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차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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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변천

2. 종류

본문내용

한국요리에는 갖가지 특색 있는 음식이 있고 거기에 따른 조리법이 있으며, 또한 독특한 상차리기가 있다. 상차리기의 유형은 그 시대의 정치·경제·문화 체제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한편으로는 의복이나 주거양식과도 연계성이 크다.
1. 변천
1) 상고시대
고구려 벽화로 미루어보아 한국의 상고시대의 상차리기는 입식(立式) 차리기였음을 알 수 있다. 다리가 긴 탁자형 상에 음식을 차려놓고 의자에 앉아서 식사하였으며, 음식을 담는 기명(器皿)에는 고배형(高杯型)의 그릇이 많이 쓰인 것으로 보인다. 6세기경의 고분인 금령총(金鈴塚)에서 출토된 기명에 장경호(長頸壺), 합, 뚜껑 있는 고배, 뚜껑 없는 고배 등이 있다. 이 중합은 밥그릇이고 고배는 찬그릇, 장경호는 술병으로 쓰였을 것으로 본다.
2) 고려시대
《고려도경》에 개경(開京)에 개설한 객관(客館)에서 접객을 할 때 `상객(上客)에게는 5상, 중객에게는 3상, 하객에게는 연상(連床)을 차린다`고 되어 있고, 연회의 모습을 설명한 중에서 `왕공(王公:왕족과 귀족)은 상탁(狀卓)과 반찬을 사용하되 관리나 사민(士民)은 좌상(坐床)만을 쓴다. 접객을 할 때 여러 가지 음식을 많이 하고 매상에는 객이 3인씩이고 객의 수가 많으면 상을 늘린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은 기록으로 미루어 테이블 같은 상탁을 사용하고, 상객일수록 음식을 담은 반수(盤數)가 많았으며, 하객인 경우에는 좌식 상에 두레상처럼 연상을 차린 것을 알 수 있다.
3) 조선시대
조선시대에 와서 좌식상으로 고정되었는데, 궁중에서 행한 의례와 제례의 상차리기에는 예로부터의 풍습에 따라 상탁을 사용하였다. 또한, 반상·큰상을 비롯한 여러 가지 상차리기의 격식이 이때 정립되었다. 조선시대에 정립된 상차리기는 유교이념을 근본으로 한 대가족제도가 크게 반영되어 있고, 음식을 담는 기명도 상차리기에 따라 대체로 규격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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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5.24
  • 저작시기2002.05
  • 파일형식워드(doc)
  • 자료번호#195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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