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불국사의 기록들로 본 역사
2. 불국사의 국보들
3. 불국사 건물 소개
2. 불국사의 국보들
3. 불국사 건물 소개
본문내용
사덕의 향을 불어대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이 탑은 사천왕의 궁전에 닿았고, 三十三天이 만다라(曼陀羅)의 꽃을 비오듯 뿌린다고 하였다. 법화경에는 법신인 다보여래가 석가여래께서 진리를 설하는 것을 보고 찬양한 후 다보탑 안의 다보여래의 자리를 반쪽 비워 같이 나란히 앉도록 한다고 되어 있다. 다보여래는 法身佛이며, 석가여래는 報身佛을, 시방삼세의 분신불들은 화신불(化身佛)을 상징한다고 볼 수가 있다. 法身佛은 보이지 않는 본체로 항상 우리 곁에 있고 그 마음이 化身佛, 즉 변화하여 나타나 우리를 변화시키는 부처님이다. 현실 세계에서의 구체적인 리더는 報身佛인 것이다.
인간들이 영원한 부처의 음성을 듣고 그 의식 구조를 완전히 바꾸게 되면 그 인간이 살고 있는 현실이 바로 불국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불국사를 이렇게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가 있다.
다보탑은 사면에 8층 계단을 가설한 삼층탑으로 탑의 높이는 10.4m이며 국보 제20호로 지정돼 있다. 1층은 사각 기와집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사람의 형태이다. 부처님의 법계(法界)에는 사각형이 없다. 사각은 인간에게만 있다. 집도 사각이요. 책상도 사각으로, 사각이란 나만 아는 융통성이 없는 인간의 형태이다. 3층은 둥근 연꽃모양으로 된 누각집이다.
둥근 원은 축조되었을 때는 한 개의 점이지만 확대되면 온 누리가 되는 무한한 형태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세계를 원융(圓融)의 세계라 하는 것이다.네모난 인간이 어떻게 부처님의 원융의 세계에 다다를 수 있을까? 열심히 도를 닦고 정진해야 한다. 그래서 한모한모 떨쳐 버리면 8각이 된다. 4각의 인간들은 8각을 거쳐야 원융의 세계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다보탑의 2층은 8각으로 되어 있다. 3층을 덮고 있는 8각 옥개석(屋蓋石)은 더욱 아름답다. 이 8각 지붕에는 귀마다 풍경이 달려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구멍이 뚫려 있다. 8각 지붕 위에는 노반, 복말, 앙화, 세 개의 보륜, 보개 등 12개의 석재가 차례로 쌓아져 있는데 그 모양이 모두 다르다.
다보탑은 이렇게 다양한 변화가 하나로 조화를 이룬 교향악을 열어놓은 듯한 아름다운 탑이다. 다보탑은 다른 탑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통일신라 최전성기의 화려한 탑으로 완전히 규범에서 벗어나 참신하고 기발한 착상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각 부분의 조각 수법에 있어서도 마치 목조구조물을 보는 듯 아름답다.다보탑의 본 이름은 다보여래 상주 증명탑(多寶如來常主 證明塔)이다.
사각의 기와집 앞에 놓인 돌사자는 원래 네 마리였으나 일제 강점기에 망실되고 지금은 한 마리만 남아 있다.
흙을 주무르듯 돌을 잘 구슬리고 다듬어낸 것이 다보탑의 솜씨라면, 석가탑의 솜씨는 커다란 통 돌의 크기를 줄이면서 깔끔하게 상승하는 느낌을 만들어낸 것이다.즉, 다보탑이 여성적 부드러움을 지닌 장식적 석탑이라면 석가탑은 간결장중한 남성적 조형미를 지닌 천하의 명품이다.
# 5. 자하문,청운교, 백운교
구름 위에 날개를 펼친 듯 경쾌하게 범영루와 좌경루가 솟아 있는 석단 중앙에 힘차게 내뻗은 계단이 있다. 대웅전을 올라가는 이 계단은 구성을 2단계로 하고 있는데 아래에 있는 길이 6.3m되는 계단을 백운교라 하고 위에 있는 길이 5.4m 되는 계단을 청운교라 한다.
이 계단은 모두 33개로 구성되었다. 이것은 부처님이 계신 도리천을 의미하고 있다. 33이라는 숫자는 욕계(欲界) 제2천(天)인 33천을 상징하는 것이다.
즉, 도리천을 구성하고 있는 33천은 온갖 욕심과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속세를 떠나 천상의 부처님 세계로 인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이 계단을 오르는 것은 바로 고통과 좌절로부터 희망과 환희로 나아가는 것이다.
백운교와 청운교에는 가운데와 양가로 세 줄의 긴 장대석이 놓여있다. 하늘을 향해 세 줄로 힘차게 그어진 맑은 선을 볼 때 자신도 모르게 불국으로 향해 발을 옮기고 싶어진다. 불국토를 향하고자하는 희망을 표현하기 위하여 청운교 밑에는 무지개처럼 둥근 들보 모양으로 만들어진 홍예문으로 장식되어 있다.
홍예문은 고요하고 안정된 긴 석축에 둥근 곡선으로 변화를 일으켜 전체적인 조화와 생동하는 기운을 불어넣은 것이기도 하다.
# 6. 안양문, 극락전
연화·칠보의 두 다리를 올라서서 안양문을 지나면 극락전에 이른다. 아미타불(阿彌陀佛)(또는 무량수불(無量壽佛))이 계시는 서방의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상징하는 성역(聖域)이다.
안양(安養)이란 바로 이 극락 정토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에 그 문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극락전을 중심으로 이 일곽은 경덕왕 10년에 지어졌다.
그 당시에는 극락전을 전후 좌우로 두르는 회랑을 비롯하여 석등 및 많은 건물과 석조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극락세계의 상징적 표현이었던 이 건물들은 대부분이 1593년 왜란 때에 방화로 불타 버렸고, 지금의 연화교,칠보교를 비롯한 석조물만이 남아있다.
안양문을 넘어서면 극락전에 이른다. 견고한 석단 위에 목조로 세워진 극락전은 임진왜란으로 불타 버린 후 근 200년 만인 영조 26년에 중창되었고, 1925년 일제하에 다시 중수되었다.
아미타여래 좌상은 금동불(金銅佛)로서 높이 1.8m, 머리 높이 48cm이며, 무릎의 넓이는 1.25m이다. 자비스럽고 원만한 얼굴은 정면을 정시(正視)하였고 어깨는 가사(袈裟)를 걸쳤고 오른손을 가볍게 오른쪽 무릎에 얹었다. 왼손은 손바닥을 벌리고 가운데 손가락을 굽혀 설법하는 모습을 표시하고 있다. 원래 아미타불(阿彌陀佛)이란 산스크리트 어 <아미타아바>(Amitbh무량한 빛) 또는 <아미타아유스> (Amityus 한량없는 목숨)의 음역이다.한문으로는 무량수(無量壽) 또는 무량광(無量光)이라고 번역되었다. 그 부처님이 태양이 지는 서쪽에 있는 지극히 행복한 나라에 계신다고 하여 그 나라를 극락정토(極樂淨土)라고 불렀다.
아미타불은 그 좌, 우에 각각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동반하며, 이 두 보살로 하여금 중생들을 돕게 하시는 부처님이다. 따라서 이 부처님을 모신 곳을 극락전(極樂殿) 또는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 부른다. 금동아미타여래 좌상은 국보 제 27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하여, 이 탑은 사천왕의 궁전에 닿았고, 三十三天이 만다라(曼陀羅)의 꽃을 비오듯 뿌린다고 하였다. 법화경에는 법신인 다보여래가 석가여래께서 진리를 설하는 것을 보고 찬양한 후 다보탑 안의 다보여래의 자리를 반쪽 비워 같이 나란히 앉도록 한다고 되어 있다. 다보여래는 法身佛이며, 석가여래는 報身佛을, 시방삼세의 분신불들은 화신불(化身佛)을 상징한다고 볼 수가 있다. 法身佛은 보이지 않는 본체로 항상 우리 곁에 있고 그 마음이 化身佛, 즉 변화하여 나타나 우리를 변화시키는 부처님이다. 현실 세계에서의 구체적인 리더는 報身佛인 것이다.
인간들이 영원한 부처의 음성을 듣고 그 의식 구조를 완전히 바꾸게 되면 그 인간이 살고 있는 현실이 바로 불국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불국사를 이렇게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가 있다.
다보탑은 사면에 8층 계단을 가설한 삼층탑으로 탑의 높이는 10.4m이며 국보 제20호로 지정돼 있다. 1층은 사각 기와집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사람의 형태이다. 부처님의 법계(法界)에는 사각형이 없다. 사각은 인간에게만 있다. 집도 사각이요. 책상도 사각으로, 사각이란 나만 아는 융통성이 없는 인간의 형태이다. 3층은 둥근 연꽃모양으로 된 누각집이다.
둥근 원은 축조되었을 때는 한 개의 점이지만 확대되면 온 누리가 되는 무한한 형태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세계를 원융(圓融)의 세계라 하는 것이다.네모난 인간이 어떻게 부처님의 원융의 세계에 다다를 수 있을까? 열심히 도를 닦고 정진해야 한다. 그래서 한모한모 떨쳐 버리면 8각이 된다. 4각의 인간들은 8각을 거쳐야 원융의 세계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다보탑의 2층은 8각으로 되어 있다. 3층을 덮고 있는 8각 옥개석(屋蓋石)은 더욱 아름답다. 이 8각 지붕에는 귀마다 풍경이 달려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구멍이 뚫려 있다. 8각 지붕 위에는 노반, 복말, 앙화, 세 개의 보륜, 보개 등 12개의 석재가 차례로 쌓아져 있는데 그 모양이 모두 다르다.
다보탑은 이렇게 다양한 변화가 하나로 조화를 이룬 교향악을 열어놓은 듯한 아름다운 탑이다. 다보탑은 다른 탑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통일신라 최전성기의 화려한 탑으로 완전히 규범에서 벗어나 참신하고 기발한 착상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각 부분의 조각 수법에 있어서도 마치 목조구조물을 보는 듯 아름답다.다보탑의 본 이름은 다보여래 상주 증명탑(多寶如來常主 證明塔)이다.
사각의 기와집 앞에 놓인 돌사자는 원래 네 마리였으나 일제 강점기에 망실되고 지금은 한 마리만 남아 있다.
흙을 주무르듯 돌을 잘 구슬리고 다듬어낸 것이 다보탑의 솜씨라면, 석가탑의 솜씨는 커다란 통 돌의 크기를 줄이면서 깔끔하게 상승하는 느낌을 만들어낸 것이다.즉, 다보탑이 여성적 부드러움을 지닌 장식적 석탑이라면 석가탑은 간결장중한 남성적 조형미를 지닌 천하의 명품이다.
# 5. 자하문,청운교, 백운교
구름 위에 날개를 펼친 듯 경쾌하게 범영루와 좌경루가 솟아 있는 석단 중앙에 힘차게 내뻗은 계단이 있다. 대웅전을 올라가는 이 계단은 구성을 2단계로 하고 있는데 아래에 있는 길이 6.3m되는 계단을 백운교라 하고 위에 있는 길이 5.4m 되는 계단을 청운교라 한다.
이 계단은 모두 33개로 구성되었다. 이것은 부처님이 계신 도리천을 의미하고 있다. 33이라는 숫자는 욕계(欲界) 제2천(天)인 33천을 상징하는 것이다.
즉, 도리천을 구성하고 있는 33천은 온갖 욕심과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속세를 떠나 천상의 부처님 세계로 인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이 계단을 오르는 것은 바로 고통과 좌절로부터 희망과 환희로 나아가는 것이다.
백운교와 청운교에는 가운데와 양가로 세 줄의 긴 장대석이 놓여있다. 하늘을 향해 세 줄로 힘차게 그어진 맑은 선을 볼 때 자신도 모르게 불국으로 향해 발을 옮기고 싶어진다. 불국토를 향하고자하는 희망을 표현하기 위하여 청운교 밑에는 무지개처럼 둥근 들보 모양으로 만들어진 홍예문으로 장식되어 있다.
홍예문은 고요하고 안정된 긴 석축에 둥근 곡선으로 변화를 일으켜 전체적인 조화와 생동하는 기운을 불어넣은 것이기도 하다.
# 6. 안양문, 극락전
연화·칠보의 두 다리를 올라서서 안양문을 지나면 극락전에 이른다. 아미타불(阿彌陀佛)(또는 무량수불(無量壽佛))이 계시는 서방의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상징하는 성역(聖域)이다.
안양(安養)이란 바로 이 극락 정토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에 그 문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극락전을 중심으로 이 일곽은 경덕왕 10년에 지어졌다.
그 당시에는 극락전을 전후 좌우로 두르는 회랑을 비롯하여 석등 및 많은 건물과 석조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극락세계의 상징적 표현이었던 이 건물들은 대부분이 1593년 왜란 때에 방화로 불타 버렸고, 지금의 연화교,칠보교를 비롯한 석조물만이 남아있다.
안양문을 넘어서면 극락전에 이른다. 견고한 석단 위에 목조로 세워진 극락전은 임진왜란으로 불타 버린 후 근 200년 만인 영조 26년에 중창되었고, 1925년 일제하에 다시 중수되었다.
아미타여래 좌상은 금동불(金銅佛)로서 높이 1.8m, 머리 높이 48cm이며, 무릎의 넓이는 1.25m이다. 자비스럽고 원만한 얼굴은 정면을 정시(正視)하였고 어깨는 가사(袈裟)를 걸쳤고 오른손을 가볍게 오른쪽 무릎에 얹었다. 왼손은 손바닥을 벌리고 가운데 손가락을 굽혀 설법하는 모습을 표시하고 있다. 원래 아미타불(阿彌陀佛)이란 산스크리트 어 <아미타아바>(Amitbh무량한 빛) 또는 <아미타아유스> (Amityus 한량없는 목숨)의 음역이다.한문으로는 무량수(無量壽) 또는 무량광(無量光)이라고 번역되었다. 그 부처님이 태양이 지는 서쪽에 있는 지극히 행복한 나라에 계신다고 하여 그 나라를 극락정토(極樂淨土)라고 불렀다.
아미타불은 그 좌, 우에 각각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동반하며, 이 두 보살로 하여금 중생들을 돕게 하시는 부처님이다. 따라서 이 부처님을 모신 곳을 극락전(極樂殿) 또는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 부른다. 금동아미타여래 좌상은 국보 제 27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