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조선시대 4대 사화에 대하여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한국사] 조선시대 4대 사화에 대하여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사화
- 조선시대 4대 사화
1.무오사화
2.갑자사화
3.기묘사화
4.을사사화

본문내용

써, 사림들도 대윤·소윤의 양세력으로 갈라졌다.
이 동안 소윤의 공조참판 윤원형이 대윤의 대사헌 송인수 등으로부터 탄핵을 받아, 계자를 박탈당하고 윤원로 역시 파직된 사건이 생겨, 문정대비,소윤측의 대윤측에 대한 불만과 함께 문정대비의 인종에 대한 불만으로 발전되었다.
인종이 재위 8개월 만에 죽고 뒤를 이어 이복 동생인 어린 경원대군이 명종이 되자, 문정대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이에 정국의 형세는 역전되어, 조정의 실권은 대윤으로부터 명종의 외척인 소윤으로 넘어갔다.
명종 즉위 직후 군기시첨정으로 재등용된 윤원로는, 윤임 일파의 세력을 숙청하기 위해 그들이 경원대군을 해치려 하였다고 무고하였으나, 영의정 윤인경과 좌의정 유관이, 망언을 하고 천친을 이간한다고 탄핵함으로써 오히려 파직, 해남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문정대비의 세력을 배경으로 한 소윤측의 뒤이은 음모는 끈질기게 진행되었다. 즉 예조참의로 재등용된 윤원형은 형인 윤원로의 책동이 실패하자, 이들 대윤 일파와 개인적인 감정이 있던 중추부지사 정순붕, 병조판서 이기, 호조판서 임백령, 공조판서 허자 등을 심복으로 하여, 윤임이 그의 조카인 봉성군(중종의 8남)에게 왕위를 옮기도록 획책하고 있다고 무고하였다.
한편 궁궐 밖으로는 인종이 승하할 당시 윤임이 경원대군의 추대를 원치 않아서 계림군(성종의 3남)을 옹립하려 하였는데, 유관,유인숙 등이 이에 동조하였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로써 윤임,유관,유인숙 등은 반역음모죄로 유배되었다가 사사되고, 계림군도 음모에 관련되었다는 경기감사 김명윤의 밀고로 주살되었다.
그 외 윤임의 사위인 이덕응의 무고로 이휘,나숙,나식,정희등,박광우,곽순,이중열,
이문건 등 10여 명이 화를 입어 사형 또는 유배되었으며, 무고한 이덕응도 사형되었다.
을사사화가 끝난 뒤에도 여파는 한동안 계속되어, 1547년 9월 문정대비의 수렴청정과 이기 등의 농권을 비방하는 뜻의 벽서가 발견되어, 봉성군 송인수 등이 사형, 이언적 등 20여 명이 유배당하는 정미사화와, 이듬해 홍문관박사 안명세가 을사사화 전후의 시정기에 윤임을 찬양하였다 하여 사형되는 등, 을사사화 이래 수년간 윤원형 일파의 음모로 화를 입은 반대파 명사들은 100여 명에 달하였다.
1498년(연산군 4) 이후 약 50년간 관료 간의 대립이 표면화되어 나타난 대옥사는 을사사화로서 마지막이 되었으나, 중앙정계에 대거 진출한 사림세력에 의해 붕당이 형성되었다.
  • 가격1,8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4.04.11
  • 저작시기2014.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12972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