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Ⅱ. 무오사화의 배경
(1) 연산군(燕山君)과 사림파(士林派)
(2) 훈구파(勳舊派) 유자광(柳子光)과 사림파 김종직(金宗直)의 관계
(3) 훈구파 이극돈(李克墩)과
사림파 김일손(金馹孫)의 관계
Ⅲ. 조의제문(弔義帝文)으로 인한
무오사화
Ⅳ. 맺음말
Ⅱ. 무오사화의 배경
(1) 연산군(燕山君)과 사림파(士林派)
(2) 훈구파(勳舊派) 유자광(柳子光)과 사림파 김종직(金宗直)의 관계
(3) 훈구파 이극돈(李克墩)과
사림파 김일손(金馹孫)의 관계
Ⅲ. 조의제문(弔義帝文)으로 인한
무오사화
Ⅳ. 맺음말
본문내용
향촌사회에 대한 지배력을 키워 세력의 기반으로 삼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를 반대하였다. 또한, 훈구파들은 현직 관리의 지배력을 중심으로 향촌사회를 장악하려고 하는 등 사림파와 향촌사회의 지배권을 놓고 갈등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런 복합적 대립들로 무오사화가 발생하고 말았던 것이다.
Ⅳ. 맺음말
이상 연산군과 사림파의 관계, 훈구파 유자광과 사림파 김종직의 관계, 훈구파 이극돈과 사림파 김일손의 관계를 통해서 무오사화가 일어난 배경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이로써 무오사화가 김종직, 김일손과 이극돈, 유자광의 개인적 감정 대립을 기폭제로 하여 사건화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조의제문을 통해 세조가 즉위하는 과정에서 훈구파와 반인류적, 비윤리적 행위를 저지른 것을 사림파가 문제 삼음으로써 야기된 사건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조의제문의 일부내용을 살펴봄으로써 조의제문이 어떻게 연산군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살펴보았다. 이후에도 3번의 사화가 일어나는데, 사림들은 사화를 겪엇지만 향촌사회의 기반을 중심으로 중앙정계에 계속 진출하였고 마침내 집권하게 된다.
<참고문헌>
-책-
김상훈, 『통한국사2』, 다산에듀, 2012.
국인물사연구원,『핏빛 조선 4대 사화 첫 번째』, 타오름, 2010.
-논문-
이구의,「점필재 김종직의 [조의제문]고」, 대동한문학 제 8집, 대동한문학회, 1996.
강은혜, 「연산군 대 왕권과 신권의 대립과 사화 : 무오, 갑자사화를 중심으로」, 명지대학교, 2012.
-사이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초, http://encykorea.aks.ac.kr/, 2015.6.1.
Ⅳ. 맺음말
이상 연산군과 사림파의 관계, 훈구파 유자광과 사림파 김종직의 관계, 훈구파 이극돈과 사림파 김일손의 관계를 통해서 무오사화가 일어난 배경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이로써 무오사화가 김종직, 김일손과 이극돈, 유자광의 개인적 감정 대립을 기폭제로 하여 사건화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조의제문을 통해 세조가 즉위하는 과정에서 훈구파와 반인류적, 비윤리적 행위를 저지른 것을 사림파가 문제 삼음으로써 야기된 사건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조의제문의 일부내용을 살펴봄으로써 조의제문이 어떻게 연산군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살펴보았다. 이후에도 3번의 사화가 일어나는데, 사림들은 사화를 겪엇지만 향촌사회의 기반을 중심으로 중앙정계에 계속 진출하였고 마침내 집권하게 된다.
<참고문헌>
-책-
김상훈, 『통한국사2』, 다산에듀, 2012.
국인물사연구원,『핏빛 조선 4대 사화 첫 번째』, 타오름, 2010.
-논문-
이구의,「점필재 김종직의 [조의제문]고」, 대동한문학 제 8집, 대동한문학회, 1996.
강은혜, 「연산군 대 왕권과 신권의 대립과 사화 : 무오, 갑자사화를 중심으로」, 명지대학교, 2012.
-사이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초, http://encykorea.aks.ac.kr/, 201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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