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과제를 들어서며........
2.이학의 형성배경
3.이학의 전개
4.이학의 집대성
5.결론
2.이학의 형성배경
3.이학의 전개
4.이학의 집대성
5.결론
본문내용
타인의 저서에 주석하는 것을 비판하고 깊고 투철한 사색만이 참다운 수양법 이라고 주장하였다. 육구연은 자기 마음이 곧 전우주라고 인정할 만큼 철두철미한 유심론자로서 그의 학풍은 명대에 이르어 왕양명에게 계승되고 집대성되었으며 후세에 육왕학파 라 하여 주자학파와 더불어 사상계에 하나의 원류를 이루게 되었다.하지만 주자는 역시 경서 자체의 절대적인 가치를 인정하고 그 가르침을 신봉하였다. 주자의 수양론의 중심적 구호는 거경궁리' (마음을 공경의 상태에 두고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아는것) 이었다. 이 ‘궁리’의 제창은 (대학) 에서 말하는 ‘격물치지’의 해석과 결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궁리를 위한 수단으로서는 도서 특히 경서를 읽는것이 매우 붕요한 일이라고 하고 있다. 이 점에서도 경서에 대한 주자학의 의존도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잇다. 그런데 명나라의 옥수인(양명) 이르러서는 이와는 상당히 차이가 생기게 된다. 왕양명도 역시 이른바 이기· 심성을 논하고 성인이 되는 것을 학문의 목적으로 하였다. 하지만 이 성인이 되기 위한 수양법이 주자처럼 지적인 것이 아니고 따라서 그렇게 번쇠하지가 않다. 왕양명의 수양론의 중심적인 구호는 ‘치양지’(양지를 이룩한다) 이다. 치양지란 매일매일의 행위 가운데 양지를 실현하는 즉 양지가 명하는 대로 행위를 바르게 행하면 된다는 것이다. 극히 간명하여 오로지 실천을 통한 마음의 스련을 가장 중시하는 입장에 선다. 주자의 ‘거경궁리’ 의 ‘거경’ 은 마음 공부에 관한 행적인 면, ‘궁리’는 지적인 면이라고 일단 나누어 볼 수 있다. 수양의 순서로서는 지가 앞이고 행이 뒤이며 중요성으로 말하면 행이 비중이 높다는 것이 주자의 견해이다. 이에 대하여 왕양명은 ‘지행합일’ 을 말하며 지와 행을 나누지 않는다. 행하지 않으면 진실로 앎이 없으며 대저 앎이란 이에 이미 행한 것의 일부분 이라는 사고방식으로 행동의 측면을 매우 중시한다. 이,기 에 의한 우주론이나 인생론의 이론적인 측면에 대하여는 별로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수양의 학문으로서의 성리학의 성격을 극단에까지 밀고간 것이다. 실천을 통한 마음의 수련,인격적 수양 이라는 사항은 극히 주체적인 그사람 독자의 개인적 경험에 속한다. 예컨데 그것이 경서 및 기타의 가르침에 따라 이루어진 경우라 하더라도 문자 그대로 ‘자득’ ‘심득’ 의 학문에 어울리는 것이다. 특히 왕양명의 경우는 마음의 양지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오로지 순수하게 양지가 지시하는 대로 행동하면 된다고 하므로 양지 이상으로 권위 있는 것은 없다. 경서나 공자의 권위도 자기의 마음 혹은 양지를 능가 하지는 않는다. 사실 와양명은 ‘육경’ 은 모두 내 마음의 기록이다. 그리고 육경의 실은 내마음에 갖추어져 있다. ‘학은 마음에 얻음은 귀하게 여긴다. 마음에서 구하여 옳지 않으면 그 말이 비록 공자에게서 나왔다 하더라도 감히 그것을 옳다고 하지 않는다 ’ 라고 하는 등의 말을 하고 있다. 다만 주자와 동시대인 육상산이 ‘학은 진실로 근본을 안다면 육경이 모두 나의 각주이다’ ‘육경이 나를 주석한다. 내가 육경을 주석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한 이래 이른바 심학도 들이 이와 비슷한 말을 자주 하였다. 심학은 일반적으로 마음의 가치를 크게 인정 하는데에서 그 마음의 소유자인 ‘아’ 의 주체성을 강조 하므로 마음 내지 나의 권위에 대해 경서의 권위를 상대적으로 낮게 보려고 하는 말을 자주 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발언은 경서도 마음에서 자득하여 실천하지 않으면 무가치 하다고 하는 취지이며 오히려 경서의 가르침을 충실히 신봉 하여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반듯 겉으로 보이는 만큼 경서의 권위를 부정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왕야명의 경우는 그 이전의 심학 계열 학자들의 사고 방식에 비해 심과 양지의 권위를 절대시 하는 ( 그 반면 경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점에서 가장 두드러진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주자는 심이 미발한 경우에는 여기에 성'의 갖추어져 있어서 성은 인 의 예 지의 사덕을 갖추고 있지만,이발의 경우에는 측은, 수오, 사양, 시비의 사단으로서 발현한다고 하여 인은 온화자애의 도리, 의는 단제표인 의 도리, 예는 공경존절의 도리,지는 분별시비의 도리 라고 규정하였다. 원래 성에는 형태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사단이라는 정에서 거 구로 추론하여 사덕이라는 성이 있음을 알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인간의 정은 사단처럼 반드시 올바르게 발동한다고는 볼 수 없다. 뜻대로 안 되는 것이다. 종종 인의예지의 궤도를 이탈한다. 여기에서 인심,도심의모순이 일어나고 성정이 서로 어긋나게 된다.왜 그렇게 되는가 하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사욕'이었기 때문이다. 주자의 의식론은 이 사욕에서 벗어나 사욕을 억제하고 본성을 회복하면 된다고 한다. 앞에서 보았듯이 인의예지는 성의 대강이며,성은 만리를 포함한다.허영불미하여 만사에 응하는 심이 민리를 갖추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만리는 주체인 심이 지닌 소당연지칙'이며 그것은 인의 예지로 총괄할 수 있다. 인의 예지는 인으로 총괄되고 인은 성과 등치되며 성은 태극운연의 체가 된다. 이것은 소이연지고'이며 이러한 태극의 이가 인간의 존재방식인 인의 예지 기타의 이가 되어 나타난다.<인설> <옥산강의>는 모두 이 인의 예지를 천지, 자연의 원, 형, 이, 정과 등치시키고 있다. 원형리정은 원으로 총괄되어 인이 되는 것이므로 존재의 궁극은 주체의 궁극과 합일한다. 주자의 성정론은 정이천의 인은 성, 애는 정'이라는 설과 장횡거의 성은 성정을 표한다.'라는 설을 합한것으로, 성즉리'이다.
5. 결론
주돈이가 신유학의 선구자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사상에 모순점이 있으며 형이상학적이며 우주론적에 관심을 너무 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우리 우주의 성립에 대해 어느 정도 체계적으로 만든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며 그 시대의 유학으로서는 조금의 모순를 제외하고는 거의 완벽하다고 할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주자 또한 여러 다른 학파와 사람의 도움으로 주자학을 집대성 했을 것이다. 그렇게 집대성한 주자학 역시 너무도 완벽했기에 송대의 송학은 더 이상 발전을 하지 못한 것 같다.
5. 결론
주돈이가 신유학의 선구자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사상에 모순점이 있으며 형이상학적이며 우주론적에 관심을 너무 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우리 우주의 성립에 대해 어느 정도 체계적으로 만든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며 그 시대의 유학으로서는 조금의 모순를 제외하고는 거의 완벽하다고 할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주자 또한 여러 다른 학파와 사람의 도움으로 주자학을 집대성 했을 것이다. 그렇게 집대성한 주자학 역시 너무도 완벽했기에 송대의 송학은 더 이상 발전을 하지 못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