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리의 시선이 우리의 손과 발이, 우리의 작은 입술이, 우리의 모든 몸과 마음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향해있을 것입니다. 이런 저와 여러분이 되길 축복합니다.
또한 요셉은 죄악을 마주 대하였을 때 정면으로 싸우지 않고 지혜롭게 피하는 편을 선택 하였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보다 죄악에 물들기 쉬우며, 선한 것보다 악한 것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는 교만함과 사악함으로 전인적으로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제불능의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이 땅으로 보내주셨고, 그의 귀한 보혈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날마다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며 기다리고 계심을 잊지 말고,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죄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요셉과 같이 욤욤 코람데오 의식으로 반응할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셨으며 그는 유혹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한마디의 불평이나 변명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 모든 일과 상황을 내어드리고 잠잠히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의 절정은 예수님의 모습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 전서 2장 23절에서 25절에 묘사되었듯이,
23-25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 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 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 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어떠한 권세들보다 뛰어나시고 높으신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능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가장 낮은 자리에 임하셔서 가장 처참한 자리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얻은 것은 태어나셨을 때의 말구유와 죽으셨을 때의 십자가. 이 두 개의 나무토막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일은 세상의 권력을 가지고 군림하는 것도,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명예와 부도 아닌 낮아짐과 섬김으로 날마다 날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에게 찾아온 것은 사람들의 칭찬도 인정도 아닌 모욕과 핍박, 수치스러움의 상징인 십자가의 죽음 뿐이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러한 상황에도 맞대어 그의 입을 열지 않으시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과 같이 털을 깎는 이에게 그를 맡긴 체 침묵하셨습니다. 우리의 어떠한 불평스럽고 원망스러운 상황과 환경이 예수님께서 직면하신 일들보다 비참하고 처참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러한 주님의 고난 뒤에 계획하신 하나님의 크신 섭리와 뜻을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분이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고, 그가 죽음을 당하므로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따라 날마다 날마다 한걸음 한걸음씩 내
또한 요셉은 죄악을 마주 대하였을 때 정면으로 싸우지 않고 지혜롭게 피하는 편을 선택 하였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보다 죄악에 물들기 쉬우며, 선한 것보다 악한 것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는 교만함과 사악함으로 전인적으로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제불능의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이 땅으로 보내주셨고, 그의 귀한 보혈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날마다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며 기다리고 계심을 잊지 말고,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죄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요셉과 같이 욤욤 코람데오 의식으로 반응할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셨으며 그는 유혹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한마디의 불평이나 변명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 모든 일과 상황을 내어드리고 잠잠히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의 절정은 예수님의 모습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 전서 2장 23절에서 25절에 묘사되었듯이,
23-25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 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 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 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어떠한 권세들보다 뛰어나시고 높으신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능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가장 낮은 자리에 임하셔서 가장 처참한 자리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얻은 것은 태어나셨을 때의 말구유와 죽으셨을 때의 십자가. 이 두 개의 나무토막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일은 세상의 권력을 가지고 군림하는 것도,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명예와 부도 아닌 낮아짐과 섬김으로 날마다 날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에게 찾아온 것은 사람들의 칭찬도 인정도 아닌 모욕과 핍박, 수치스러움의 상징인 십자가의 죽음 뿐이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러한 상황에도 맞대어 그의 입을 열지 않으시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과 같이 털을 깎는 이에게 그를 맡긴 체 침묵하셨습니다. 우리의 어떠한 불평스럽고 원망스러운 상황과 환경이 예수님께서 직면하신 일들보다 비참하고 처참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러한 주님의 고난 뒤에 계획하신 하나님의 크신 섭리와 뜻을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분이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고, 그가 죽음을 당하므로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따라 날마다 날마다 한걸음 한걸음씩 내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