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여성적 매력과 강한 신념의 소유자, 마거릿 대처
1. 고향, 그랜덤
2. 철의 여인을 키운 아버지 알프레드
3. 결단력의 태동
4. 대처리즘
a. 영국병을 치료하기 위한 처방전
b. DIY 정신과 대중 자본주의
5. 신념의 정치가 대처의 지도력
a. 대처의 지도력
b. 대처의 이상향
6. 맺는말
1. 고향, 그랜덤
2. 철의 여인을 키운 아버지 알프레드
3. 결단력의 태동
4. 대처리즘
a. 영국병을 치료하기 위한 처방전
b. DIY 정신과 대중 자본주의
5. 신념의 정치가 대처의 지도력
a. 대처의 지도력
b. 대처의 이상향
6. 맺는말
본문내용
이 요구된다. 저자에 필요한 것은 자기의 논리를 상대방에게 납득시키려는 설득력과 박력이며, 후자에게는 상대방의 논리를 듣는 귀와 상대방이 말하려는 핵심을 정확히 집어내고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다.
현대의 정치가 둘 중에서 두 가지 유형의 대표적 인물을 든다면, 전자는 마거릿 대처이고 후자는 도널드 레이건이다. 마거릿 대처는 유례없는 신념의 강직성으로써 자기의 주장을 관철시켰다. 반면 레이건은 상대방의 얘기를 듣고 마음을 열어서 상대방을 매료시켜 정책 수행의 환경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마거릿 대처는 논리로써 상대방을 압도한다. 한편 레이건은 인품으로써 상대방을 매료한다.
영국의 유력 주간지의 저널리스트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영국 수상의 이름에 '이즘'(주의)이 붙여진 정치사상이 일반 명칭으로 확립된 것은 대처 수상의 대처리즘이 최초이자 최후의 예일 것이다."
처칠 전수상의 정책과 정치 유형을 '처칠형'이라고 부르기는 해도 '처칠주의'라고 한다거나 이론화된 일은 없었다. 이에 비해 대처의 정책, 사상은 지금까지 10년 동안 명확한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국내외에 정착되었다.
마거릿 대처의 특기는 신념을 현실로 옮기는 실행력이다. 자기의 주장을 정책에 옮기고 그것을 강인하게 밀고 나간다. 합의를 부정하고 대처리즘이라는 자기의 이론적인 주장을 강력하게 내걸고 있다. 그것은 여태까지 영국의 보수주의가 표방한 것들과는 매우 이질적인 것이었다.
"영국의 보수주의는 추상적인 정치이념이나 이데올로기 체계를 이룩해 본 일이 없다. 어떠한 경우라도 정부의 개입은 비참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과, 경쟁만이 나라의 부흥과 개선에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정부라면 장기적으로 그 명분을 유지시킬 수가 없을 것이다. 완전한 경제적 자유는 정치적 자유의 보장이 될 수 없으며 결국 정치적 자유를 잃을 가능성이 있다."
위의 설명은 보수주의 본류를 설명하는 길모어 경의 말인데 이를 부정하는 것이 바로 마거릿 대처였다. 다시 말하면 마거릿 대처는 보수 본류에서 벗어난 이단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단의 보수주의를 내걸고 강행군한 데에 마거릿 대처의 강력한 지도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보좌관들은 그녀를 위한 정책입안보다 그 정책을 실현시키는 데에만 힘써 주력한다. 마거릿 대처의 직선적이고 과격한 성격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속속 자리를 내놓고 떠나갔다. 그러나 결국 그러한 과정 속에서 마거릿 대처는 더욱 확고한 비중 있는 인물이 되었고 보좌관들은 빛나지 않는 그런 인물이 되고 말았다.
b. 대처의 이상향
마거릿 대처의 신념에는 그 근저에 19세기 빅토리아 여와 시대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마거릿 대처의 연설이나 인터뷰에서 자주 볼수 있는 일이었다.
"빅토리아 시대 때 영국에서 공업이나 상업이 얼마나 발전하였던가를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그 시대는 타인에 대한 의무감을 이룩하였던 때입니다. 그리하여 빅토리아 시대의 병원이나 학교 또는 형무소, 공장, 타운홀(시청사)을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빅토리아 시대처럼 번영하던 때에는 국민이 자발적으로 국가에 무엇인가로 이바지하였습니다. 지금의 국가가 운영하는 공공관리제도와 다를 바 없는 모든 학교들은 자발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국가가 운영하는 공공병원이 되어 버렸지만 그 병원들도 당시에는 개인들이 보인 자선(慈善)의 마음들로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형무소나 타운홀 같은 것도 그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대처는 국가의 복지 부문이 축소되고 스스로의 노력이나 가족의 책임, 자원봉사 그리고 서비스를 구매해야 하는 부문이 확대되더라도 만약 그것이 이용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것은 사회복지의 다른 형태일 뿐 그것이 사회복지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정책방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빅토리아 시대의 윤리의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는 그녀에게 있어 이상적인 시대였다. 그러나 그 당시는 빈부의 격차가 진전되어 가고 있었다. 노동자는 가혹한 노동 환경에 처해 있었고 아동들까지 탄광에서 알하며 학대를 받았다. 화주(Gin)의 대량 소비로 알코올 중독자가 증가하였으며 런던에서는 매춘부가 급증하여 런던 여성의 6분의 1이 그에 해당한다고 했다.
물론 대처가 말하는 것은 이러한 사회의 어두운 면이 아니라 산업이 번영하고 중류계급은 창의와 노력만 있으면 부유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던 시절이었다는 의미에서이다. 노력과 재능으로 사회적 상승의 계단을 오를 수 있는 시대야말로 마거릿 대처에게 있어 이상의 시대였다. 이 시대의 중간계급은 경건하며 엄정한 도덕을 갖추었고 '건전한 가정'을 지상의 가치로 삼았다.
그래서 대처 정권은 70년대까지의 지나친 자유풍조나 프리섹스의 풍조에 제동을 걸고 전통적인 윤리와 가족 윤리의 부활을 내세웠다. 그녀는 취임하자마자 법과 질서의 중요성을 호소하여 경찰관, 군인 등 이른바 '체제의 파수꾼'에 대한 대우 개선을 추진하여 그들의 봉급을 대폭 올려주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1988년에 내걸었던 '좋은 시민이 되자'라는 캠페인은 빅토리아 시대의 전통적인 도덕관의 부활을 상기시켜 사회적 방만과 무질서를 허락하지 않는 엄격한 주부의 이미지를 보여 주기도 했다.
6. 맺는말
우리는 대처의 생애를 살펴봄으로써 그녀의 자질을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그녀의 굳은 신념과 확신에 찬 결정, 그리고 확고한 추진력은 그녀가 자라나면서 이룩해온 그녀 가정교육의 산물인 것이다. 그녀도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타인들도 그것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대처의 확고한 지도력은 가장 어려운 시기의 영국을 구원하는 구세주 같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12년 집권기간동안 영국은 세계2차대전 이후에 봉착한 갖가지 문제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대처는 국가 중대사의 어느 한가지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며, 한번 결정한 일은 끝까지 밀고 나가는 추진력을 가졌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그 이상향을 두고, 실체적인 파악을 했다는 것이다.
대처는 강력한 지도자의 한 획을 그으므로써 우리들의 세계에 대처리즘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탄생시켰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여성 1위에 뽑힌 대처는 시대가 낳은 인물이지 않을 수 없다.
현대의 정치가 둘 중에서 두 가지 유형의 대표적 인물을 든다면, 전자는 마거릿 대처이고 후자는 도널드 레이건이다. 마거릿 대처는 유례없는 신념의 강직성으로써 자기의 주장을 관철시켰다. 반면 레이건은 상대방의 얘기를 듣고 마음을 열어서 상대방을 매료시켜 정책 수행의 환경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마거릿 대처는 논리로써 상대방을 압도한다. 한편 레이건은 인품으로써 상대방을 매료한다.
영국의 유력 주간지의 저널리스트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영국 수상의 이름에 '이즘'(주의)이 붙여진 정치사상이 일반 명칭으로 확립된 것은 대처 수상의 대처리즘이 최초이자 최후의 예일 것이다."
처칠 전수상의 정책과 정치 유형을 '처칠형'이라고 부르기는 해도 '처칠주의'라고 한다거나 이론화된 일은 없었다. 이에 비해 대처의 정책, 사상은 지금까지 10년 동안 명확한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국내외에 정착되었다.
마거릿 대처의 특기는 신념을 현실로 옮기는 실행력이다. 자기의 주장을 정책에 옮기고 그것을 강인하게 밀고 나간다. 합의를 부정하고 대처리즘이라는 자기의 이론적인 주장을 강력하게 내걸고 있다. 그것은 여태까지 영국의 보수주의가 표방한 것들과는 매우 이질적인 것이었다.
"영국의 보수주의는 추상적인 정치이념이나 이데올로기 체계를 이룩해 본 일이 없다. 어떠한 경우라도 정부의 개입은 비참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과, 경쟁만이 나라의 부흥과 개선에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정부라면 장기적으로 그 명분을 유지시킬 수가 없을 것이다. 완전한 경제적 자유는 정치적 자유의 보장이 될 수 없으며 결국 정치적 자유를 잃을 가능성이 있다."
위의 설명은 보수주의 본류를 설명하는 길모어 경의 말인데 이를 부정하는 것이 바로 마거릿 대처였다. 다시 말하면 마거릿 대처는 보수 본류에서 벗어난 이단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단의 보수주의를 내걸고 강행군한 데에 마거릿 대처의 강력한 지도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보좌관들은 그녀를 위한 정책입안보다 그 정책을 실현시키는 데에만 힘써 주력한다. 마거릿 대처의 직선적이고 과격한 성격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속속 자리를 내놓고 떠나갔다. 그러나 결국 그러한 과정 속에서 마거릿 대처는 더욱 확고한 비중 있는 인물이 되었고 보좌관들은 빛나지 않는 그런 인물이 되고 말았다.
b. 대처의 이상향
마거릿 대처의 신념에는 그 근저에 19세기 빅토리아 여와 시대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마거릿 대처의 연설이나 인터뷰에서 자주 볼수 있는 일이었다.
"빅토리아 시대 때 영국에서 공업이나 상업이 얼마나 발전하였던가를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그 시대는 타인에 대한 의무감을 이룩하였던 때입니다. 그리하여 빅토리아 시대의 병원이나 학교 또는 형무소, 공장, 타운홀(시청사)을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빅토리아 시대처럼 번영하던 때에는 국민이 자발적으로 국가에 무엇인가로 이바지하였습니다. 지금의 국가가 운영하는 공공관리제도와 다를 바 없는 모든 학교들은 자발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국가가 운영하는 공공병원이 되어 버렸지만 그 병원들도 당시에는 개인들이 보인 자선(慈善)의 마음들로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형무소나 타운홀 같은 것도 그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대처는 국가의 복지 부문이 축소되고 스스로의 노력이나 가족의 책임, 자원봉사 그리고 서비스를 구매해야 하는 부문이 확대되더라도 만약 그것이 이용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것은 사회복지의 다른 형태일 뿐 그것이 사회복지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정책방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빅토리아 시대의 윤리의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는 그녀에게 있어 이상적인 시대였다. 그러나 그 당시는 빈부의 격차가 진전되어 가고 있었다. 노동자는 가혹한 노동 환경에 처해 있었고 아동들까지 탄광에서 알하며 학대를 받았다. 화주(Gin)의 대량 소비로 알코올 중독자가 증가하였으며 런던에서는 매춘부가 급증하여 런던 여성의 6분의 1이 그에 해당한다고 했다.
물론 대처가 말하는 것은 이러한 사회의 어두운 면이 아니라 산업이 번영하고 중류계급은 창의와 노력만 있으면 부유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던 시절이었다는 의미에서이다. 노력과 재능으로 사회적 상승의 계단을 오를 수 있는 시대야말로 마거릿 대처에게 있어 이상의 시대였다. 이 시대의 중간계급은 경건하며 엄정한 도덕을 갖추었고 '건전한 가정'을 지상의 가치로 삼았다.
그래서 대처 정권은 70년대까지의 지나친 자유풍조나 프리섹스의 풍조에 제동을 걸고 전통적인 윤리와 가족 윤리의 부활을 내세웠다. 그녀는 취임하자마자 법과 질서의 중요성을 호소하여 경찰관, 군인 등 이른바 '체제의 파수꾼'에 대한 대우 개선을 추진하여 그들의 봉급을 대폭 올려주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1988년에 내걸었던 '좋은 시민이 되자'라는 캠페인은 빅토리아 시대의 전통적인 도덕관의 부활을 상기시켜 사회적 방만과 무질서를 허락하지 않는 엄격한 주부의 이미지를 보여 주기도 했다.
6. 맺는말
우리는 대처의 생애를 살펴봄으로써 그녀의 자질을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그녀의 굳은 신념과 확신에 찬 결정, 그리고 확고한 추진력은 그녀가 자라나면서 이룩해온 그녀 가정교육의 산물인 것이다. 그녀도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타인들도 그것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대처의 확고한 지도력은 가장 어려운 시기의 영국을 구원하는 구세주 같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12년 집권기간동안 영국은 세계2차대전 이후에 봉착한 갖가지 문제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대처는 국가 중대사의 어느 한가지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며, 한번 결정한 일은 끝까지 밀고 나가는 추진력을 가졌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그 이상향을 두고, 실체적인 파악을 했다는 것이다.
대처는 강력한 지도자의 한 획을 그으므로써 우리들의 세계에 대처리즘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탄생시켰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여성 1위에 뽑힌 대처는 시대가 낳은 인물이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