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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인민위원회는 미군정청과 협조적이었다. 그러나, 1947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마경관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치이는 일이 벌어져 이를 본 군중들은 기마경관에게 돌을 던지고 야유를 보내며 경찰서까지 쫓아갔다. 그런데 경찰이 이를 경찰서 습격으로 오해하여 시위대에게 총격을 해 6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상을 입게된다. 발포사건의 원인에 대해 모른 미군정 당국은 발포사건의 잘못을 시인하면서도 정당방위로 주장하고 사건을 ‘시위대에 의한 경찰서 습격사건’으로 규정하여 행사 간부와 학생들을 연행하였다.
3월 10일부터는 제주도청에서 민관 총파업이 시작하여, 제주도의 경찰 및 사법기관을 제외한 행정기관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참여하였고 심지어는 제주도 경찰의 일부분도 참여하였다. 이에 경찰은 파업 관련자 검거에 나섰고 얼마 후 군중에 또 발포하는 사건이 일어나게된다.
사건의 시작
제주 4·3사건의 발단은 남한에서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10총선에 반대하기 위해 남로당 제주도당 골수당원 여러명이 무장을 하고 제주도 경찰지서를 급습하면서 시작되었다. 여기에 우익단체의 처결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반감, 공포가 더해져 유혈사태는 급속도로 제주도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이로인해 제
3월 10일부터는 제주도청에서 민관 총파업이 시작하여, 제주도의 경찰 및 사법기관을 제외한 행정기관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참여하였고 심지어는 제주도 경찰의 일부분도 참여하였다. 이에 경찰은 파업 관련자 검거에 나섰고 얼마 후 군중에 또 발포하는 사건이 일어나게된다.
사건의 시작
제주 4·3사건의 발단은 남한에서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10총선에 반대하기 위해 남로당 제주도당 골수당원 여러명이 무장을 하고 제주도 경찰지서를 급습하면서 시작되었다. 여기에 우익단체의 처결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반감, 공포가 더해져 유혈사태는 급속도로 제주도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이로인해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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