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일층 발전을 위해 노동조직의 발전된 형태로서 종합 작업반이 새로 조직되었다. 종합작업반은 개인적인 물질적 유인이 아니라 집단적인 물질적 유인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2. 개인주의의 배격과 집단주의의 추구
사회주의 계획 경제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개인 이기주의다. 개인 주의에 기초한 천리마운동의 문제점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1959년 집단주의에 기초한 천리마작업반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1958년 북한에서 혁명과업의 우선 순위는 기술혁명, 문화혁명 , 사상 혁명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1958년 11월 ‘공산주의 교양에 대하여’ 라는 김일성의 연설을 통해 이 순서는 뒤바뀌게 된다. 개인주의 이기주의 근절하고 공산주의 집단주의 사상으로 사람들을 무장시키는 사상 혁명이 마침내 북한의 가장 중요한 혁명 과업으로 규정되기 이른 것이다.
3. 천리마작업반 운동과 김일성 주체 노선의 확립
1959.2.17.일 강선제강소에 대한 김일성 현지 지도가 있은 다음 같은해 3월 8일 강선제강소 제철직장진응원 작업반원들의 발기에 의해 시작되었다. 천리마작업반 운동은 작업반에서 생산 활동과 공산주이 사상 교양 자연개조와 인간개조를 의식적 조직적으로 결합시킨 위대한 공산주의 교양의 학교로 평가되었다. 천리마작업반운동은 기존의 천리마 운동과는 달리 물질적 유인보다 이데올로기를 우위에 두고 있다. 1958~59년 이데올로기이의 결정적인 역할 강화는 북한 역사상 가장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던 시기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보다 중요한 특징은 사람들을 공산주의적으로 개조하는 사업이 단순히 경제발전을 위한 수단적 가치로 취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일성은 사람을 공산주의적으로 개조하는 사업에서 얻은 성과는 황금보다도 몇백만톤의 쌀보다 더 귀중한 것이다라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천리마 작업반운동을 통해 항일 빨치산 노선에 대한 재발견이 있었다. 집단주의적 공산주의적 인간형의 최고 모범은 항일 빨치산이었다. 때문에 천리마작업은 항일 빨치산의 혁명전통을 계승하고 배우는 것을 중요한 과업으로 제기하였다. 생산에서 혁명전통의 복원은 빨치산식 이데올로기와 정치의 복원이었으며 빨치산식 집단주의의 복원이었다. 천리마 작업반 운동을 통해 공산주의 사상이 침투되는 한편 1961년 ‘전국어머니대회’를 직접적인 계기로 하여 가정에까지 공산주의 사상교양을 침투시켰다. 또한 5호 담당제를 발기하여 가정 부인 , 노인, 아동 등 농촌 가정에까지 사상 교양사업을 침투시켰다. 공산주의 사상 교양사업의 중요한 방도의 하나는 긍정 감화 교양이었다. 1960년 김일성의 청산리 현지지도에서 제기된 방식으로 긍정적인 것으로 부정적인 것을 극복하고 모범적인 시례를 가지고 군중을 감화시키는 방법이었다.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신문 잡지등의 출판물과 문학예술작품, 각종 회의, 강습 등이었고 특히 문학 예술은 공산주의 사상 교양의 유력한 수단으로서 공산주의적 새 인간의 모범인 항일 빨치산과 천리마 기수를 형상화 하여 공산주의적 인간전형을 창조할 것이 요구되었다.
제3절 생산에 대한 당적 통제 강화와 지역 분권화
1.김일성 주체 노선의 제도화와 당의 지도적 역할 강화
김일성의 주체노선은 천리마작업반 운동과 더불어 1959년 하반기를 지나면서 제도화되기 시작하였다. 정치사업을 모든 사업에 선행시키며 당위원회 제도와 청산리 방법을 도입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행정 경제사업에 대한 당적 지도를 더욱 강화하고 당사업 체계와 방법을 개선하기 위함이었다. 행정경제사업에 대한 당적 지도 강화는 당정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였고 당적통제 강화가 당의 행정 대행현상으로 나타나 김일성은 책임의 범위와 한계를 명확히 설정해보려고 했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결국 1959.12 당중앙위원회 확대 전원회의는 지배인이 아니라 공장당위원회를 공장내 최고지도기관으로 규정하게 되었다.행정경제사업에 있어 당적 정치적 지도가 제도적으로 확고히 우위에 서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당조직의 지도수준을 제고하는 문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관료주의와 형식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당사업 체계와 방법이 바로 청산리 방법이었다. 군당위원회가 사무실에서 앉아서 일하라고 독촉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조직하고 집행하며 도와주고 배워주도록하는 사업체계였다.
2. 지역 분권화와 소비재 산업의 발전
행정 경제 사업에 대한 당적 통제가 강화됨에 따라 당정 관계 뿐 아니라 중앙정부와 지역 정부사이의 권력 구조도 재편성되었다. 이에 성, 관리국 같은 중앙 정부의 권한이 약화되고 지역 정부의 권한이 강화 되었다. 수직적 지도통제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지역당조직에 의한 수평적 지배라는 이중지배구조를 확립하였다. 이는 생산단위의 조직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지역적 창발성을 발양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수의 경제관리 기술간부가 중앙에 편중되어 있는 점과 지방 공업을 관리하는 지방정권의 기능과 역할이 미약하다는 문제가 제기되어 이에 따라 공업 관리체계도 전반적으로 재편되었다. 1950년 후반 이후 본격화된 지역분권화 조치는 지방공업을 중심으로 한 소비재 산업의 급속한 성장을 가져왔으며 이것은 지방 예산의 증대를 가져왔고 이는 북한의 국가 예산 수입과 자본 축적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3. 제1차 7개년 계획 : 농업과 경공업을 위한 중공업으로의 전환
북한의 제1차 7개년 계획(1961~67)은 첫 3년 동안에는 경공업과 농업에 주력하고 후 4년에는 중공업에 주력하는 것으로 입안되었다. 이에 따라 투자의 우선순위도 조정되어 중공업에 대한 투자비중이 감소되고 경공업에 대한 투자비중이 증대되었다. 농업에 대한 투자비중도 증대되었다. 이시기는 중공업을 위한 중공업이 아니라 농업과 경공업을 위한 중공업이었다. 전후 김일성의 경제발전 전략인 중공업의 우선적 발전과 경공업 농업의 동시 발전 노선이 실현되는 듯 했으며 1960년대 초반 북한 경제는 소비재 생산과 인민 생활향상에 중심을 두고 정상적인 발전을 길을 따라 순항하는 듯했다. 그러나 1962년 연말을 지나면서 완전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외적으로 국제공산주의운동의 분열과 갈등에 기인하는 것이었으며 내적으로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한계에 기인한 것이다.
2. 개인주의의 배격과 집단주의의 추구
사회주의 계획 경제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개인 이기주의다. 개인 주의에 기초한 천리마운동의 문제점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1959년 집단주의에 기초한 천리마작업반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1958년 북한에서 혁명과업의 우선 순위는 기술혁명, 문화혁명 , 사상 혁명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1958년 11월 ‘공산주의 교양에 대하여’ 라는 김일성의 연설을 통해 이 순서는 뒤바뀌게 된다. 개인주의 이기주의 근절하고 공산주의 집단주의 사상으로 사람들을 무장시키는 사상 혁명이 마침내 북한의 가장 중요한 혁명 과업으로 규정되기 이른 것이다.
3. 천리마작업반 운동과 김일성 주체 노선의 확립
1959.2.17.일 강선제강소에 대한 김일성 현지 지도가 있은 다음 같은해 3월 8일 강선제강소 제철직장진응원 작업반원들의 발기에 의해 시작되었다. 천리마작업반 운동은 작업반에서 생산 활동과 공산주이 사상 교양 자연개조와 인간개조를 의식적 조직적으로 결합시킨 위대한 공산주의 교양의 학교로 평가되었다. 천리마작업반운동은 기존의 천리마 운동과는 달리 물질적 유인보다 이데올로기를 우위에 두고 있다. 1958~59년 이데올로기이의 결정적인 역할 강화는 북한 역사상 가장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던 시기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보다 중요한 특징은 사람들을 공산주의적으로 개조하는 사업이 단순히 경제발전을 위한 수단적 가치로 취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일성은 사람을 공산주의적으로 개조하는 사업에서 얻은 성과는 황금보다도 몇백만톤의 쌀보다 더 귀중한 것이다라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천리마 작업반운동을 통해 항일 빨치산 노선에 대한 재발견이 있었다. 집단주의적 공산주의적 인간형의 최고 모범은 항일 빨치산이었다. 때문에 천리마작업은 항일 빨치산의 혁명전통을 계승하고 배우는 것을 중요한 과업으로 제기하였다. 생산에서 혁명전통의 복원은 빨치산식 이데올로기와 정치의 복원이었으며 빨치산식 집단주의의 복원이었다. 천리마 작업반 운동을 통해 공산주의 사상이 침투되는 한편 1961년 ‘전국어머니대회’를 직접적인 계기로 하여 가정에까지 공산주의 사상교양을 침투시켰다. 또한 5호 담당제를 발기하여 가정 부인 , 노인, 아동 등 농촌 가정에까지 사상 교양사업을 침투시켰다. 공산주의 사상 교양사업의 중요한 방도의 하나는 긍정 감화 교양이었다. 1960년 김일성의 청산리 현지지도에서 제기된 방식으로 긍정적인 것으로 부정적인 것을 극복하고 모범적인 시례를 가지고 군중을 감화시키는 방법이었다.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신문 잡지등의 출판물과 문학예술작품, 각종 회의, 강습 등이었고 특히 문학 예술은 공산주의 사상 교양의 유력한 수단으로서 공산주의적 새 인간의 모범인 항일 빨치산과 천리마 기수를 형상화 하여 공산주의적 인간전형을 창조할 것이 요구되었다.
제3절 생산에 대한 당적 통제 강화와 지역 분권화
1.김일성 주체 노선의 제도화와 당의 지도적 역할 강화
김일성의 주체노선은 천리마작업반 운동과 더불어 1959년 하반기를 지나면서 제도화되기 시작하였다. 정치사업을 모든 사업에 선행시키며 당위원회 제도와 청산리 방법을 도입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행정 경제사업에 대한 당적 지도를 더욱 강화하고 당사업 체계와 방법을 개선하기 위함이었다. 행정경제사업에 대한 당적 지도 강화는 당정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였고 당적통제 강화가 당의 행정 대행현상으로 나타나 김일성은 책임의 범위와 한계를 명확히 설정해보려고 했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결국 1959.12 당중앙위원회 확대 전원회의는 지배인이 아니라 공장당위원회를 공장내 최고지도기관으로 규정하게 되었다.행정경제사업에 있어 당적 정치적 지도가 제도적으로 확고히 우위에 서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당조직의 지도수준을 제고하는 문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관료주의와 형식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당사업 체계와 방법이 바로 청산리 방법이었다. 군당위원회가 사무실에서 앉아서 일하라고 독촉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조직하고 집행하며 도와주고 배워주도록하는 사업체계였다.
2. 지역 분권화와 소비재 산업의 발전
행정 경제 사업에 대한 당적 통제가 강화됨에 따라 당정 관계 뿐 아니라 중앙정부와 지역 정부사이의 권력 구조도 재편성되었다. 이에 성, 관리국 같은 중앙 정부의 권한이 약화되고 지역 정부의 권한이 강화 되었다. 수직적 지도통제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지역당조직에 의한 수평적 지배라는 이중지배구조를 확립하였다. 이는 생산단위의 조직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지역적 창발성을 발양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수의 경제관리 기술간부가 중앙에 편중되어 있는 점과 지방 공업을 관리하는 지방정권의 기능과 역할이 미약하다는 문제가 제기되어 이에 따라 공업 관리체계도 전반적으로 재편되었다. 1950년 후반 이후 본격화된 지역분권화 조치는 지방공업을 중심으로 한 소비재 산업의 급속한 성장을 가져왔으며 이것은 지방 예산의 증대를 가져왔고 이는 북한의 국가 예산 수입과 자본 축적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3. 제1차 7개년 계획 : 농업과 경공업을 위한 중공업으로의 전환
북한의 제1차 7개년 계획(1961~67)은 첫 3년 동안에는 경공업과 농업에 주력하고 후 4년에는 중공업에 주력하는 것으로 입안되었다. 이에 따라 투자의 우선순위도 조정되어 중공업에 대한 투자비중이 감소되고 경공업에 대한 투자비중이 증대되었다. 농업에 대한 투자비중도 증대되었다. 이시기는 중공업을 위한 중공업이 아니라 농업과 경공업을 위한 중공업이었다. 전후 김일성의 경제발전 전략인 중공업의 우선적 발전과 경공업 농업의 동시 발전 노선이 실현되는 듯 했으며 1960년대 초반 북한 경제는 소비재 생산과 인민 생활향상에 중심을 두고 정상적인 발전을 길을 따라 순항하는 듯했다. 그러나 1962년 연말을 지나면서 완전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외적으로 국제공산주의운동의 분열과 갈등에 기인하는 것이었으며 내적으로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한계에 기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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