 장로회로부터 이단 정죄를 받고 감리교 목사 휴직처분을 받아 쓸쓸하게 원산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와 함께 했던 다른 이들은 예수교회를 창설하였고 독립하게 되었다. 예수님을 닮아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이용도는 결국 예수님과 같이 고난의 삶을 살다가 예수님의 향년과 같이 33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가 소망했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이 이루어진 것이다. 나 또한 이용도 목사의 행보와 일기를 조사하고 나서 내 영혼이 공명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내 모습은 너무나 초라하여 마음만 굴뚝같을 뿐 육신이 허약하고 행동은 돌같이 무거움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떳떳하게 그리스도를 전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 한심스럽고 주님께 죄송하여 어느 벤치에 앉아 마음으로 심곡(深哭)하였다. ‘나는 안 되는 사람인가보다. 나는 주님보시기에 수없이 많은 기회를 놓치는 기준 미달자인가보다. 주님께서 날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 두렵고 민망하고 죄송하다.’
5. 참고문헌
유동식, 『한국감리교회의 역사 I』, KMC, 2005
류금주, 『이용도의 신비주의와 한국 교회』, 대한기독교서회, 2005
이용도 신앙과 사상연구회, 『이용도목사의 영성과 예수운동』, 성서연구사, 1998
변종호, 『이용도목사전집』, 장안문화, 2004
송길섭, 『일제하 감리교회 삼대성좌』, 성광문화사, 1982
이용도, 『한국 기독교 지도자 강단설교』, 홍성사, 2009
이용도 목사 탄신 100주년 기념 편집위원회, 『이용도의 생애·신학·영성』, 한들출판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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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6.17
  • 저작시기2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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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23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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