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특질
2. 그리스와 로마
3.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4. 중국
5. 인도
6. 한국
2. 그리스와 로마
3.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4. 중국
5. 인도
6. 한국
본문내용
으로 씨족공동체가 해체되고 친족공동체가 성립하였다. 따라서 이 친족공동체의 우두머리 중에서 가장 강한 자가 부족장이 되어 부족집단을 지배하는 부족국가가 성립되었다.
고조선 멸망 뒤 철기문화의 기반 위에 새로이 건설된 부족국가들은, 북쪽의 부여 ·고구려 ·동예 ·옥저 등이고 남쪽의 삼한(三韓) 등이었다. 이 시대에 와서는 철제농기구에 의한 농경방법이 발달하여 농산물이 급격히 증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북방 기마민족 문화의 영향으로 목축업이 성행하고 어업도 발달하였다. 또한 부족상호간의 생산물 교역관계가 활발하였으며, 따라서 부족국가는 강력한 지배체제의 고대국가를 형성하였다. 이 고대국가는 전반적으로 발전한 철기문화의 기반 위에서 지방의 부족장세력을 통합하여 성립되었다. 이 무렵의 중국은 후한(後漢) ·위(魏) ·진(晋) ·남북조(南北朝) ·수(隋) ·당(唐)의 통일제국 등 변동이 격심한 파란기에 해당된다.
고대국가의 특징은 지배자가 신분을 유지하기 위하여 중앙집권적 관료정치체제를 정비하려 한 점이다. 즉, 중앙으로부터 관리와 군대를 파견하여 지방세력을 통제하고 지방 지배체제를 확립하였다. 따라서 지방의 세력가들은 지배자의 지배권, 즉 왕권에 복속하여 중앙의 고급관료가 되고 귀족화하였다. 또한 왕위의 세습제도를 확립시켜 왕권강화를 꾀하였으며, 율령을 반포하여 행정체제도 정비하였다. 이처럼 고대국가로서 기초를 확립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은 한편으로 정복사업을 전개하면서 영토확장에 주력하였다.
이들 삼국을 통하여 고대국가로서의 공통적 특징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앙귀족을 중심으로 운영된 중앙집권적 귀족사회국가였다.
둘째, 왕족 ·왕비족 및 귀족 등 소수집단이 정치 ·경제 ·문화 등의 특권을 누려 사회의 지배세력을 형성하였다.
셋째, 농경지 ·목장 ·광산 ·관개시설 ·산림 등을 소유하는 귀족 및 족장, 귀족들의 소유지를 그들의 허가를 받고 경작하는 평민, 노비 및 천민(전쟁포로와 범법자)인 부곡민(部曲民) 등으로 구성된 엄격한 계급사회였다.
넷째, 소수의 귀족층이 다수의 평민과 노비를 지배하기 위하여 관료체제를 확립하였다.
이와 같은 경로를 거쳐 마침내 신라의 삼국통일이 이루어졌고, 따라서 지배계급이 감소되었으며, 국가 경제력의 증대를 기반으로 전제왕권이 확립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고대사회는 중세의 봉건사회를 명확히 규정지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한계를 규정짓기가 매우 어렵다.
고조선 멸망 뒤 철기문화의 기반 위에 새로이 건설된 부족국가들은, 북쪽의 부여 ·고구려 ·동예 ·옥저 등이고 남쪽의 삼한(三韓) 등이었다. 이 시대에 와서는 철제농기구에 의한 농경방법이 발달하여 농산물이 급격히 증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북방 기마민족 문화의 영향으로 목축업이 성행하고 어업도 발달하였다. 또한 부족상호간의 생산물 교역관계가 활발하였으며, 따라서 부족국가는 강력한 지배체제의 고대국가를 형성하였다. 이 고대국가는 전반적으로 발전한 철기문화의 기반 위에서 지방의 부족장세력을 통합하여 성립되었다. 이 무렵의 중국은 후한(後漢) ·위(魏) ·진(晋) ·남북조(南北朝) ·수(隋) ·당(唐)의 통일제국 등 변동이 격심한 파란기에 해당된다.
고대국가의 특징은 지배자가 신분을 유지하기 위하여 중앙집권적 관료정치체제를 정비하려 한 점이다. 즉, 중앙으로부터 관리와 군대를 파견하여 지방세력을 통제하고 지방 지배체제를 확립하였다. 따라서 지방의 세력가들은 지배자의 지배권, 즉 왕권에 복속하여 중앙의 고급관료가 되고 귀족화하였다. 또한 왕위의 세습제도를 확립시켜 왕권강화를 꾀하였으며, 율령을 반포하여 행정체제도 정비하였다. 이처럼 고대국가로서 기초를 확립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은 한편으로 정복사업을 전개하면서 영토확장에 주력하였다.
이들 삼국을 통하여 고대국가로서의 공통적 특징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앙귀족을 중심으로 운영된 중앙집권적 귀족사회국가였다.
둘째, 왕족 ·왕비족 및 귀족 등 소수집단이 정치 ·경제 ·문화 등의 특권을 누려 사회의 지배세력을 형성하였다.
셋째, 농경지 ·목장 ·광산 ·관개시설 ·산림 등을 소유하는 귀족 및 족장, 귀족들의 소유지를 그들의 허가를 받고 경작하는 평민, 노비 및 천민(전쟁포로와 범법자)인 부곡민(部曲民) 등으로 구성된 엄격한 계급사회였다.
넷째, 소수의 귀족층이 다수의 평민과 노비를 지배하기 위하여 관료체제를 확립하였다.
이와 같은 경로를 거쳐 마침내 신라의 삼국통일이 이루어졌고, 따라서 지배계급이 감소되었으며, 국가 경제력의 증대를 기반으로 전제왕권이 확립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고대사회는 중세의 봉건사회를 명확히 규정지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한계를 규정짓기가 매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