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신화의 개념
Ⅱ. 단군신화
1.내용
2.소재의 상징성
*단군논쟁 쟁점의 6가지 차원
*단군논쟁을 벌이는 2부류
신화의 정의
신화분석
Ⅲ. 주몽신화
1.내용
2.소재의 상징성
*고구려의 건국
Ⅳ. 백제 건국신화- 온조
1.내용
2.소재의 상징성
Ⅴ. 박혁거세의 탄생신화
1.내용
2.소재의 상징성
Ⅱ. 단군신화
1.내용
2.소재의 상징성
*단군논쟁 쟁점의 6가지 차원
*단군논쟁을 벌이는 2부류
신화의 정의
신화분석
Ⅲ. 주몽신화
1.내용
2.소재의 상징성
*고구려의 건국
Ⅳ. 백제 건국신화- 온조
1.내용
2.소재의 상징성
Ⅴ. 박혁거세의 탄생신화
1.내용
2.소재의 상징성
본문내용
이 기둥을 받치고 있었다. '일곱 고개 일곱 골짜기란 일곱 모가 난 기둥과 주춧돌이고 돌 위 소나무란 기둥이 아닐 까?' 정신이 번쩍 든 유리가 기둥을 살펴보니 과연 기둥에 구멍이 있었다. 조심조심 손을 넣어 보니 무언가 잡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부러진 칼 한 조각이었다. "바로 이것이다!" 유리는 크게 기뻐하며 곧 행장을 차려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드디어 고구려에 도착한 유리는 왕에게 나아가 가지고 온 것을 공손히 받들어 올렸다. 주 몽왕이 가지고 있던 칼 한 조각을 꺼내 유리가 바친 것과 맞추어 보니, 칼에서 피가 나면서 하나로 이어져 온전한 칼이 되었다. 주몽은 유리가 자신의 자식임을 알고 크게 기뻐하며 태자로 삼았다.
남으로 내려간 비류와 온조 비류와 온조 형제는 부여에서 나타난 유리가 태자가 되자 자신들이 유리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을 걱정하여 고구려를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자 신하들 가운데서도 오간, 마려 등 열 명이 이들을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이들이 함 께 남쪽을 향해 길을 떠나자 많은 백성들도 뒤를 따랐다. 마침내 한산 땅에 이른 이들 일행은 부아악(지금 서울의 북한산)에 올라가 자리잡고 살 만 한 곳을 두루 살펴보았다. 비류는 서쪽으로 보이는 바닷가에 가서 살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여러 신하들이 그를 말리 며 간하였다. "여기서 살펴보니 이 한수(한강) 남쪽 땅은 북쪽에 강이 있고 동쪽에는 높은 산이 감싸고 있습니다. 또 남으로 기름진 들이 있고, 서쪽은 큰 바다로 막혀 있습니다. 이처럼 살기 좋은 곳은 얻기 어려울 것이니 여기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비류는 신하들의 만류를 듣지 않고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서쪽 미추홀(인 천)로 갔다. 온조는 그 땅에 도읍을 정하여 하남 위례성이라 하고 열 명의 신하들의 도움으 로 나라를 세워서 나라 이름을 십제(十濟)라 하였다. 그런데 미추홀은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사람이 살기에 그리 좋지 못한 곳이었다. 결국 다 시 돌아와 위례성을 보니 벌써 도읍이 자리가 잡혔고 백성들도 별 어려움 없이 농사를 지으 며 살고 있었다. 비류는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다가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비류를 따랐 던 신하와 백성들은 모두 위례성으로 돌아왔다. 그 뒤 주변의 소국들을 정복하여 백성들이 많아지고 나라의 세력도 커지자 이름을 백제(百 濟)라고 고쳤다. 그리고 그 조상이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부여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을 부여 (扶餘)씨라고 하였다.
5. 박혁거세의 탄생설화
옛날 진한 땅에는 여섯 마을이 있었다. 기원전 69년 3월 초하룻날의 일이었다. 여섯 촌의 우두머리들이 각각 자제들을 데리고 다 함께 알천 뚝 위에 모여 의논했다.
"지금 우리들에게는 위에서 백성들을 다스릴 임금이 없어 백성들이 모두 법도를 모르고 제멋대로 놀고 있으니 큰일이 아닐 수 없소. 하루 바삐 덕이 있는 사람을 찾아 임금으로 모시고 나라를 창건하여 도읍을 세우도록 합시다."
이에 높은 산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남쪽 양산 기슭 나정 우물가에서 이상한 기운이 번개처럼 땅에 드리워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모양은 마치 흰 말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절하는 것과 같았다. 사람들이 그리로 달려가보니 자주빛의 큰 알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그 옆에 있던 말은 사람을 보자 울음 소리를 길게 뽑으면서 하늘로 올라갔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 그 알을 조심스럽게 쪼개 보았다. 아이의 몸에서는 광채가 나며 임금의 위용을 드러내었다. 새와 짐승들이 모여 춤을 추고 천지가 진동하며 해와 달이 맑고 밝게 빛났다. 그래서 그 아이의 이름을 혁거세왕(赫居世王)이라 했는데, 이는 세상을 밝게 다스린다는 말이다. 혁거세왕은 맨 처음 입을 열어 스스로를 '알지거서간'이라 했다. 그때부터 임금의 존칭을 '거실한' 혹은 '거서간'이라 하게 되었다.
여섯 촌의 사람들은 하늘이 자신들의 소원을 듣고 임금님을 내려준 것을 소리높여 칭송하며,
"이제 천자님이 세상에 내려왔으니 덕있는 여순을 찾아 배필을 정할 일만 남았구나."
하며 환호했다. 그런데 바로 이날 정오 무렵이었다. 사량리라는 마을의 알영 우물가에 계룡 한 마리가 나타나 왼쪽 겨드랑이 밑으로 여자아이를 낳았는데 그 자태가 매우 고왔다. 그러나 오직 입술만은 닭의 부리처럼 생겨서 보기가 흉했다. 사람들은 신기해 하기도 하고 애석해 하기도 하면서 그 아이를 데리고 월성 북쪽 시내로 데리고가서 목욕을 시쳤다.
그런데 목욕을 끝내고 보니 어느샌가 부리는 떨어지고 앵두같이 예쁜 사람의 입술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의 놀라움은 이후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그 시내를 부리가 빠졌다 해서 발천(撥川)이라 부르게 외었다.
사람들은 남산 서쪽 기슭에 궁궐을 짓고 하늘이 내려준 신령한 두 아이를 모셔 길렀다. 사내아이는 알에서 나왔고 그알이 마치 바가지처럼 생겼는지라 성을 '박'이라 했다. 또 여자아이는 그가 나온 우물 이름을 따서 알영이라 했다.
두 성인이 자라 열 세 살이 되었을 때 혁거세는 왕으로 추대되고 알영은 왕후가 되니 기원전 57년의 일이다. 그리고 나라 이름을 서라벌(徐羅伐) 또는 서벌이라 하였는데 더러는 사라 혹은 사로라고도 했다.
또 처음 왕이 계정(鷄井)에서 났으므로 계림국이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계룡이 상서로움을 나타낸 때문이다. 일설에는 탈해왕 때에 김알지를 얻으면서 숲 속에서 닭이 울었으므로 나라 이름을 계림으로 고쳤다고도 한다. 신라(新羅)라는 이름이 정해진 것은 후대의 일이다.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째 되는 어느 날, 왕은 홀연히 하늘로 올라갔다. 이레 뒤에 왕의 유체가 땅에 흩어져 떨어졌으며 이때 왕후도 따라 죽었다. 백성들이 유체를 수습하여 합장을 하려 했더니 커다란 구렁이가 나와 못하도록 방해했다. 하는 수없이 다섯 부분으로 흩어진 그대로 각각 다섯 릉에 장사지내고 사릉(蛇陵)이라 했다. 담엄사 북쪽에 있는 왕릉이 바로 이것이다.
혁거세왕이 하늘로 올라간 뒤 그 뒤를 이어 남해왕[남해차차웅]이 즉위했다.
<참고문헌>
서정오,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신화, 현암사, 2003년
조셉 켐벨, 신화의 힘, 고려원, 2000년
남으로 내려간 비류와 온조 비류와 온조 형제는 부여에서 나타난 유리가 태자가 되자 자신들이 유리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을 걱정하여 고구려를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자 신하들 가운데서도 오간, 마려 등 열 명이 이들을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이들이 함 께 남쪽을 향해 길을 떠나자 많은 백성들도 뒤를 따랐다. 마침내 한산 땅에 이른 이들 일행은 부아악(지금 서울의 북한산)에 올라가 자리잡고 살 만 한 곳을 두루 살펴보았다. 비류는 서쪽으로 보이는 바닷가에 가서 살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여러 신하들이 그를 말리 며 간하였다. "여기서 살펴보니 이 한수(한강) 남쪽 땅은 북쪽에 강이 있고 동쪽에는 높은 산이 감싸고 있습니다. 또 남으로 기름진 들이 있고, 서쪽은 큰 바다로 막혀 있습니다. 이처럼 살기 좋은 곳은 얻기 어려울 것이니 여기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비류는 신하들의 만류를 듣지 않고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서쪽 미추홀(인 천)로 갔다. 온조는 그 땅에 도읍을 정하여 하남 위례성이라 하고 열 명의 신하들의 도움으 로 나라를 세워서 나라 이름을 십제(十濟)라 하였다. 그런데 미추홀은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사람이 살기에 그리 좋지 못한 곳이었다. 결국 다 시 돌아와 위례성을 보니 벌써 도읍이 자리가 잡혔고 백성들도 별 어려움 없이 농사를 지으 며 살고 있었다. 비류는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다가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비류를 따랐 던 신하와 백성들은 모두 위례성으로 돌아왔다. 그 뒤 주변의 소국들을 정복하여 백성들이 많아지고 나라의 세력도 커지자 이름을 백제(百 濟)라고 고쳤다. 그리고 그 조상이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부여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을 부여 (扶餘)씨라고 하였다.
5. 박혁거세의 탄생설화
옛날 진한 땅에는 여섯 마을이 있었다. 기원전 69년 3월 초하룻날의 일이었다. 여섯 촌의 우두머리들이 각각 자제들을 데리고 다 함께 알천 뚝 위에 모여 의논했다.
"지금 우리들에게는 위에서 백성들을 다스릴 임금이 없어 백성들이 모두 법도를 모르고 제멋대로 놀고 있으니 큰일이 아닐 수 없소. 하루 바삐 덕이 있는 사람을 찾아 임금으로 모시고 나라를 창건하여 도읍을 세우도록 합시다."
이에 높은 산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남쪽 양산 기슭 나정 우물가에서 이상한 기운이 번개처럼 땅에 드리워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모양은 마치 흰 말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절하는 것과 같았다. 사람들이 그리로 달려가보니 자주빛의 큰 알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그 옆에 있던 말은 사람을 보자 울음 소리를 길게 뽑으면서 하늘로 올라갔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 그 알을 조심스럽게 쪼개 보았다. 아이의 몸에서는 광채가 나며 임금의 위용을 드러내었다. 새와 짐승들이 모여 춤을 추고 천지가 진동하며 해와 달이 맑고 밝게 빛났다. 그래서 그 아이의 이름을 혁거세왕(赫居世王)이라 했는데, 이는 세상을 밝게 다스린다는 말이다. 혁거세왕은 맨 처음 입을 열어 스스로를 '알지거서간'이라 했다. 그때부터 임금의 존칭을 '거실한' 혹은 '거서간'이라 하게 되었다.
여섯 촌의 사람들은 하늘이 자신들의 소원을 듣고 임금님을 내려준 것을 소리높여 칭송하며,
"이제 천자님이 세상에 내려왔으니 덕있는 여순을 찾아 배필을 정할 일만 남았구나."
하며 환호했다. 그런데 바로 이날 정오 무렵이었다. 사량리라는 마을의 알영 우물가에 계룡 한 마리가 나타나 왼쪽 겨드랑이 밑으로 여자아이를 낳았는데 그 자태가 매우 고왔다. 그러나 오직 입술만은 닭의 부리처럼 생겨서 보기가 흉했다. 사람들은 신기해 하기도 하고 애석해 하기도 하면서 그 아이를 데리고 월성 북쪽 시내로 데리고가서 목욕을 시쳤다.
그런데 목욕을 끝내고 보니 어느샌가 부리는 떨어지고 앵두같이 예쁜 사람의 입술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의 놀라움은 이후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그 시내를 부리가 빠졌다 해서 발천(撥川)이라 부르게 외었다.
사람들은 남산 서쪽 기슭에 궁궐을 짓고 하늘이 내려준 신령한 두 아이를 모셔 길렀다. 사내아이는 알에서 나왔고 그알이 마치 바가지처럼 생겼는지라 성을 '박'이라 했다. 또 여자아이는 그가 나온 우물 이름을 따서 알영이라 했다.
두 성인이 자라 열 세 살이 되었을 때 혁거세는 왕으로 추대되고 알영은 왕후가 되니 기원전 57년의 일이다. 그리고 나라 이름을 서라벌(徐羅伐) 또는 서벌이라 하였는데 더러는 사라 혹은 사로라고도 했다.
또 처음 왕이 계정(鷄井)에서 났으므로 계림국이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계룡이 상서로움을 나타낸 때문이다. 일설에는 탈해왕 때에 김알지를 얻으면서 숲 속에서 닭이 울었으므로 나라 이름을 계림으로 고쳤다고도 한다. 신라(新羅)라는 이름이 정해진 것은 후대의 일이다.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째 되는 어느 날, 왕은 홀연히 하늘로 올라갔다. 이레 뒤에 왕의 유체가 땅에 흩어져 떨어졌으며 이때 왕후도 따라 죽었다. 백성들이 유체를 수습하여 합장을 하려 했더니 커다란 구렁이가 나와 못하도록 방해했다. 하는 수없이 다섯 부분으로 흩어진 그대로 각각 다섯 릉에 장사지내고 사릉(蛇陵)이라 했다. 담엄사 북쪽에 있는 왕릉이 바로 이것이다.
혁거세왕이 하늘로 올라간 뒤 그 뒤를 이어 남해왕[남해차차웅]이 즉위했다.
<참고문헌>
서정오,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신화, 현암사, 2003년
조셉 켐벨, 신화의 힘, 고려원,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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