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네 네스(Arne Naess)의 ‘심층생태론(Deep Ecology)’에 대해 상술하시오. - 심층생태론의 개요와 이해, 비판과 평가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아르네 네스(Arne Naess)의 ‘심층생태론(Deep Ecology)’에 대해 상술하시오. - 심층생태론의 개요와 이해, 비판과 평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아르네 네스의 ‘심층생태론(Deep Ecology)'에 대해 상술하시오.

Ⅰ. 들어가며

Ⅱ. 심층생태론(Deep Ecology)의 개요

Ⅲ. 심층생태론에 대한 이해

Ⅳ. 심층생태론(Deep Ecology)에 대한 비판과 평가

Ⅴ. 맺으며

※ 참고 문헌

본문내용

편, 심층생태론은 자연주의에 기초하여 가치의 문제를 전개하고 있다. 즉 자연적인 역사의 진보가 가치있는 것이라면, 인간이 지구에 대해서 ‘상처’를 입히고, 또 어떤 것에 대해서 과도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인간이 자연적인 힘을 따르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지구와 행성의 주기적인 변화와 파괴 사건들은 그것이 비록 현재 존재하고 있는 대부분의 생명체들을 소멸시킨다고 할지라도 모두 자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옳은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사건 자체가 레오폴드의 지적처럼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적응력이 뛰어난 새로운 “생물 공동체의 아름다움과 안정성 그리고 통합성을 보전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것이다. 우리는 생명중심적 또는 생태중심적 관점으로부터 우리의 죽음이란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며, 오히려 우리의 죽음이 동시에 이에 견줄만한 더 나은 발전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는 것을 의심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심층생태론은 그 근본 원리가 되는 궁극적 전제에서 보여주듯이 반문명적 반문화적 경향이 있으며, 이에 따라 비과학기술적 문화와 같은 오래된 지혜로 되돌아갈 것을 요청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종교적이거나 정령숭배 그리고 자연숭배적 전통은 전체적으로 인간이 자연 세계를 이루고 있는 공동체의 평범한 구성원이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찬양할만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원시적 소박함의 전통이 자연세계와의 조화로운 관계를 촉진시켜준다고 할지라도 이것이 반드시 찬양되어야 할 것은 아니다. 모든 과학기술과 인간중심주의가 병적일 정도로 파괴적이지 않듯이, 그렇다고 모든 원시적 전통이 정신적인 감정이입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멕시코 중부의 아즈텍인들이 바쳤던 대규모의 인간제물은 병적이지만 그들의 관점에서는 매일매일의 순환을 위해서 절대적인 것이었다. 삶의 지혜가 더 이상 원시 문화의 특권이 될 수 없듯이 인간의 자연에 대한 간섭이 반드시 생태위기의 반영웅인 것만 아니다. 현재와 같은 생태위기에 대한 대안으로서 다른 문화의 가치와 신념을 단순히 이식하려는 시도나 감상적인 사유는 문제의 본질을 오히려 왜곡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심층생태론자들처럼 자연에 대해서 제식 또는 성례(聖禮)의 부활을 시도하려는 경향이 비판적 검토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유들 중의 하나는 그것이 근대 데카르트적인 이분법적 유산을 반대하는데 그럴듯하게 보이기 때문인 측면도 있는 것 같다. 관점에 따라서 자연을 정신적인 것으로서 해석하려는 것은 오히려 데카르트적인 이분법을 비판하기 위해서 또 다시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이분법을 수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자연을 정신적 실체로 간주하여 이것만이 본래적 가치를 가진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비인간중심적인 가치로 전환하자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거부할 필요가 있는 것은 데카르트의 실체에 대한 가정과 함께 비인간중심적인 가치에 기초하여 세속적인 대안을 전개하려는 것이다. 오히려 과학적 탐구가 원시적인 자연에 대한 성례보다 우리에게 자연 세계와의 상호의존성과 통일성에 관한 경이로운 개념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정령숭배적 또는 범신론적인 전통 이나 세계관이 심오하고 풍부하다고 주장하거나 아니면 자연에 대해서 조작적인 태도를 조장하지 않으면서도 원래 상태의 통합성을 드러낸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이보다는 공정하고 신중하며 적절한 과학적 탐구가 우리 세계에 대한 더욱 풍요롭고 긍정적인 개념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심층생태론처럼 상상력의 부분을 현학성으로 대치할 것이 아니라 과학의 도움으로 지적 정합성을 갖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Ⅴ. 맺으며
생태학자들은 지구상의 생명 지원체계에 돌이킬 수 없는 혼란이 20세기말에 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소련과 미국에서 연이어 터진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동서 양진영에 생태론적 종말론의 그림자를 드리웠고, 환경에 대한 관심은 냉전 종결 뒤인 92년의 리우회의에서 절정을 이뤘다. 오존층 파괴, 삼림 파괴, 공기와 수질의 오염 등 과학자들이 보고하는 지구 환경의 악화는 근래의 생태론적 조바심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근본적 생태론이 과학 기술에 대한 적의와 근대 이전 농경사회 공동체에 대한 동경이라는 낭만주의적 에토스 안에 다소 거친 반인간주의, 반합리주의, 신비주의를 간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바람직한 것은 과학 기술을 적절히 제어하는 것이지, 그것을 기피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법치주의도 시장 경제도 확립되어 있지 않았고 굶어죽기가 예사였던목가적(牧歌的)중세로 돌아가는 것은 가능하지도, 정당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생태론자들은 기술체계라는 것이 권력의 중앙집중과 밀접히 관련돼 있어서 그것이 참된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고 말한다. 부분적으로는 옳은 말일 것이다. 그러나 에코토피아 역시 생태계에 대한 엄격한 관리와 규제를 전제할 수밖에 없고, 그런 엄격한 관리와 규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집중화한 중앙권력이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생태주의는 21세기 철학의 핵심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생태주의의 철학적 변용으로서 생태철학은 아직 당위론에 머물고 있다. 철학으로서 총체성을 얻기 위한 방법론은 모색단계다. 우리의 삶은 여전히 생태적 합리성을 배반하는 파괴적 문명에 뿌리를 둔 채 생태철학과 현실은 물과 기름처럼 겉돌고 있다. 철학의 고민은 계속된다. 아직 우리는 희망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 참고 문헌
<문학비평론>, 이성진 지음, 한국방송대 출판문화원, 2012년
<심층생태주의의 유기론적 시학>, 김동명 지음, 국학자료원, 2013년
<심층생태론과 생태적 욕망에 대한 연구>, 박준건 지음, 대한철학회
<심층생태론과 신 중심적 생태적 세계관>, 조현철 지음, 서강대 신학연구소
<심층생태학과 생물평등 및 자아실현으로서의 환경정의>, 최병두 지음, 한국공간환경학회
<생태철학>, 이준모 지음, 문사철, 2012년
<생태철학과 환경윤리>, 구승회 지음, 동국대학교출판부, 2001년
<현대생태학[개정판]>, 김준호외 4인 지음, 교문사, 2007년. 끝.

추천자료

  • 가격2,000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15.06.28
  • 저작시기2015.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74947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