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주제 선정이유
· 존재 위백규
· 존재와 다산
· 존재 고택
· 참고자료
· 존재 위백규
· 존재와 다산
· 존재 고택
· 참고자료
본문내용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 : 1727~1798)
선생의 본관은 장흥이고 자는 자화(子華) 호는 존재(存齋) 또는 계항(桂巷)이다. 관산읍 방촌리에서 태어나 병계(屛溪)
윤봉구(尹鳳九)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865년(영조41년) 생원복시에 합격하였으나, 그 후 과장에 나가지 않았다.
1796년(정조20년) 위유사(慰諭使) 서영보(徐榮輔)의 추천으로 선생의 문집이 조정에 들어가게 되었고, 정조임금으로부터
옥과현감이 제수되자 봉직하게 되었으나, 선생의 뜻을 펴기는 너무 노약한 몸이라 자신의 경세사상을 “만언봉사(萬言封事)”에
담아 조정에 올리고 사직을 원했으나 허락되지 않고 오히려 장원서별제(掌苑薯別提)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노환으로 부임하지
못하고 71세에 세상을 떠났다.
선생의 본관은 장흥이고 자는 자화(子華) 호는 존재(存齋) 또는 계항(桂巷)이다. 관산읍 방촌리에서 태어나 병계(屛溪)
윤봉구(尹鳳九)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865년(영조41년) 생원복시에 합격하였으나, 그 후 과장에 나가지 않았다.
1796년(정조20년) 위유사(慰諭使) 서영보(徐榮輔)의 추천으로 선생의 문집이 조정에 들어가게 되었고, 정조임금으로부터
옥과현감이 제수되자 봉직하게 되었으나, 선생의 뜻을 펴기는 너무 노약한 몸이라 자신의 경세사상을 “만언봉사(萬言封事)”에
담아 조정에 올리고 사직을 원했으나 허락되지 않고 오히려 장원서별제(掌苑薯別提)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노환으로 부임하지
못하고 71세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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