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땅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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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성서의 땅 개관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성서의 땅 개관



1. 지리
1.1. 성서의 땅?
1.2. 이걸 왜 배워!
1.3. 팔레스타인
1.3.1. 자연적으로 형성된 교통로
1.3.2. 주요 국제 교통로
1.4. 남부 지방
1.4.1. 유다 구릉지대
1.4.2. 셰펠라
1.4.3. 블레셋 해안 평야
1.4.4. 네게브 (네겝)
1.4.5. 유다광야
1.4.6. 사해
1.5. 중부지방
1.5.1. 에브라임 산지
1.5.2. 므낫세 산지
1.5.3.샤론평야
1.5.4.갈멜산
1.5.5.요르단 골짜기
1.6. 북부지방
1.6.1. 이스르엘 골짜기
1.6.2. 갈릴리 저지
1.6.3. 갈릴리 고지
1.6.4.갈릴리 바다
1.6.5.훌레분지
1.7. 동부지방 (트랜스 요르단)
1.7.1. 바산
1.7.2. 길르앗 저지
1.7.3.길르앗 돔
1.7.4.암몬
1.7.5.모압
1.7.6.에돔
1.8. 세로방향의 지형대로 구분

2. 기후
2.1. 팔레스타인의 전체적인 기후
2.2 건기와 우기
2.3. 강우량
2.4 이스라엘 연평균 월별 기온
2.5. 해안 평야지대의 기후 지역
2.6. 갈멜산을 포함한 중앙 산악지대의 기후 지역
2.7. 요단 계곡지대의 기후 지역
2.8. 요르단 고원(트랜스요르단) 지대의 기후 지역

3. 역사
3.1 족장 시대
3.1.1. 족장시대란?
3.1.2. 족장 시대 당시 주변 정세
3.2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 사사시대
3.2.1. 출애굽, 15세기? or 13세기?
3.2.2. 가나안 정복
3.2.3. 사사 시대: 지파 동맹
3.3. 통일 왕국 시대
3.3.1 왕정 초기
3.3.2 이스라엘 왕국의 최 전성기, 다윗(B.C 1000~961년경)
3.3.3. 솔로몬, 이스라엘의 경제적인 발전(B.C 961~922)
3.3.4. 당시의 국제 정세: 강대국의 약세 속에 커져가는 팔레스타인의 국가들
3.4. 분열 왕국 시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
3.4.1. 북 이스라엘 왕국(B.C 922~722)
3.4.2. 남 유다 왕국(B.C 922~586)
3.4.3. 분열 왕국 당시의 정세: 시삭 중심의 이집트, 앗시리아, 바빌로니아의 강한 세력
3.5. 포로기와 하스모네오 왕조 그리고 그 이후......
3.5.1. 바빌로니아 포로기, 이후 예루살렘으로의 귀환
3.5.2. 헬라화 정책과의 투쟁, 마카베오 혁명과 하스모네오 왕조
3.5.3. 로마 점령 시대(B.C 63~AD 66)
3.5.4. 유대인의 저항, 비극적인 결말(66~74)

본문내용

침략을 막지 못하고 장악당하고 만다.
3.5. 포로기와 하스모네오 왕조 그리고 그 이후......
3.5.1. 바빌로니아 포로기, 이후 예루살렘으로의 귀환
바빌로니아 포로기는 B.C 597년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여호야긴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간 것으로 시작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구약 성서의 에스겔서의 배경이 바로 1차 포로 시대에서 온다. 그리고 B.C 586년 예루살렘이 함락된 이후 남유다는 바빌로니아의 속주가 되었고 예루살렘 성 사람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된다.
하지만 바빌로니아가 페르시아의 키루스 1세(고레스)에 의해 점령당하게 되면서 바빌로니아의 포로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키루스 1세는 바빌로니아 포로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것을 허용하였으며 이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공동체는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하여 성전 재건에 착수하였고 결국 성전 재건을 이루어 내었다.
3.5.2. 헬라화 정책과의 투쟁, 마카베오 혁명과 하스모네오 왕조
예루살렘으로의 귀환 이후, 유다 공동체는 페르시아를 무너뜨리고 새로 들어온 헬레니즘 제국 이 헬레니즘 제국은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이후 갈라진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를 말한다.
이 팔레스타인을 장악한 이후부터 위기에 봉착한다. 헬레니즘 제국의 헬라화 정책을 따르지 않는 유다 공동체에 대한 안티오코스의 간섭과 탄압이 심해지자, 이들 공동체는 유다 마카베오를 중심으로 하여 헬레니즘 제국의 헬라화 정책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는 B.C 167년 예루살렘에서 대대적인 학살을 자행한 뒤 유대교 금령을 내렸다. 안티오코스는 안식일과 절기를 지키는 것을 금지시키고 율법을 파기했으며 이교 제단을 세우고 유대인들이 금기시하던 돼지고기를 먹을 것을 강요하였다.
에 대항하기 시작하였다. 유대인 폭동을 일으켰던 제사장 맛다디아의 아들이었던 유다 마카베오는 군대를 집결하여 B.C 164년 리시아스 군과 전쟁을 하였고 벧술 전투에서 그들의 군대를 격파하고 성전을 다시 정화 하였다. 그 후 이들의 독립 투쟁은 성공하였고 결국 이들 혁명 세력을 중심으로 하스모네오 왕조가 성립되었다. 하스모네오 왕조는 로마와 헤롯 왕가의 지배를 받기 전까지 유다를 통치 하였는데, 대표적인 왕으로는 히르카누스 왕을 들 수 있다. 히르카누스 왕은 에돔을 점령하고 유대를 복속시키고 사마리아를 점령하여 종교적인 통일을 시도하였다.
그 후 하스모네오 왕조는 아리스토불루스 1세가 죽은 이후 내부적으로 혼란이 일어났고, 결국 B.C 163년 로마의 폼페이우스가 아리스토불루스 2세의 군대를 격파하고 유다 전체를 장악함으로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된다.
3.5.3. 로마 점령 시대(B.C 63~AD 66)
AD 63년 소아시아와 시리아를 정복하던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는 B.C 63년 유대에 진입하였고, 그곳에서 저항하던 아리스토불루스 2세의 세력을 제압하고 유대를 점령했다. 그는 유대의 영토를 유대와 이두매로 축소시키고 데가볼리를 헬라 도시로 독립시켰다. 그리고 히르카누스 2세를 분봉왕으로 임명하였다. 대제사장이자 분봉왕이었던 히르카누스 2세는 실제로 허수아비 왕에 불과했으며, 실세는 에돔 출신의 안티파테르가 쥐고 있었다,
이후 아리스토불루스 2세의 아들인 안티고노스(B.C 40~AD 37)가 파르티아의 침범을 이용하여 왕위를 찬탈하였지만, 로마 원로원에게서 ‘유대인의 왕’이라는 칭호를 얻은 헤롯이 안토니우스의 도움으로 갈릴리를 정복한 뒤 B.C 37년에 예루살렘을 정복하였다. 그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전 건축을 포함하여 여러 번의 건축 사업을 실시하였는데, 그가 건설한 성전은 웅장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하였다.
헤롯 대왕이 죽은 이후 유대는 그의 아들들에 의해 분할 통치되었다. 헤롯 아켈라우스는 유대, 사마리아, 이두매를 통치하였으나 민중들의 원성이 높아 늘 탄원과 폭동이 잦았었다. 결국 로마는 그를 갈리아 지방으로 추방시키고 그가 다스리던 곳은 로마가 파견한 총독이 다스리도록 하였다. 로마의 총독은 처음엔 군사적 지휘만을 담당하였지만 후에는 재정적인 부분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헤롯의 다른 아들인 헤롯 안티파스는 갈릴리와 베뢰아를 통치하였는데, 무능하고 분란만 일으키던 아켈라우스와는 달리 안티파스는 사분봉왕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었다고 한다. 복음서에서 동생의 아내와 결혼한 자신을 공격한 세례 요한을 가두고 딸의 요구에 따라 그를 처형한 왕이 바로 헤롯 안티파스이다. 안티파스 왕은 세례 요한을 처형한 이후 민중들의 지지를 잃게 되었고 결국 나바티아의 아레타스 4세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였다고 한다.
AD 37년 칼리굴라가 로마의 황제가 된 이후 유대는 헤롯 아그립바가 나머지 분봉왕들의 영토를 모두 다스리게 되면서 이전에 헤롯 대왕이 다스리던 영토를 통치하게 되었다. 그에 이어 아들인 아그립바 2세는 아버지의 땅 일부만 통치했지만 대제사장 임명권과 성전 업무 감독권을 장악하면서 유대에 대한 전문가로 인정을 받았다. AD 92년 아그립바 2세가 죽은 이후 헤롯 가문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3.5.4. 유대인의 저항, 비극적인 결말(66~74)
유대인의 전쟁은 가이사랴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서 일어난 갈등이 촉발되어 일어난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아그립바 2세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중재를 시도했지만 이미 예루살렘은 열심당을 주축으로 하는 반군이 장악한 뒤였다. 68년 시리아의 총독 갈루스가 유대에 원정을 감행하다 퇴각하는 일이 벌어지자, 이를 계기로 유대의 지배계층이 전쟁에 참여하여 민회가 재구성되었고 대제사장들과 귀족들이 전쟁을 지휘하였다.
69년 베스파시아누스가 황제로 등극한 이후, 그의 아들 티투스가 유대와의 전쟁을 이어받아 70년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을 파괴하였다. 이후 74년까지 마사다 요새에서 최후의 저항을 하였지만 결국 버티지 못하고 함락되면서 이들의 전쟁은 끝이 났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이후 유대 지역의 주민들을 내쫓고 그 지역을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으로 바꾸면서 유대인의 나라는 1948년 이스라엘 공화국이 성립될 때까지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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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3.15
  • 저작시기2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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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49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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