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 계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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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직신학 계시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계시란 무엇인가?
Ⅲ. 성경론
Ⅳ. 예술신학 방법론
Ⅴ. 기독교 신앙
Ⅵ. 자연신학과 계시신학
Ⅶ. 나가는 말

본문내용

을 부정하고 있고, 둘째 카톨릭의 존재의 유비를 부정하고 있고, 셋째 에밀 브룬너의 ‘자연과 은총’(Natur und Gnade)를 부정하며 은총은 자연과의 접촉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넷째 나치즘의 신학을 부정하고 있다. 나치 정권이 있던 시대에는 나치즘의 역사를 인정하고 종족의 우월성을 신학이 인정하였는데 이것을 부정하고 있다.
바르트는 이런 네 가지 질문으로 계시신학을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계시신학을 부정할 때 역사적인 모습을 통하여 부정했기 때문에 자연신학을 원칙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다.
바르트 이외에 불트만과 알트하우스, 틸리히, 라너 등 많은 신학자들이 자연의 신학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러한 질문들은 새로운 창조신학을 수립함으로써 해결되며 신학의 폭이 더 넓어지리라 예상한다.
Ⅶ. 나가는 말
기독교 신앙에서 절대 뺄 수 없는 계시와 성경, 교회에 대해,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 신앙인, 믿음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계시는 하나님의 자기-드러냄을 뜻하며,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는 방법은 모든 창조세계와 성육신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드러낸다. 창조세계를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은 인간의 도덕과 이성을 통하여 느낄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순수한 ‘눈’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과 도덕성이 점점 타락하여 창조세계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을 느끼기 힘들게 되었다.
창조세계에 나타나는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예수의 미의식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의식이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지만 단순히 ‘예쁨’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고 대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대상 자체의 존재만 가지고 판단할 때에 그 대상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창조세계를 바라봄에 있어서 창조세계의 외형적인 부분만 인지할 것이 아니라 창조세계가 내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찰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자기-드러냄의 또 다른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방법은 성경의 증언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품과 뜻이 하나님의 계시의 최고조라고 설명한다. 이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요 14:6)에 근거하여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계시가 완성됨을 설명한다. 하지만 여기서 드는 의문은 예수가 오기 전 시대의 사람들에게 생긴다. 이것은 구원의 차원에서의 질문이 아니고,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것과 희미하게 아는 것에 차이를 두는 것이다. 물론 예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기 전의 사람들은 지금보다 도덕적으로 덜 황폐할 수 있겠지만, 그들도 엄연한 죄인이기에 창조세계에서 하나님의 드러냄을 온전하게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타락 이후부터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기 전까지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고 ‘반쪽짜리 하나님’만 알고 지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또 다른 의문은 계시의 6가지 명제 중 마지막 여섯 번째 명제의 후반부분은 동의하지만 앞부분에서 계시는 인간의 시각을 협소하게 하거나 이해를 위해 노력을 제한한다고 하였는데, 계시를 이해하고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시각을 넓게 보고 계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일반 계시는 창조세계의 겉 표면이 아닌 내면의 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작업을 필요로 한다. 인간의 타락 이전의 아담은 탄생과 동시에 어느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인식했다. 하지만 인간의 타락 후 창세기에서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을 봤을 때, 하나님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인간의 시각을 넓게 하고 계시를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의문은 계시, 성경, 교회의 설명에서 일차적 계시는 이차적인 성경과 교회를 통해서 나타난다고 하였다. 계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나타난 문자 그대로의 이해가 아닌 그 안의 배경을 이해하고 시대상을 숙지한 뒤에 하나님의 자기-드러냄과 역사적 모호성의 구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교회의 선포가 필수 불가결함을 동의하지는 않는다. 현대의 문명의 발전은 신학을 누구나 접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이는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해석과 선포의 자리를 사라지게 만든다. 실제로 교회에서 말씀 선포를 담당하고 있는 목회자들보다 더 많은 신학적 지식을 알고, 성경 해석을 알고 있는 교인들이 많음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교회의 성경해석학적 자리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교회만이 성경을 해석하고 선포하는 기능을 갖는다는 견해는 더 넓힐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신앙으로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을 보고 기독교 신학을 이해함에는 예수의 미의식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수의 미의식은 ‘사랑’으로부터 출발되는 것이지만, 나는 ‘느낌’이라는 개념으로 출발하는 것을 생각해보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약자에 대한 사랑은, 약자가 어떤 느낌일지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여야 공감을 하고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느낌은 일방적인 느낌이 아닌 상호간에 서로 느끼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느끼시고 내가 하나님을 느낄 때,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을 알게 되고, 또한 교회에서 집중적으로 선포 되는 예수 그리스도인 특별 계시 이외에도 일반 계시를 더욱 풍족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계시론 수업을 통해서 특별 계시에만 몰두하고 있던 내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세계 속에 드러나는 하나님을 찾으려는 노력이 없음을 보고, 내 안에 순수함이 생기기를 희망하고 있다. 군에 속해 있는 동안 아주 잠깐이지만 자연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을 느꼈었던 시간이 있었다. 그 때의 기억과 감격은 다른 많은 사건들 속에서도 잊혀지지 않고 내 안에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신학생으로서, 또 몇 명의 영혼들을 이끌어가야 하는 사람으로서 창조세계에서 진하게 나타나는 하나님을 충분히 느낀 후에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그리스도를 묵상해야 살아있는 말씀을 전하는 전달자가 될 것임을 기억하며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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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7.30
  • 저작시기2015.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107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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