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김대문의 역사서술과 동기
김대문이 화랑세기를 저술한 목적
화랑세기의 의의
김대문이 화랑세기를 저술한 목적
화랑세기의 의의
본문내용
바 있다.
한편 13세 용춘공조에는 진평왕이 적자가 없어 용수를 장녀인 천명과 혼인시켜, 사위로 삼아 왕위를 물려 주려 한 것으로 나오고 있다. 결과는 사위가 아닌 공주 선덕을 왕으로 삼았다. 선덕의 뒤를 이어 진덕이 왕위를 계승했다. 이들 여왕의 즉위는 성골 신분을 가진 자들을 왕으로 삼는 원리를 지킨 것을 의미한다. 부계 계승이 지켜지는 사회에서도 한 대에 한해서 여자들이 부계 가계의 성원권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여왕의 즉위가 가능했다. 그러한 사정은 모계 계승으로 이어진 진골 정통과 대원 신통의 계승에서 남자들이 한 대에 한해 어머니의 계통을 이었던 것과 같은 원리이다. 이는 『화랑세기』나 『삼국사기』와 같은 사서에서 구체적으로 밝혀 주는 원리는 아니다. 단지 그와 같은 사서에서 찾아낸 원리가 된다.
만일 용수와 천명 사이에 아들이 있었다면 그는 진평왕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성골 신분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이미 성골 남자가 없었기에 진평왕으로서는 용수나 용춘의 아들을 왕으로 삼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아들이 다름 아니라 29대 왕인 김춘추였다. 그 때 왕실 세력으로 비록 성골은 아니지만 왕과 가장 가까운 세력은 용수·용춘이었다. 따라서 그들을 사위로 삼아 성골의 대가 끊긴 후 왕위를 이어나가는 조치를 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여왕의 즉위에 대해 반발하는 세력도 있었다. 17세 염장공은 선덕공주에게 몰래 붙어 칠숙의 난을 다스리고 그 공으로 풍월주가 된 바 있다. 그리고 24세 천관공은 낭도들을 거느리고 비담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운 바 있다. 15세 유신공조에는 유신이 왕자나 전군도 낭도가 없으면 위엄을 세울 수 없다고 해 춘추를 유신의 부제로 삼은 것을 볼 수 있다. 화랑도는 왕위 계승에 반발하는 세력을 진압했고 또 유신과 춘추의 위엄을 세우는 데 활용된 것도 알 수 있다.
『화랑세기』는 풍월주의 전기지만 왕위 계승에 대한 문제도 많이 나오고 있다. 이는 『화랑세기』가 단순히 화랑도에 대한 사실만 전하는 기록이 아니고, 당시 최고 지배 세력들의 사회·정치적 지위를 결정하는 구체적인 기준과 실제를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랑세기』에 나오는 인물들을 통해, 그들이 위치한 씨줄과 날줄에 의해 정치적·사회적 지위가 어떻게 결정되었는지 알아낼 수 있다. 이는 『화랑세기』가 당시 신라 사회 체제를 이해하는 데 다른 어느 사서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13세 용춘공조에는 진평왕이 적자가 없어 용수를 장녀인 천명과 혼인시켜, 사위로 삼아 왕위를 물려 주려 한 것으로 나오고 있다. 결과는 사위가 아닌 공주 선덕을 왕으로 삼았다. 선덕의 뒤를 이어 진덕이 왕위를 계승했다. 이들 여왕의 즉위는 성골 신분을 가진 자들을 왕으로 삼는 원리를 지킨 것을 의미한다. 부계 계승이 지켜지는 사회에서도 한 대에 한해서 여자들이 부계 가계의 성원권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여왕의 즉위가 가능했다. 그러한 사정은 모계 계승으로 이어진 진골 정통과 대원 신통의 계승에서 남자들이 한 대에 한해 어머니의 계통을 이었던 것과 같은 원리이다. 이는 『화랑세기』나 『삼국사기』와 같은 사서에서 구체적으로 밝혀 주는 원리는 아니다. 단지 그와 같은 사서에서 찾아낸 원리가 된다.
만일 용수와 천명 사이에 아들이 있었다면 그는 진평왕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성골 신분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이미 성골 남자가 없었기에 진평왕으로서는 용수나 용춘의 아들을 왕으로 삼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아들이 다름 아니라 29대 왕인 김춘추였다. 그 때 왕실 세력으로 비록 성골은 아니지만 왕과 가장 가까운 세력은 용수·용춘이었다. 따라서 그들을 사위로 삼아 성골의 대가 끊긴 후 왕위를 이어나가는 조치를 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여왕의 즉위에 대해 반발하는 세력도 있었다. 17세 염장공은 선덕공주에게 몰래 붙어 칠숙의 난을 다스리고 그 공으로 풍월주가 된 바 있다. 그리고 24세 천관공은 낭도들을 거느리고 비담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운 바 있다. 15세 유신공조에는 유신이 왕자나 전군도 낭도가 없으면 위엄을 세울 수 없다고 해 춘추를 유신의 부제로 삼은 것을 볼 수 있다. 화랑도는 왕위 계승에 반발하는 세력을 진압했고 또 유신과 춘추의 위엄을 세우는 데 활용된 것도 알 수 있다.
『화랑세기』는 풍월주의 전기지만 왕위 계승에 대한 문제도 많이 나오고 있다. 이는 『화랑세기』가 단순히 화랑도에 대한 사실만 전하는 기록이 아니고, 당시 최고 지배 세력들의 사회·정치적 지위를 결정하는 구체적인 기준과 실제를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랑세기』에 나오는 인물들을 통해, 그들이 위치한 씨줄과 날줄에 의해 정치적·사회적 지위가 어떻게 결정되었는지 알아낼 수 있다. 이는 『화랑세기』가 당시 신라 사회 체제를 이해하는 데 다른 어느 사서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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