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불상조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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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머리말

Ⅱ 한국불상의 특징

Ⅲ 삼국시대의 불상
1 고구려 불상
2 백제 조각
3 고 신라 조각

Ⅳ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1 새로운 조각양식의 대두
2 사실조각의 극치
3 신라하대의 조각

Ⅴ 고려의 불교조각

Ⅵ 덤덤한 조선의 불교조각

참고문헌

본문내용

등이 있다.
오랜 귀족사회의 지속은 여러 가지 폐단을 몰고 왔다. 문벌귀족들의 지나친 세력 팽창과 광대한 토지의 겸병(兼倂)으로 인한 경제구조의 파탄으로 고려 사회는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이 가운데 무신들의 사회적·경제적 지위의 격하가 가장 심각한 문제였는데, 1170년에는 결국 이러한 모순이 무신난이라는 혁명을 초래하였다. 힘이 사회의 척도였던 당대 사회에서 무신들은 전대(前代)보다 더 막대한 장원(莊園)을 소유하는 노골적인 문벌사회가 전개된다. 이 무인시대(武人時代)의 사상은 전대(前代)의 교종(敎宗)에 대신하여 선종(禪宗)이 대세(大勢)를 잡았는데, 보조국사(普照國師)의 조계종(曹溪宗)이 득세하게 되었다.
몽고의 침입에 항거하여 오랜 세월 동안 투쟁하던 고려는 1270년부터 몽고의 영향권에 들게 되는데 이 시기에는 원(元)나라의 영향이 대단히 컸다. 원(元)나라의 선종(禪宗)인 임제종(臨濟宗)의 유행과 함께 신유학(新儒學)인 성리학이 서서히 대두되기 시작하여 사회의 엘리트로 성리학자인 사대부들이 급속히 성장하게 되었다. 이들 신진사대부 계층의 득세로 마침내 고려는 망하고 조선 왕조가 개창 되었다. 이러한 불교국가시대였던 고려에는 수많은 사원이 건립되었고, 여기에는 질과 양 모든 면에서 뛰어난 불상들이 조성되어 고려시대 역시 조각계는 불상이 주종을 이룬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시기의 양식은 몽고의 영향이 강하여진 1276년을 전후로 나눌 수 있지만, 현재는 뒷시대의 불상들만 남아 있기 때문에 우선 이 시대 양식을 고려후기양식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 시대의 주류적인 양식은 개운사(開運寺) 목아미타불상(木阿彌陀佛像), 봉림사(鳳林寺) 목아미타불상(木阿彌陀佛像), 문수사금동불상(文殊寺金銅佛像), 장곡사금동불상(長谷寺金銅佛像)등에서 보이듯이 단아하고 귀족적인 특징이 표현된 이른바 단아한 신사실적(新事實的) 양식(樣式)이며, 이와 함께 원(元)나라 양식의 영향을 받은 금강산출토(金剛山出土) 금동보살상(金銅菩薩像) 계통도 약간 보이며, 전대(前代)의 추상적 특징의 전통이 계승된 석불상들도 보이고 있어서 다양한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Ⅵ. 덤덤한 朝鮮의 彫刻
조선 태조(太祖 : 1329∼1398)가 위화도회군이라는 쿠데타를 기점으로 마침내 고려를 없애고 조선을 건국한 것이 1392년의 일이었다. 조선의 성립에는 이처럼 군사적인 쿠데타가 크게 작용하였지만 그러나 군사력만으로 나라가 쉽게 교체되는 것이 아닌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이 보다 새로운 왕조를 뒷받침할 수 있는 조직적인 세력이 무엇보다도 필수적인 일다. 이 조직이 말하자면 신유교인 성리학(性理學)으로 무장한 신진사대부 계층인 것이다. 이 사대부 계층이 조선사회의 사상·정치·경제·문화를 움직여 나간 주역들이 된 것이다.
이들을 흔히 양반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그들의 이상이 문관(文官)이나 무관(武官)등 관리로 등용되어 이상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며 따라서 이들 계층을 양반사대부(兩班士大夫)라 한다. 양반사대부에는 여기에 알맞은 문화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바로 성리학적인 유교문화였으니 전시대의 불교문화와는 현격하게 차이나는 것이었다. 덕치국가(德治國家)라는 이상사회의 실현을 지상 목표로 삼은 조선은 그 문화면에서 이점을 여실히 반영하였느니 문인화나 화원화 등 회화에서나 양반사회의 지주인 제사용의 도자기공예, 문방사우 등 목공예 등의 미술에서 소박과 생략, 절제와 이상의 미를 실현시킨 점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극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세종, 세조, 중종 때의 왕실이나 사대부들의 개인적인 신앙과 대다수 민중들의 열렬한 믿음에 힘입어 한정된 사원에서나마 불사(佛事)들이 때때로 이루어져 불상 조각이 다소 유행하였던 점은 조선 조각사에 다소의 광명이었다. 여기에 역대 왕릉 내지 사대부 분묘의 무덤 조각들도 당대 조각계의 중요한 구심점이 되기도 했다.
양반사대부 사회의 지나친 문치주의로 결국 1592년 임진왜란과 1636년 병자호란 같은 대대적인 침략을 당하고 말며, 이러한 격전을 겪으면서 현실 사회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 움터 실학(實學)이 성행하게 된다. 말하자면 정치, 경제, 사상등 조선사회의 AHMS 면에서 실용적인 면을 중시하는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시대가 조선후기 사회의 전개인 셈이다. 더구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발언권이 신장된 불교계에는 사회가 안정된 숙종에서 영·정조시대 문예부흥기 때부터 불사운동이 활발히 전개된다. 전쟁에 의해서 파괴된 절들의 대대적인 중수와 억불정책 때문에 폐사된 절들의 복구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불상·불화의 조성이 일대 붐을 일으킨다. 오늘날 전하고 있는 각 사원들의 수많은 불상 조각들은 모두 이 문예 부흥기 때 조성된 것들인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조선시대에는 크게 두 시기로 대별되는데 조각사도 여기에 어느 정도 부합되면서 전개되고 있는 것 같다. 즉, 조선 조각은 크게 전기(前期)와 후기(後期) 등 두 시기로 구분되어 변천한다는 말이다.
전기(前期)는 1392년부터 1591년까지인데 앞 시대의 옛 양식이 짙게 영향하고 아울러 중국 명나라 양식도 받아들이게 되지만 불교의 억압으로 조상활동은 그렇게 활발하지 못한 것 같다. 이 당시 조각은 단아 소박한 양식이 유행했는데 흑석사 목아미타불상, 무위사 목아미타3존상, 수종사 불상, 기림사 건칠보살상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후기(後期)는 1592년부터 1910년까지인데 역시 앞 시대 양식 또는 다소간 중국 당(唐)나라 양식도 영향했으며 조각 활동도 활기를 띄게 되는데 무량사 소조불상, 전주 송광사 소조삼존불상, 용문사 목불상과 목탱, 삼막사 마애불상 같은 형식적인 조각이 성행하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황 수영, 한국의 불상, 서울 : 문예출판사, 1989.
김 상룡, 미륵불, 서울 : 대원출판사, 1991.
최 성은, 철불, 서울 : 대원출판사, 1995.
진 홍섭, 금동불, 서울 : 대원출판사, 1992.
문 명대, 마애불, 서울 : 대원출판사, 1991.
박 도화, 보살상, 서울 : 대원출판사, 1990.
박 찬수, 불교목공예, 서울 : 대원출판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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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05.31
  • 저작시기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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