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지리학자와 지리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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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지리학자와 지리사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목 차


제 1 장 중세 이전의 지리학

1.1 고대 지리학의 기원

1.2 고대 공식지리학의 출현


제 2 장 중세 유럽의 지리학

2.1 중세 암흑기의 지리학과 지리학의 새로운 발견


제 3 장 근대의 지리학

3.1 바레니우스와 칸트의 지리학

3.2 리터와 훔볼트의 지리사상과 비교

3.3 근대지리학의 정착 – 리히트호펜과 비달을 중심으로


제 4 장 현대의 지리학

4.1 하트숀과 셰퍼의 논쟁

4.2 인간주의 지리학과 실제


제 5 장 결 론


참 고 문 헌

본문내용

자유이며, 위협이다. 한편 장소란 정지이며, 개인들이 부여하는 가치의 안식처이자 안전과 애정을 느끼는 고요한 중심이다. 그는 실증주의적 지리학에서 놓쳐버린 풍부한 지리 영역을 인간주의적 관점에서 포착하여 서술하고 있다.
1970년대 지리학자들에게 인간주의의 가장 큰 매력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인간주의가 1950~1960년대에 출현한 논리실증주의적 전통을 비판하는 데 일련의 철학적 입장을 제시해 주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견고한 방법론적 그리고 경험적 연구 성과는 대단히 빈약하였다. 1960년대 공간과학이 방법론에 관심을 집중한 나머지 철학적 토대를 무시하였다면, 1970년대의 인간주의 지리학은 철학과의 연대에 집중하면서 방법론적 고찰을 부차적인 것으로 전락시켰다. 이러한 대조는 하버마스의 경험-분석적 과학과 역사-해석학적 과학에 대한 논의와 아주 유사하다. 경험-분석적 과학은 기술적 이해관계와 함께 작업을 통해 표현되고, 역사-해석학적 과학은 실천적 이해관계와 함께 언어라는 매체를 통해 발전한다는 것이었다. 포티어스가 주목한 것처럼, 대부분의 인간주의적 지리학자들에게는 여전히 그들 자신의 독특한 이론적 시스템을 강요하는 경향이 남아 있었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야 특정 철학적 전통에 강하게 얽매이지 않고 진정한 인간주의적 지리학을 창출하려는 적극적인 시도를 보여주는 논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한 초기 사례들을 레이와 사무엘스의 편집서인 『인간주의 지리학: 전망과 문제』에 실린 몇몇 논문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문학과 의미, 상징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사가 제시된 것은 포콕의 『인간주의 지리학과 문학』, 잭슨의 『의미의 지도』, 코스그로브와 다니엘의 『경관의 도해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논저들은 대부분 여전히 이론에 치우쳐 있었지만, 그들은 일차적으로 인간주의에 관한 서술보다는 인간주의 지리학의 서술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관심사는 역사지리학과 사회지리학 분야에서 일차적으로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인간주의적 영향은 사회 및 문화지리학에서는 개인적 경험, 의미, 그리고 장소의 해석을 보다 강조하게 되었다.
제 5 장 결 론
위에서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대표적인 지리학자와 그들의 지리사상을 통하여 지리학의 주요 패러다임을 알아보았다.
고대에서는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투스와 “과학적 지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라토스테네스를 통하여 헤로도투스의 지방지적 전통과 에라토스테네스의 수리천문학적 전통을 살펴보고, 로마시대에 이르러는 로마의 대표적인 학자 프톨레마이우스의 ‘지리학’과 ‘지역지’의 구분을 중심으로 고대 지리학의 주요 패러다임을 살펴보았다.
한편 초기의 중세는 다른 많은 과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지리학으로서도 침체 혹은 후퇴의 시대였다. 그러나 15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러 지리학은 그 어떤 학문보다 황금기를 구가했다. 이 시기에는 바레니우스와 칸트를 중심으로 일반지리학을 강조하였던 바레니우스와, 이론적 차원에서 지리학 발전에 보다 귀중한 영향을 미친 칸트의 지리사상을 연구해보았다.
지리학의 기본적인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지만, 이를 실행하지는 못한 칸트에 의해 남겨진 과제는 훔볼트와 리터라는 위대한 두 학자를 통해 알아보았는데, 이들의 기질과 성격, 지리사상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훔볼트와 리터는 지리학에 대하여 관찰된 사실에 의한 객관적 기술을 통해 과학적 접근방법을 택했다는 점과 두 학자 모두 경험적 분석과 비교학적 방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연구방법론을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방식에서 훔볼트는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한 반면, 리터는 자연을 신이 인간을 위해 설계한 것으로 보았다는 점과, 또한 훔볼트의 연구 분야는 자연지리와 통계적 연구에, 리터의 연구 분야는 인문지리와 지역연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차이점도 있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는 이른바 신 지리학(New Geography)이 등장하였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에서 지리가 독립적 위상을 점차 확보할 수 있게 되자, 이후 유럽 지리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지리학자들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위에서는 독일의 리히트호펜과 프랑스의 비달을 중심으로 알아보았다. 리히트호펜은 훔볼트와 리터의 핵심개념인 “지표면의 통일체”개념을 재생시키기 위해 노력하였고, 지역연구에 있어서 보다 밀접한 관계를 밝혀낼 수 있는 분석적 방법을 적용시키고자 했다. 비달의 지리사상은 생활양식(genre de vie)과 지역지리학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현대지리학에서 중점으로 살펴본 것은 하트숀과 셰퍼의 논쟁이었다. 현대지리학의 흐름에서 첨예하게 대립한 1950년대 초 하트숀과 셰퍼의 논쟁은 현대지리학의 문을 여는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또한 현대 지리학의 주요한 실증주의 지리학, 인간주의 지리학, 구조주의 지리학 중에서 ‘인간주의 지리학’을 중심으로 이를 추구한 지리학자와 사상, 나아가 인간주의 지리학의 실제를 알아보았다.
끝으로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학문의 한 영역으로서 지리학을 발전시킨 위대한 지리학자의 관심과 접근 방법에 대해 알아봄으로써 지리학에 대한 이해를 폭 넓힐 수 있었다. 지리학의 긴 역사를 짧은 시간동안 통찰해보고, 주요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른 지리학의 변천사를 연구해볼 수 있던 뜻 깊은 시간이었다. 많은 내용들 중 개인적인 관심에 따라 내용을 구성함으로써,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모든 지리학사의 내용을 다루지는 못하였지만, 앞으로 더욱 더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볼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참 고 문 헌
테즈카 아키라, 1991, 『근대지리학의 개척자들』, 정 암 옮김, 한울
권용우 외, 2001, 『지리학사』, 한울
권용우, 1980, 『근대지리학의 형성과정』, 한울
이희연, 1991, 『지리학사』, 법문사
노자와히데키, 2007, “지리학사·지리사상학사”,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지(구 지리환경교육), 제 15권 제 4호, pp385 ~390
참고 홈페이지
구글 홈페이지 (http://www.google.co.kr)
국토지리정보원 홈페이지 (http://ngii.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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