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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본문내용
구원에 대한 진술들과 그리고 그의 k b d 가 시온으로 전이되고 있다는 점이다(62,1이하).
VII
여기 처음 다룬 고찰들을 갖고서 이사야서 전체 구성사를 논하려 한 것이 성급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앞으로 더 많은 연구들이 서둘러 나와야 할 것이다. 구성사에 대한 관점들을 밝히려는 작업들은 결정적으로 이루어여야 한다.
우선 내 생각으론 이사야서의 두 번째 부분인 40-55장까지가 전체 이사야서 안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제1부뿐 아니라 제3부에서도 제2부에 대한 구성작업이 전개되고, 이둘은 2부에서 무언가 가지고 나와 만들거나 또는 그들의 진술들을 2부에 비추어 증거를 삼으려 했다. 이로부터 자연히 얻게된 입장이라면, 제2부 40-55장은 하나의 전체적인 구성과 완전히 이루어진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이런 입장을 보이는 이들로는 Melugin과 Mettinger그리고 R.Rendtorff, Das Alte Testament. Eine Einfuhrung (Neulirchen, 1983), S.204ff.를 참고하라). 그렇기 때문에 40-55장은 현재 구성을 이루고 있는 것의 핵을 차지하고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고, 이로부터 제1부와 3부가 끌어들이기도 하고 거기에 기대든가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면서 마지막 원고 정리했다고 본다.
아울러 편집과 구성을 이루는 아주 다른 여러 장들은 그것들이 상호 관련되고 설명해주게 한다. 몇몇 경우에 있어서는 이 세부분 모두를 감사 안는것도 있고(예, '위로하라', 야훼의 k b d ), 그런데 이렇게 함께 나타나는 중심어가 제1부에서는 빠지는 경우도 있다. 그완 반대로 제1부와 2부사이 상호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의 표현은 제3부에서는 거의 그 역할을 하고 있지 않기도 하다. '시온' 주제는 세 부분 모두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고 이 세부분을 연결시켜주는 확실한 방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시온' 주제가 이사야서 전체 구성사를 보여주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미 1-12장 안에편집, 구성 작업이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예루살렘에 대해서 비난과 심판 선언과 함께 구원선포가 상반되이 나타나기 때문이다(Acroyd, SVT 29, 여러 곳을 참고하라). 또한 1-39안엔 이미 많은 부분의 통일성들이 분명하게 각자의 구성을 위한 구조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앞으로 더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36-39장과 이사야서의 다른 것들과의 관련에 대해서는 Acroyd, Festschrif v.d.Ploeg 를 참고하라. 다만 새로운 연구들이 제기한 문제들로 인해 몇몇 단락들은 그 상황이 바뀌었다. 예를들어 '이사야 묵시록'이라 불리우는 24-27장과 '앗시리아 시대 신탁/assyrische Zyklus'으로 불리는 28-30장등이다. 내 추측으론 이사으이 문제제기들로부터 13-23장에 나와 있는 '열방신탁'이 이사야서 전체에 있어서 새로운 관점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와함께 이사야서 전체 구성을 위한 통일성에 대한 구성작업들이 어떻게 된 것이지에 대한 물음이 생기게 된다. 예를든다면 12장은 전체 한권의 책 이전에 이미 1-12장까지의 수집물의 결론으로써 그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동시에 이는 40-55장까지 이미 관련을 갖고 있었던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또 다른 비슷한 질문으로 35장에 대해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로부터 부득이 제기되는 문제는 언젠가 이미 자체 수집물들을 가지고 있어서 1-39장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또는 1-39장의 현재 수집물은 전체 이사야서의 구성을 위해 상호작용을 하면서 생겨나야만 했던건 아닌지 하는 것이다.
제3부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시작부터 여건이 다르다. 왜냐하면 제3부의 저자 그리고/또는 편집자가 이미 40-55장을 완결된 형태로 가지고 있었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56,1 처음이 분명하게 가리키는 것은 ed q h 에 대해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는 40-55장에 대해 자신의 별도 자료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그는 이런 상이한 여러 전통들을 서러 서로 연결지으려고 했던 것이 그의 중요한 과제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공평과 정의에 대한 오용을 비난하고 이를 바꾸어야 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분명 매우 현실적이고 당면한 구체적인 문제였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이사야라는 이름으로 전해 내려온 전통들을 자기 상황속에서 다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는 포로기 '제2이사야'의 전승들 속에서 ed q h 에 대해 현재 어려운 상황 속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고, 그 가운데 인간의 정의가부족한 것은 이제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을 통해 극복 되어질 것으로 본 것이다.
이사야서 전체를 보는 측면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제1부와 제3부에 대해서는 그 작업이 서로간에 어떻게 진행되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간단하게 대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생각으론 제3부가 지닌 모습과 이것이 또한 전체 이사야서의 최종형태 구성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점에서 결정적으로 그 답이 있으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56-66장은 나머지 두 부분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 확실하고, 그렇기 때문에 제3부가 독립적으로 존재했으리라곤 거의 상상할 수 가 없기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56-66장에 대한 편집-구성사 연구는 새로이 연구되어져야 한다. 이에 대해선 K.Pauritsch, Die Neue Gemeinde, Gott sammelt Ausgestosene und Arme (Jesaja 56-66) (Rom, 1971); E.Sehmsdorf, "Studien zur Redaktionsgeschichte von Jesaja 56-66", ZAW 84 (1972), S.517-61, 562-76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처음으로 짧게나마 제기한 것들은 이미 내 책 Das Alte Testament, S,210 이하에 기술하였다.)
VII
여기 처음 다룬 고찰들을 갖고서 이사야서 전체 구성사를 논하려 한 것이 성급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앞으로 더 많은 연구들이 서둘러 나와야 할 것이다. 구성사에 대한 관점들을 밝히려는 작업들은 결정적으로 이루어여야 한다.
우선 내 생각으론 이사야서의 두 번째 부분인 40-55장까지가 전체 이사야서 안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제1부뿐 아니라 제3부에서도 제2부에 대한 구성작업이 전개되고, 이둘은 2부에서 무언가 가지고 나와 만들거나 또는 그들의 진술들을 2부에 비추어 증거를 삼으려 했다. 이로부터 자연히 얻게된 입장이라면, 제2부 40-55장은 하나의 전체적인 구성과 완전히 이루어진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이런 입장을 보이는 이들로는 Melugin과 Mettinger그리고 R.Rendtorff, Das Alte Testament. Eine Einfuhrung (Neulirchen, 1983), S.204ff.를 참고하라). 그렇기 때문에 40-55장은 현재 구성을 이루고 있는 것의 핵을 차지하고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고, 이로부터 제1부와 3부가 끌어들이기도 하고 거기에 기대든가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면서 마지막 원고 정리했다고 본다.
아울러 편집과 구성을 이루는 아주 다른 여러 장들은 그것들이 상호 관련되고 설명해주게 한다. 몇몇 경우에 있어서는 이 세부분 모두를 감사 안는것도 있고(예, '위로하라', 야훼의 k b d ), 그런데 이렇게 함께 나타나는 중심어가 제1부에서는 빠지는 경우도 있다. 그완 반대로 제1부와 2부사이 상호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의 표현은 제3부에서는 거의 그 역할을 하고 있지 않기도 하다. '시온' 주제는 세 부분 모두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고 이 세부분을 연결시켜주는 확실한 방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시온' 주제가 이사야서 전체 구성사를 보여주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미 1-12장 안에편집, 구성 작업이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예루살렘에 대해서 비난과 심판 선언과 함께 구원선포가 상반되이 나타나기 때문이다(Acroyd, SVT 29, 여러 곳을 참고하라). 또한 1-39안엔 이미 많은 부분의 통일성들이 분명하게 각자의 구성을 위한 구조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앞으로 더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36-39장과 이사야서의 다른 것들과의 관련에 대해서는 Acroyd, Festschrif v.d.Ploeg 를 참고하라. 다만 새로운 연구들이 제기한 문제들로 인해 몇몇 단락들은 그 상황이 바뀌었다. 예를들어 '이사야 묵시록'이라 불리우는 24-27장과 '앗시리아 시대 신탁/assyrische Zyklus'으로 불리는 28-30장등이다. 내 추측으론 이사으이 문제제기들로부터 13-23장에 나와 있는 '열방신탁'이 이사야서 전체에 있어서 새로운 관점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와함께 이사야서 전체 구성을 위한 통일성에 대한 구성작업들이 어떻게 된 것이지에 대한 물음이 생기게 된다. 예를든다면 12장은 전체 한권의 책 이전에 이미 1-12장까지의 수집물의 결론으로써 그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동시에 이는 40-55장까지 이미 관련을 갖고 있었던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또 다른 비슷한 질문으로 35장에 대해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로부터 부득이 제기되는 문제는 언젠가 이미 자체 수집물들을 가지고 있어서 1-39장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또는 1-39장의 현재 수집물은 전체 이사야서의 구성을 위해 상호작용을 하면서 생겨나야만 했던건 아닌지 하는 것이다.
제3부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시작부터 여건이 다르다. 왜냐하면 제3부의 저자 그리고/또는 편집자가 이미 40-55장을 완결된 형태로 가지고 있었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56,1 처음이 분명하게 가리키는 것은 ed q h 에 대해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는 40-55장에 대해 자신의 별도 자료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그는 이런 상이한 여러 전통들을 서러 서로 연결지으려고 했던 것이 그의 중요한 과제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공평과 정의에 대한 오용을 비난하고 이를 바꾸어야 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분명 매우 현실적이고 당면한 구체적인 문제였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이사야라는 이름으로 전해 내려온 전통들을 자기 상황속에서 다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는 포로기 '제2이사야'의 전승들 속에서 ed q h 에 대해 현재 어려운 상황 속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고, 그 가운데 인간의 정의가부족한 것은 이제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을 통해 극복 되어질 것으로 본 것이다.
이사야서 전체를 보는 측면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제1부와 제3부에 대해서는 그 작업이 서로간에 어떻게 진행되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간단하게 대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생각으론 제3부가 지닌 모습과 이것이 또한 전체 이사야서의 최종형태 구성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점에서 결정적으로 그 답이 있으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56-66장은 나머지 두 부분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 확실하고, 그렇기 때문에 제3부가 독립적으로 존재했으리라곤 거의 상상할 수 가 없기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56-66장에 대한 편집-구성사 연구는 새로이 연구되어져야 한다. 이에 대해선 K.Pauritsch, Die Neue Gemeinde, Gott sammelt Ausgestosene und Arme (Jesaja 56-66) (Rom, 1971); E.Sehmsdorf, "Studien zur Redaktionsgeschichte von Jesaja 56-66", ZAW 84 (1972), S.517-61, 562-76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처음으로 짧게나마 제기한 것들은 이미 내 책 Das Alte Testament, S,210 이하에 기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